[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15]

“뉴에이지 운동은 불안감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하여 이름 그대로‘새로운 시대’를 약속하는 사상, 종교, 문화로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바티칸리포트-8)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는 것은 새로운 비전을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기존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갈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답할 수 있는 이유란 게 고작 자식 때문에, 그 남자 또는 그 여자 때문이라면 그건 제 인생에 던지는 근본적 질문에 아직 대답한 것이 아니다.

거인이 되기를 거부해야 한다

로마제국의 늪속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 비전아래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제시하였다. 그래서 노예들이며 평민이며 귀족들마저 인생에 근본적 질문을 던질 줄 알았던 이들은 ‘예수’를 선택하였다. 성서에서도 그 날이 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 꿈을 꾸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 참신한 열정이 로마제국을 삼켰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유토피아가 정말 ‘꿈처럼’ 시들고 제국의 습관이 다시 교회를 삼켜버렸을 때, 이미 거인이 되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던 그리스도교 제국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전망을 열었던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분이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다. 그 작은 형제를 통하여 사람들은 잊혀졌던 나자렛과 갈릴래아의 예수를 다시 기억해냈다. 프란치스코에게 예수는 오래된 미래였고, 프란치스코는 현대 교회가 고심해야 할 오래된 미래일 것이다. 그 원천에서 참신한 미래를 발견하지 못하는 교회는 거인인 채로 공룡처럼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혹성 탈출>이란 영화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이 바닷가에서 파괴된 채로 뒹굴었듯이, 교회 첨탑과 성상들도 그처럼 함부로 버려진 신세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단연히 ‘거인’이 되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작은 형제가 되어 새로운 영을 입어야 한다. 그 영은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전망을 갖고 생태계의 위기에 저항하며 창조세계를 회복할 것이다. 그 영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인간을 모든 권력에서 해방할 것이다. 그 영은 모든 아름다움이 풀과 나무와 벌레와 산과 물에 아로새겨져 있듯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재창조하는 예술가적 심미안을 심어줄 것이다.

소박한 의식주 속에서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이 탄생되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뉴에이지 운동은 가톨릭교회보다 영적으로 훨씬 진보적이다. 적어도 사상적으로는 그렇다. 뉴에이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조직, 단체들이 실제로 그렇게 자유롭고 평등하며 생태적인지는 다른 문제로 남는다. 여기선 다만 그들이 우리 교회에 앞서서 시대정신을 읽고 있으며, 그래서 대중의 호응을 두루 받고 있다는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결정이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결정을 내리면 그는 세찬 물줄기 속으로 잠겨들어서, 결심한 순간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출처/코엘료 홈페이지)
파울로 코엘료, "참자기 찾아가는 연금술사가 되어"

한동안 시중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란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1987년 출간된 이후 전세계 120여 개국에서 번역되어 2,000만 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책이다. 사제가 되기 위해 라틴어, 스페인어, 신학을 공부한 산티아고는 어느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양치기가 되어 길을 떠난다. 집시여인, 늙은 왕, 도둑, 화학자, 낙타몰이꾼, 아름다운 연인 파티마, 절대적인 사막의 침묵과 죽음의 위협 그리고 마침내 연금술사를 만나 자신의 보물을 찾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파울로 코엘료는 1947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나 굴곡많은 생애를 살았다. 17살 이후로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불행한 청소년기와, 록밴드를 결성하고 극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히피문화에 심취한 청년기를 보냈다. 1973년 함께 음악 활동을 하던 친구 라울과 '크링 하Kring-ha'라는 만화잡지를 창간했으나 잡지의 성향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브라질 군사정권에 의해 두 차례 수감되고 고문당했다.

그후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며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던 그는 1986년, 돌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났다. 이 순례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를 써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뒤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악마와 미스 프랭>, <11분>, <오 자히르> 등 발표해 작품마다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로부터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브라질에 '코엘료 인스티튜트'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빈민층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코엘료는 단순한 '마음공부책'을 펴내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써서 환경문제나 파괴된 이웃관계 등의 회복을 꾀하고 싶어한다. "먼저 자아찾기를 통해" 그 길을 가고, "쓰는 것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그는 수년 전  2008년 10월 17일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유대인이 이슬람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고, 기독교가 불교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덧붙인 적이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종교와 종교가 '참자기'를 찾아가는 이들로 인해 화해하고 서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처럼 특정 종교와 교리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우주적 종교심과 참 삶을 갈망하는 이들은 종교 밖에서 더욱 종교적이다.  코엘료는 뉴에이지 혐의를 받고 있지만, 코엘료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역시 성령이라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바티칸리포트에서는 마지막으로 “뉴에이지 운동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최상의 미래이기를 바라는 현대인들의 심리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참여와 투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바티칸리포트 -9)고 했다. 우리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당신이 선택한 가톨릭이 당신에게 최상의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과대선전이 아니라, 진실로 모든 성직자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가? 말을 바꾸어서, 가톨릭교회 사목자 자신은 정말 가톨릭교회만이 자신에게 최상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확신하고 있는가? 하고도 묻고 싶다.

자신이 믿지 못하는 하느님을 선포할 수 없듯이, 자신이 믿지 못하는 미래를 살 수 없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동안 접어두었던 '천년지복'의 꿈을 다시 꾸어야 할 차례를 맞이하고 있다. 사제만이 아니라 모든 평신도들도 그리스도교의 원천으로 돌아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꿈꾸었던, 그리고 살았던 오래된 미래를 다시 꿈꾸는 것을 통하여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복음이 터져 나오도록 도와야 한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의 말대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의식화되어 있다.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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