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백동흠]

올 해 초 2011년 1월 달, 고국에 부모님께서 오랜 병고로 편찮으셔서 어렵사리 방문했던 길이었지요. 같은 직장에서 아들이 사귄다는 여자 친구 아이, 그 부모님이 한 번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렵게 나온 김에 인사나 하자고 가볍게 만나기로 한 게 그만 상견례가 되었네요. 여자 아이 아버지도 마침 시골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가장이자, 집안의 맏이로서 훈훈한 인품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이런저런 사람사는 얘기로 흐르다가 아이들 결혼이야기로 자연스레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정해졌으면 이 참에 그냥 밀어주면 어떻겠느냐는 둥… 그런 이야기 중에 아들 녀석이 한마디 하겠다고 나서더군요. “저는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되면 저희 부모님 결혼 기념일인 5월 15일에 결혼을 해서 부모님과 함께 여행도 다닐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 부부로서는 전혀 의외의 생각과 말을 들은 터라 놀라서 멍.
여자 아이 부모님 반응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가을이나 5월이나 뭐…”
예상치도 않게 갑자기 결혼 이야기가 급 물살을 타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섭리로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쉽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엉겁결에 날짜까지 정해진 터라 발 등에 불이 떨어졌네요.

가족의 중심에서 밝고 따스한 햇살처럼

“은지 아버님 어머님께 !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상견례 ! (2011년 1월 14일)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이 되었군요. 벌써 아이들이 이렇게 훌쩍 커버렸네요. 맑고 예쁘고 순백한 은지를 보면서 내내 흐뭇한 마음 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승민이에게 참 딱 맞는 짝이라 여겨집니다. 아들이 5년 동안 먼 곳에 혼자 떨어져 일하며 경험 많이 했지요. 고국에서 2년여 일한 후, 일본가서 1년반 더 배우고 다시 돌아와 일하다 같은 직장에서 은지 만나고... 이제야 편안한 안정감을 느낍니다. 이제는 가정을 이룰 때가 된 것도 같습니다. 이런 귀한 만남의 인연을 감사 드립니다.” -승민이 아빠 엄마드림.

어제처럼 오늘을, 오늘처럼 내일을

“승민이 아빠, 사돈어른께!
오랜만에 서울에 오셔서 가족들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가셨는지요. 혼사 문제 너무 걱정 마세요.저희 또한 그리 큰 욕심이 없어요. 둘이 좋아서 하는 결혼이니 시작이 뭐 그리 크게 할 필요가 있겠어요. 검소하고 아담하게 현실에 맞추어서 할까 해요. 항상 힘내라고 격려 많이 하고 앞으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목표 뚜렷이 이룰 수 있도록 미력하나마 승민이에게 힘이 될까 해요.” -서울에서 은지 아빠 보냄.

한 식구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

“형님에게(사돈어른께)!
이곳 서울은 3월1일 휴일이네요. 어제 저녁부터 간간이 내리치는 빗줄기가 찬 바람과 더불어 진 눈깨비로 변하면서 급기야는 오늘 아침 약간 눈발이 제법내리고 있는 서울의 아침 풍경이네요. 이럴 때마다 지구정반대에 계시는 형님이 부럽습니다. 언제 쯤이면 형님처럼 집 사람과 해변도 거닐면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될런지 자꾸 상상을 해봅니다. 하나 하나 승민이가 우리 식구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행복 하답니다. 그리고 먼 곳에 계시지만 열심히 사시는 형님 내외분(사돈어른) 을 만났다는 게 저로서는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을 얻은 느낌입니다.” -서울에서 동생이

사돈에서 형님 아우님으로

“보고 싶은 아우님에게!
마음에 평화를 주는 아우님의 편지를 받고 일주일이 훌쩍 흘러 가버렸어요. 형님 동생하니 한층 가까운 느낌이 들어 좋지요. 이제 좀 지나다 친구로까지 갈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도 나쁠 것 없지요. 이곳 서구 사람들은 모두가 다 친구 사이지요. 벽이 별로 없어요. 체면도 별로 안 따지고요. 기쁨 속에 건강하세요.” -뉴질랜드에서 형이

"가까이 느껴지는 형님에게!
봄이 오는 길목을 발목이라도 잡듯이 오늘도 강원도는 눈이 내린다고 하네요. 승민이가 월요일 날 두바이 출장갈 때 잘 다녀 오겠다고 인사하는데 이제는 한 식구구나 마음 든든 했답니다." -서울에서 동생이

"사랑하는 아우님에게!
일하다 받은 전화 목소리 반가왔어요. 은지 승민이의 보금자리 아파트에 ‘솥이 들어가는 날’ 이라는 이야기… 얘기만 들어도 정감이 느껴져요. 아우님 내외분이 그렇게 정성들이고 보살펴주시니 정말 감사히기 그지 없네요. 은지 승민이 이 녀석들은 참 복도 많아요.” -뉴질랜드에서 형이

"보고 싶은 형님에게 !
형님! 벌써 4월도 어느덧 중반이네요. 이곳 서울은 진달래 개나리가 지천이고요. 계절적으로는 좋은 계절이지요. 저도 겨우내 뜸했던 운동, 봄이 되면서 다시 한번 시도 할려고요. 건강할 때 운동 열심히 해야 겠어요. 땀 흘리고 막걸리 한 사발 쭈욱 들이키면 꿀 맛이지요. 가까이 계시면 형님하고 산행도 하면서 막걸리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아쉬움이 남네요. 앞으로는 승민이하고 등산을 자주 하려고 해요.” -서울에서 동생이


그동안 양가 주고받은 이메일의 일부를 옮겨 보았습니다. 짧은 시간 속에서 많은 역사가 이루어진 듯 합니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가정이 새롭게 탄생되나 봅니다.

뉴질랜드에서 서로 속을 아는 교민 자녀를 만나려니 했지요. 그래서 뉴질랜드식으로 성당에서 그동안 감사한 모든 분들 초청해서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는 조촐하고 나름 멋있는(?) 결혼식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요. 또 다른 방법으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는 그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백동흠/ 프란치스코, 뉴질랜드에서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으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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