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54] 동행 -유다와 예수

사실 그이는 두어 달 전부터 무엇인가 바쁘게 자신의 마음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가끔 혼잣말처럼 때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고 했다. 제자들을 두 명씩 짝을 지어 전도를 내 보내면서 아무래도 미덥지 않는지 열 번도 더 반복해서 우리들이 마을에 들어서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 것인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지난날 하로드 계곡에서 몇 조로 나뉘어 그곳 주변 마을마다 회당을 돌면서 활동했던 적이 있어서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를 보내면서 전혀 새로운 내용을 강조했다. ‘사랑’을 전하라고 했다. 그 ‘사랑’을 땅끝까지 전하라고 했다.

그러나 유대 땅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그 ‘사랑’은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상하고 가슴을 후벼 파고 피를 들끓게 하는 소식을 원했다. 그리고 이적과 기적을 보고 싶어 했다. 그이에 관하여 떠도는 소문만 듣고 우리들의 세례공동체에 들어온 동료들 중 대부분은 실망하여 떠나기도 했다. 그이는 지금 혼란에 빠진 이 유대 땅을, 그리고 현자들과 식자들 대부분이 말세에 빠져있는 이 현실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그이가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함께 떠들고 항상 쾌활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의 가슴을 쓰다듬어 위로했지만, 꼭 그만큼.... 아니, 그렇게 하기 위해 그이는 남의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 배 백 배의 절망과 고통과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우리들과 함께 날마다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어 가장 고통 받는 자들을 찾았고, 함께 식사했고, 함께 일했다. 그이는 쫓겨난 자들과 부대끼고, 죄인이나 범죄자들과 함께 잔치에 갔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가족으로 맞아주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이 스스로 이 절망스러움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길은 ‘사랑’뿐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은 그이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절망 속에 허우적대기를 강요했는지 나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갈릴리 사람들은 아직도 총대 깃발을 올리지 않는 그이를 보고 예수는 역시 겁쟁이라고 힐난했다. 사람들의 소문은 금방 돌변했다. 작년에도 필로테리아의 요나단이 죽었던 상황에도 예수는 어디론가 도망가서 숨었다며 비판했다. 갑자기 그렇게 말하는 갈릴리 사람들이 나에겐 마치 그이를 죽음으로 몰아치는 저승사자들처럼 보였다.

훌라 호수에서 바로 다음날 가버나움으로 온다던 그이가 사흘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이는 어디선가 차가운 밤바람에 벌벌 떨면서 다시 죽음과 직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이번 유월절행사의 총대를 짊어지겠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나는 차라리 그이가 지난번처럼 어디론가 도망가서 숨어있기를 바랬다. 사람들의 마음은 손바닥 뒤집듯이 변덕이 심해서 지금의 급한 상황만 지나면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또다시 새로운 기억만을 저장할 것이다. 그러나 매년 유월절이 올 때 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에 진저리를 쳤다. 훌라 호수에서 그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튼 나는 미리서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답답했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모두 방향을 정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그이로부터 기별이 왔다. 오늘 저물녘에 갈릴리해 동쪽 게르게사 항구 옆의 사마크 구릉으로 오라는 편지였다. 우리는 오전 일정만 마친 후에 배를 타고 게르게사를 향해 출발했다. 가버나움 항구를 떠난지 한시각도 되지 않아 급작스런 풍랑을 만났다. 잔잔하던 갈릴리 호수는 가끔 헬몬산과 골란고원에서 내려오는 찬바람과 낮 동안 데워진 수면의 따뜻한 공기가 만나면서 이렇게 급작스러운 돌풍이 발생하기도 했다.

돛이 찢겨져 나가고 작은 요한은 징징 울면서 배멀미를 심하게 했다. 선장 베드로가 바짝 긴장했다. 한번 뒤집어진 바다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집채 같은 너울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배가 물마루에 오르면 마치 우리 모두가 배와 함께 하늘에 떠있는 것 같았고, 다시 배가 물곡으로 내려가면 앞도 뒤도 옆도 모두 물로 이루어진 절벽에 갇힌 것 같았다. 겁을 먹고 울먹이는 동료도 있었다. 나도 여기서 물귀신이 되는가 싶어서 몹시 두려웠다. 그러나 맨 앞 선수에 앉은 막달의 마리아만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서 담담한 표정으로 성난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확실히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천천히 바람이 자면서 출렁이던 파도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육지가 가까워지는지 물안개가 밀려왔다. 물안개는 점점 진해졌다. 그러나 갈릴리의 모든 바다를 자기 손바닥처럼 환하게 보고 있는 선장 베드로는 전혀 초조해 하지 않았다. 맨 먼저 마리아가 안개 속에 희미하게 서있는 그이를 보았다. 그이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안개 때문에 그이는 마치 물위에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다에서는 먼 거리라도 실제보다 훨씬 가깝게 보였다. 베드로가 그이를 보고 힘을 써서 노를 저었지만 그이의 모습은 자꾸만 뒤로 물러섰다. 빌립보가 베드로를 도와서 함께 한참동안 노를 저었다. 이제야 그이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 졌다. 게르게사 항구가 멀리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사마크 구릉이 보였다. 그이는 구릉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렸다.

토마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가서 그이의 신발을 몰래 훔쳐보았다. 전혀 물에 젖어있지 않았고 먼 길을 걸어온 신발은 먼지를 뒤집어 쓴 그대로였다. 토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 그림/홍성담

그이는 술을 다섯 병이나 옆에 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드로와 타대오가 배에서 저녁거리를 내렸다. 그날은 마침 큰 야고보의 생일이라서 마리아가 특별한 음식들을 장만했다. 마리아가 모닥불 주위로 세 개의 깔끔한 보자기를 폈다. 그 위에 제법 그럴싸하게 잔치상이 차려졌다. 그이가 먼저 큰 야고보의 잔에 포도주를 그득하게 따랐다. 네가 형제들 중에서 두 번째로 나를 따라올 것이다. 베드로가 큰 사발을 그이에게 불쑥 내밀면서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을 따라갈 첫 번째 형제는 누굽니까’ 그이가 조용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면서 베드로가 내민 큰 사발에 술이 넘치도록 따랐다. 그이의 옆에 앉아있던 작은 요한이 마리아에게 속삭였다. ‘베드로는 덩치만 큰것이 아니라 술사발도 욕심껏 커서 오늘 저 술은 베드로가 죄다 마시고 말겠어’ 베드로는 그 첫 번째 형제가 자기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좋았던지 입을 넙죽하게 벌려 큰 사발에 가득 넘치는 술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요한이 또 마리아에게 말했다. ‘저것봐. 저러다 갈릴리 바다물이 저 큰 입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도 부족하겠어’

술이 몇 순배 돌면서 모두들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우리는 유월절 행사가 마음 한켠에 남아있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마태오가 일어나 풀밭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을 한다발 뜯어서 품에 안고 노래를 불렀다. ‘사과나무 아래, 그대가 태어난 곳, 그대를 낳느라고 그대의 어머니가 산고를 겪던 곳, 바로 거기에서 잠든 그대를 만나 깨웠었지.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시샘은 저승처럼 극성스러운 것, 나의 동산에 있는 이여, 나의 벗들이 듣는 그대의 목소리 나에게도 들려다오’ 우리는 그의 노래를 모두 자연스럽게 따라 불렀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어떤 불길이 그보다 거세리오. 바닷물로도 끌 수 없고 굽이치는 물살도 쓸어갈 수 없는 것, 우리 모두 그 사랑을 바치리오’

생일 잔치상을 받은 큰 야고보는 마태오가 안겨준 들꽃 다발을 노래에 맞추어 흔들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마크 구릉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저물녘에 불었던 폭풍이 모든 구름을 몰고 갔는지 맑게 갠 밤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졌다. 요한은 그이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벌써 잠들어 있었다. 호수 건너편 어둠속에서 별똥별 하나가 붉은 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그이가 그것을 바라보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나는 이번 유월절행사의 총대를 피하지 않겠다. 아니, 피할 수가 없구나. 벌써 그 때가 온 것인가. 시간은 화살과 같아서 되돌릴 수가 없구나’ 큰 야고보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선생님, 이번엔 당신의 판단이 틀립니다. 안됩니다. 총대를 거부해야 합니다’ 시몬과 나타나엘 그리고 작은 야고보까지 나섰다. ‘절대 불가합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도록 두고만 보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과는 달리 이번엔 모든 제자들이 유월절행사의 불참을 주장했다. 그이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마리아가 본능적으로 그이의 소매깃을 꼭 쥐었다. 술에 취한 베드로가 엎드리다시피 넘어지면서 그이의 발목을 꼭 잡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외쳤다. ‘뭐가 뭔지 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애시당초 안되는 것은 절대 안됩니다. 무조건 안됩니다’ 그이가 베드로의 손을 꼭 잡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베드로는 금방 코를 골았다. 그의 코고는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것 같았다.

그이의 무릎에 기대고 잠시 잠들었던 요한이 깨어났다. ‘에그 저 화상이 저럴 줄 진즉 알았어. 첫 번째로 선생님을 따라 간다더니 맨 먼저 골아 떨어졌네’ 그이가 어둠이 가득한 갈릴리바다를 바라보면서 다시 말했다. ‘저 어둠 속에서 나는 이제 그 때가 밀려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피할 수도, 숨을 수도, 죽을 수도 없다. 나는 나의 형제인 너희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다’ 그때까지 선채로 그이의 말을 듣고 있던 시몬과 작은 야고보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무도 더 이상 말을 하려하지 않았다.

그이가 나를 부르며 술병을 찾았다. 마리아가 저 옆에 있는 술병을 가져와 그이에게 건넸다. 그이가 마시던 빈 술잔을 나에게 내밀었다. 술잔을 받아든 나의 손도 떨리고 그 빈 잔에 술을 따르는 그이의 손도 몹시 떨렸다. ‘나의 형제, 유다. 네가 먼저 저들의 예루살렘으로 가라. 가서 회동에 참여했던 다른 모임들과 논의하여 유월절행사를 준비해라. 그러나 아무도 논의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너의 외로움이 얼마나 클 것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 말을 명심해라. 작년처럼 피바람이 불어선 안된다. 이번 유월절기간엔 어느 누구도 피한방울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 네가 나의 모든 전권을 맡아서 준비해라’

그이의 목소리는 너무 단호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큰소리를 내질러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외치는 바람에 잔에 그득한 포도주가 절반이나 쏟아졌다. 그이가 말했다. ‘하늘이 부르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 유대 땅이 부르고 있다.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신의 시간을 이제 멈춰 세워야 할 때다. 더불어 이기심과 욕망으로 가득 찬 이 피의 악순환을 끊어야 할 때다. 아직 채 무르익지는 않았으나 때가 되었다. 너와 내가,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다시 새롭게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때가 되었다. 너도 나도 모든 형제들도 그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마리아가 매달리듯이 그이의 팔을 더욱 꼭 붙들었고 술잔이 들린 나의 손이 오그라들듯이 떨렸다. 나는 그럴수록 마음을 단단히 조여 매고 고개를 돌려 형제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모두 넋을 빼앗긴 채 그이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단호한 목소리로 그이에게 다짐을 받아내야 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유월절행사를 준비하는 저와 형제들의 종합적인 판단에 의해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저곳 예루살렘에서 행동하고 말해야 합니다. 형제들 앞에서 그것을 먼저 약속하십시오’

그이가 무심하게 별빛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늘게 떨리고 있는 술잔을 바라보았다. 포도주가 더욱 붉게 보였다. 일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이는 물론 우리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아니다. 결국 누군가는 죽어야 했다. 술잔의 포도주 붉은 빛이 마치 그이와 우리들이 쏟아내야 할 피와 같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움켜쥐어 입에 대고 천천히 넘겼다. 뒤에서 코를 골며 자고있던 베드로가 잠꼬대를 했다. ‘뭣을 끊어야 한다구? 안돼, 저 닻줄을 끊으면 배는 아무 곳으로나 떠밀려 가버려 찾을 수가 없게 된다구. 안돼, 닻줄을 끊으면 안된다구’

다음날 다른 형제들은 그이와 함께 베싸이다에 들려 일정대로 움직였고 나는 시몬과 나단과 나타나엘 그리고 마리아와 함께 가버나움으로 급히 돌아왔다. 길을 걷는 내내 마리아는 몰래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어디부터 실마리를 잡아야 할 것인지 뒤죽박죽이 된 머리통을 싸매고 생각했다. 이미 어찌할 수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고 더욱 차분하게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다. 아니, 우리의 운명을 맡겨야 할 신은 이미 떠나버렸다. 이제 모든 것을 그이에게 맡기고 내가 좀 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일을 풀어가야 했다.

가버나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나는 지난번 예리고 회동에 참여한 모든 랍비 조직들에게 ‘총대 예수’의 이름으로 제3차 회동을 알리는 긴급전통을 날렸다. 나타나엘과 발이 잰 나단이 전통을 품에 넣고 갈릴리 해안 길을 급하게 내달렸다. 이른 봄의 햇살을 가르며 뛰어가는 그들의 헐거운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계속>

홍성담 /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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