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오강남 교수와 성해영 교수의 대담집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한국교회는 그래도 세상의 희망이다. 교회가 성공주의 신드롬을 버린다면 지역사회에 필요한 대안 공동체를 꿈꾼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언젠가 이렇게 글을 썼더니 뜻밖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교회 자체에 대해 짜증내는 사람이 1,000만 명을 육박한다고 말이다.

▲ 오강남·성해영 공저 / 북성재 펴냄 / 252면 / 1만 2,000원

그게 과연 사실일까. 정말로 사실이라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마도 한국교회가 표층 종교적인 측면만을 강조해 온 탓이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문자주의와 원리주의 그리고 근본주의적인 생각만을 고집한 것들 말이다.

어느 선교 단체의 '봉은사 땅 밟기' 라든지 어느 장로의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합니다'라든지 어느 목사의 '대통령 하야 운동도 불사하겠다'라든지 그야말로 독선적인 표출의 극치가 그런 싫증을 나타낸 게 아닐까 싶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그야말로 유아기적인 표층 종교의 한계일 뿐이다.

오강남 교수와 성해영 교수의 대담집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는 한국교회의 표층적인 면과 심층적인 면을 낱낱이 해부한다. 물론 이 책이 두 기독교인의 대담이긴 하지만 모든 종교를 총망라하는 심층적인 종교 간의 대화이기도 하다. 타 종교의 내적 성찰과 외적인 종교 행위를 통해 한국교회가 깊이 있게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돕고 있다.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의 차이는 뭘까? 이른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달과 그 손가락에 견줄 수 있다. 사람들이 달을 봐야 함에도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매달리는 것, 그것이 바로 표층 종교라는 것이다. 이는 아이를 목욕시킨 물을 버리다 아이까지 버리는 행위도 그와 같은 경우다. 심층 종교는 그 반대다.

하지만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는 처음부터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앙생활도 처음엔 문자와 제도권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점차 깊어지면서 모든 것을 뛰어넘는 깊은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로 출발했지만 점차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더욱이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까지 말씀했다.

이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표층 종교에 속한 기도 행위는 '청원 기도'만을 전부로 생각한다. 하지만 '관상기도'와 '명상 기도', 그리고 류영모나 함석헌 선생이 했다고 하는 '참선 기도'도 있다. 그런데 동방정교회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는 '예수 기도'를 주문처럼 외운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점차 그것에 몰입하게 되면, 신비적인 합일의 단계로 들어선다고 한다. 그러니 기도의 표층과 심층의 구분도 엄밀하게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강조하는 심층 종교의 극치가 있다. 바로 '깨달음'이 그것이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을 때에 문자적으로 읽지 말고 그 말에 담긴 속내를 궁구하여 깨닫도록 강조한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그가 그랬다면 나는 이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기의 실존적 상황 속에서 얻는 자극과 일깨움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행위는 사랑과 관용을 담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근본주의적 주장은 목욕물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버리게 되는 반작용을 불러옵니다. 표층 종교의 그런 모습을 비판한 사람들이 바로 도킨스나 히친스와 같은 인물들이죠. 최근에 번역된 카렌 암스트롱의 책〈신을 위한 변론>은 이런 비판에 맞서 이들이 종교의 심층적인 차원은 다루지 않았다는 것, 그런 사람들의 종교 비판 때문에 종교의 심층적 차원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목만 보면 마치 기독교 근본주의를 위한 변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다릅니다(59쪽)."

이는 기독교의 표층 종교를 공격하는 이들로 인해 심층 종교로 나아가는 발목까지 잡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문자주의 표층 종교를 공격한다 해도,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것과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것, 죽음 이후에 육체로 부활한 것과 재림할 것에 대해서는 심층 종교가 뭐라 답을 해야 할까? 그것이 내내 미궁에 빠지도록 한 부분이었다.

<기사제휴/뉴스앤조이 2011년 05월 25일 권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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