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9]

사람들이 신영성운동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면, 단순히 지나갈 사이비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조잡한 이론과 엉터리 실천이라면, 시대착오에서 나온 것이라면 교회는 그저 이 운동을 무시해 버려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게 가톨릭교회의 고민이다. 신영성운동은 현대 가톨릭교회의 아킬레스건을 잡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발끈하는 것이다.

한국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사람들이 신영성운동에 참여하는 이유를 1986년에 교황청에서 발표한 ‘바티칸 리포트’를 들어 9가지로 나누어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신영성운동이 각광을 받는 이유와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지침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소속감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는데,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이러한 욕구에 대하여 준거집단 또는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제공하는 반면, 교회의 공동체성과 신자들의 소속감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바티칸리포트-1)

현대사회는 지역-공간적 경계를 언제든지 뛰어넘어 교제 관계를 넓힐 수 있는 조건에 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자동차가 대중화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매력을 느끼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공간적 제약을 넘어 ‘새로운 이웃’에게로 간다. 꼭 몸을 부대끼고 얼굴을 봐야 가족으로 여기는 것도 아니다.

실제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은 대체로 ‘이해관계’로 얽혀있기 마련이고, 이 지겨운 관계에서 벗어나 영적인 동지(同志)나 도반(道伴), 가족으로 여길 수 있는 만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 타인을 강박하지 않고 편안하게 환대하며 끌어안아주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 일상 속에서는 (남들도 그러하듯이) 그렇게 인색한 사람들이 이런 영적 관계 안에서는 아끼지 않고 에너지(돈과 시간과 정력)를 나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의 ‘본당’이란 구조는 어떠한가? 대중화된 세계의 대중화된 종교가 된 가톨릭교회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있다. 계급적-문화적-사상적 이질성을 안고 있으면서도 ‘교우(敎友)’라는 이유로 매주일 성당에 모여 함께 종교적 의례(미사)를 행하고 똑같은 성체를 받아 모신다.

그러나 그들에게 유일한 동질성을 느끼게 해주는 ‘신앙’이란 과연 같은 것일까? 그들은 계급-문화적-사상적 입장에 따라서 서로 조금씩 때로는 상당히 다른 신앙의식 속에 머문다. 특별한 복음적 결단을 요구할 때 사람들은 같은 운명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친밀감과 어떤 소속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 관계 안에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겪는 외로움을 고스란히 교회에서도 발견한다.

그러나 신영성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단 신영성운동에 접속된 사람들은 스스로 ‘우주적 존재’임을 자각하는 만큼,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어떤 그룹에 속한다고 느끼며, 이들은 비교적 소수이기 때문에 개인적 접촉의 기회가 많으며, 대부분 몸 수련과 마음 수련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깊은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함께 경청하면서, 상대방의 구체적인 아픔에 동참하게 된다. 그들은 다양하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기회를 얻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가족’으로 느끼기 쉽다.

이들은 대부분 어떤 조직으로 묶여 있지 않으며 네트워크 방식으로 프로그램에 있을 때마다 관심사에 따라서 모이곤 하는데,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에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소수이다 보니, 이런저런 모임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얼굴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강박 없이 자연스럽게 이른바 ‘영적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단체나 그룹에 고정된 회원으로 등록되는 경우란 별로 없다. 이를테면 동사섭 프로그램을 했다거나, 야마기시 연찬 몇 기라든가, 하는 가는 선으로 성기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느끼는 소속감이란 일종의 이런 사람들이 더불어 연출하는 어떤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걸 ‘개방적 소속감’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 모임이 갖는 생명력은 그런 분위기가 발산하는 고유한 ‘매력’과 ‘자발적 참여’다. 그런 자발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어떤 매력을 교회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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