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김녕]

“4대강 공사를 위해 설치한 낙동강 구미취수장의 임시보가 무너졌습니다. 이 사고로 경북 구미시와 일대 50여 만의 식수 공급이 중단되었습니다”라는 소식이 바로 며칠 전인 5월 8일 밤 9시 MBC 뉴스 데스크에서 보도된 바 있다. 공영방송 9시 뉴스에서도 이젠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이 보도되나 싶었다.

정부가 애초에 제시한 청사진은 물 부족 해결, 홍수 예방, 수질 개선, 그리고 과도한 개발로 황폐화된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고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비참하다. 16개의 보 건설과 준설로 인해 4대강 본류의 수질은 악화되었고 침수지역은 지천까지 넓혀졌으며, 생물 종은 절반으로 줄었고, 4대강 사업이 올려놓은 땅값 이익은 그 대부분이 외지인에게 돌아갔다. 허나 법조인들은 이런 문제를 소송을 통해 바로잡겠다고 하고 정치권은 선거를 통해서 바로잡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고만 있는 국민은 어떡해야 하는가, 어떡해야 했는가. 강변에서 농사짓던 농민들은 생존 기반을 잃었고, 보도조차 통제된 채, 4대강 공사 노동자들은 쌓이는 피로와 허술한 안전조치로 인해 조용히 죽어나갔다. ‘사람을 잡는 개발’이자 ‘죽음의 행렬’이다.

4대강 공사가 시작된 2009년 11월 이래로 지금까지 4대강 공사장에서 숨진 노동자와 이 사업과 연관되어 목숨을 잃은 국민은 모두 30명이다. 2012년 정권 재창출을 위해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채근하는 대통령 때문에 안전관리는 뒷전인 채, 달리는 공사차량에 운전자가 치여 죽고, 준설 중인 굴착기와 준설선에서는 노동자가 물에 빠져 죽었다. 나흘간 4명의 노동자가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빼앗겼는데도 정부는 4대강 사업 중단은커녕 친수구역개발사업으로 규모와 영역을 오히려 훨씬 키웠다(정의구현사제단 소식지, <빛두레>, 2011년 5월 1일자 참조). 사업목적과는 너무 다른 이런 삽질, 그 무모하고 무식한 ‘속도전’, 그야말로 누구를 향해 분노하고 통곡해야하는지 묻고 싶으면서도, 참으로 ‘가관’이다. 정부와 대통령은 왜 애도의 말 한마디 없이 쉬쉬하는가? 어찌 이리도 잔인할까?

작년 2010년 7월 7일은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 된 날이었다. 한국경제발전사, 아니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례가 없을 그 미친 ‘쾌거’ 역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요구했다. 총 428km의 고속도로를 불과 2년 5개월(1968년 2월 1일 착공, 1970년 7월 7일 개통)에 완성했는데, 토목기술의 부족을 머릿수로 메우는 식으로 공정을 밀어붙였기에 연인원 850만 명이 도로 건설에 동원되었고, 가장 위험한 공사였던 터널공사도 인력으로 기술부족을 메우다 보니, 경부고속도로 건설 도중 총 77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대부분이 터널공사 낙반사고로 인한 사망이었다고 한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당제터널 구간 근처인 금강휴게소에다 박정희 대통령은 위령탑을 세워 개통식 날에 직접 제막을 했다고 하며, 이은상은 추모글에서 이들을 “조국근대화를 위한 민족행진의 전사”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하지만, 순직 노동자 유가족들은 정부로부터 보상금 한 푼 못 받았고, 다만 소속 건설사에서 유가족에게 50만 원(현재가치로 약 500만 원가량) 정도의 위로금을 지급했다고 알려졌을 뿐, 이들은 너무나 억울하게, 너무나 빨리 잊혀졌다. 겨우 도로공사 측에서 매년 위령제를 열어 왔다는 사실에서나 위안을 찾아야 할까.(<조선일보>, 2010년 7월 7일, <동아일보>, 1970년 7월 7일 참조). 비슷한 논리인 이명박 정부는 4대강 개발 순직 노동자들에 대해 어떻게 나올까. 아니, 그때 어떻게 대해준들, 글쎄, 그게 다르랴.

▲ 2009년 11월 이래로 지금까지 4대강 공사장에서 숨진 노동자와 이 사업과 연관되어 목숨을 잃은국민은 모두 30명이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외면한 '속도전' 공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 출처/프레시안)

필자가 믿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중의 하나가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라는 성서구절은 이와 관련해 흔히 인용되거나 상기되는 아주 유명한 구절이다. 일부를 인용해보자.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주십니까?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하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통틀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시편 8:3-8)


곧,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기에 사람 안에는 하느님이 담겨 있다. 따라서, 사람에게 모질게 대하는 것은 곧 하느님께 모질게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저 하늘과 달과 별들을 선물로 받은 존재이자, 모든 피조물의 으뜸이며, 자연만물을 다스리는 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곧 하느님이 담겨 있고 우주가 담겨 있다.

올해 내 4대강 사업이 다 완공되면 국민들이 비로소 자기의 뜻을 알아줄 거라는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그것에 공사 기간을 어떻게 해서라도 맞추라는 상부의 지시와 독촉, 시공사들 간의 경쟁에 떠밀리며, 삽질은 앞으로도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다. 그리고, “과연 누가 센지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라는 식으로 기나긴 장마와 홍수의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하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통틀어 다스리게”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시키셨는데, 삼백 몇십만 마리 가축들이 졸지에 매장되어도 가축들에게는커녕 국민들에게도 변명 말고는 한마디 사과조차 없던 정부다. (생매장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미 돼지는 새끼 돼지들에게 젖을 물렸다는 언론보도가 생각난다. 그게 신기했나?) 벌써 30명을 넘는 ‘물길’ 순직 노동자들과 국민들의 희생에 대해 철저히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정부에게 묻고 싶다, “아니, 도대체 사람을 무엇으로 여기는데, 그리고 그 삽질이 도대체 무엇인데?”라고. 

김 녕/ 서강대 교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