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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문밖 교회 손은정 목사여성사제직 논란으로 교회 인식 바꿔야

개신교의 경우에 가장 큰 교단인 예수교장로회에서는 합동측에선 여성목회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에서도 1995년 제80회 총회에서 여성 안수를 시작한 이래 여성목회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으나 전임교역자로 일하는 비율은 아주 낮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박보경 교수(선교학)는 2007년 열린 ‘신학대학원 여학생의 진로 현황 및 전망’ 세미나에서 “2006년 581명(2007년 현재 667명)의 여성목회자 가운데 위임목사는 4명(0.7%)뿐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2252명(18.3%)이 위임목사로 활동하는 남성목회자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수치이며, 여성목회자들은 99명(17.0%)이 임시, 161명(27.8%)이 전도, 212명(36.5%)이 부목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기관 목사가 32명(5.5%), 선교목사가 21명(3.6%), 무임목사가 43명(7.4%)이다. 이처럼 여성사역자들이 대부분 미조직교회나 작은 규모의 교회에서 사역하거나 마땅한 정규 사역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인터뷰에선 개신교 여성목회자인 손은정 목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7월 30일 오전에 서울 당산역 근처 ‘성문밖교회’를 찾았다. 1970년대부터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영등포산업선교회’에 달려 있는 교회로서, 사뭇 특수교회라 불릴만 하다. 약 30여 명의 신자들이 예배한다는 소규모 교회로서 비교적 다른 교회에 비하여 여성목회자가 활동하는데는 그다지 무리가 따르지 않는 곳으로 알려졌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문밖에서 돌아가셨듯이, 기성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성문밖에서 찬바람을 맞겠노라, 다짐하는 것만 같다. 바깥 마당엔 이름없는 풀꽃들이 피어있는 이 허름한 성문밖교회 이층에서 손은정 담임목사(39세)를 만났다.

한상봉: 개신교에선 여성목회자가 어떻게 여성목회자 안수가 시작되었나요?

손은정 목사: 제가 듣기에는 지난 50여 년간 신학교 여학생들이 피켓들고 전단지 만들어 돌리고, 천막농성하고 해서 겨우 얻어낸 결과입니다. 그것도 예수교장로회 통합측에서만 이뤄졌지요.

지금은 여성목회자가 되기가 쉽나요?

제 경우는 특수한 경우지요. 이곳 성문밖교회로 왔으니까요. 보통 전도사에서 교육전도사, 그리고 전임전도사에서 부목사를 거쳐 담임목사가 되는 데, 제 경우엔 여기가 민중교회다 보니 부목사 과정 없이 담임목사가 된 거죠. 이곳에선 여성목회자여서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없어요. 비교적 의식이 열린 신도들이 많아서 여성이라고 차별받지는 않는 편이죠. 여성들을 특수한 영역으로 밀어내는 것도 없고요.

8년차 여성목회자, 손은정 목사

개인적으로 목회자가 된 계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처음엔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오빠 권유로 장신대 신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죠. 외할아버지는 신앙의 순결성을 주장해서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목사님이셨고, 친가도 모두 독실한 개신교여서 자연스럽게 신학을 공부하게 된 것 같아요. 교회가 제겐 어머니 품속 같고, 고향같이 친근한 동네죠. 평생 전도사로 일하시는 고모를 흉내내서 설교도 하고 그런 셈이죠.

신학교 다닐 때는 황석영 소설이나 박노해 시집 등을 읽으며 언니 오빠들이 흘리고 간 책들을 읽었는데, 2학년 마치고 학내문제로 제적되는 바람에 빈민지역에서 아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한양대 평생교육원을 다니기도 했죠. 그러다 2004년에 복학이 가능해져서 학업을 마친뒤에, 어차피 기독교운동을 계속 하려면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대학원에서 3년동안 신학을 더 공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해방운동에 신학을 덧칠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제적을 당해 불안한 상태에서는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확신뿐 아니라 우리에겐 어떤 인간적 위로가 필요하단 경험을 했지요. 즉 우리의 연약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특히 영성신학을 교육하던 유해룡 교수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사랑과 인간사랑을 혼동하거나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죠. 우린 보통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곧 나 한테 한 것이라는 성경귀절을 자주 우려먹잖아요. 그런데 어느날, ‘아, 나는 하느님이 없었구나!' 하는 절망감이 찾아오더군요.

“하느님은 이웃사랑을 가능케 하는 근원적 힘이고, 이웃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학부 시절엔 “행동하는 곧 기도”라고 생각했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 거죠. 결국 여기서 나는 내가 하느님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자각을 하게 된 거죠.

   


목회자가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죠?

실상 교회가 익숙하듯이 목회자가 되는 것도 제게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죠. 대학원 시절에 산업선교회 노숙인 프로그램을 하면서 금요일 저녁마다 밥짓기를 도왔는데, 급기야 아예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 거죠. 중간에 독일에서 여성지도력훈련을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하고, 1999년 1월에 ‘민중교회 목회자 훈련’을 받게 되었죠. 이 프로그램은 산업선교회가 모태가 되어 민중교회운동 차원에서 신학교 졸업생들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6개월 동안 공장생활을 하고, 3개월은 전국의 현장을 경험하고, 3개월은 목회 실습을 하는 거죠.

이 훈련을 마치고 2000년 1월부터 산업선교회 전도사로 일하다가 2001년 10월에 산업선교회 추천으로 목사 안수를 받고 2002년부터 교회에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보통 목사가 되려면 전임전도사 2년을 하고 목사고시에 합격해야 하는데, 이럴 때 청빙하는 교회가 있어야 신청이 가능하죠. 저는 선교회가 보증을 선 셈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목사고시를 해마다 석가탄신일에 한다는 것이죠. 우연이겠지만...

그럼 성문밖 교회는 영등포산업선교회와 어떤 관계죠?

성문밖교회는 오랫동안 노회에 가입하지 않았다가 지난 2002년에 노회에 가입했죠. 그전엔 선교회 총무가 담임목사를 겸했던 거죠. 성문밖 교회는 오상렬 목사(남성)에 이어 손은하 목사(여성), 그 다음에 제가 담임을 맡게 되었죠. 이곳은 여성노동자운동의 산실이라서, 여성들의 입김이 좀 셈 편이죠.

여성목회자가 교회 담임을 맡게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아님 나름대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목사님이 하니까, 교회가 더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하는 분도 계시죠. 개인적 어려움은 제가 목회를 맡게 된 2002년 3월에 아기를 낳았는데, 만삭인 채로 담임을 맡게 된 거죠. 그 뒤로 바로 3개월 동안 출산휴가까지 받았으니 신도들한테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신자들은 괜찮다지만 그래도 부담은 되지요. 목회는 풀을 뽑는 것과 같아서 제 때에 일을 하지 않으면 금방 흔적이 남죠. 제가 여성이다보니 육아문제로 이런 일이 가끔 발생하게 되고, 이럴 때마다 ‘내가 남자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도 장애인 관련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늘 바쁘고, 최근엔 서로 시간 조정을 해서 일주일에 이틀저녁은 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죠.

   

여성 목회자가 출산 육아 경험을 하는 것이 목회에 끼치는 영향은 없을까요?

일단 육아부담이 없다면 좀더 효과적으로 목회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죠. 여기선 이 문제로 제게 뭐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 편인데, 오히려 교인들이 제게 육아에 대한 지도편달을 주시죠.

또한 임신했을 때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임신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죠. “노숙자들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얼마나 귀했을까?” 하고 말예요. 출산 후에 변화된 게 하나 있는데, 예전엔 다른 사람들 손을 잡을 때 쭈뼛거렸는데, 이젠 덥썩 잡을 수 있게 되고 편해졌어요. 그리고 예전처럼 깔끔 떨지 않아서 좋아요. 애 키우다보면 그게 잘 안 되거든요.

듣고보니 작은 교회라서 그런지, 비교적 잘 적응하시는 것 같네요.

지금 목회자 생활 8년차 인데, 장신대에서 20대를 보내고, 영등포에서 30대를 보낸 셈이죠. 그런데 아무래도 교회가 작으니까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것 같아요. 대형교회는 그 나름대로 역동성이 있는데, 소형교회는 적은 교우들끼리 뭔가 해야 하니 어려움이 많을 수 있죠. 그래서 작은 교회를 지향하자는 철학이 흔들릴 때가 많죠. 결국 우리 목적은 작은교회라기보다, ‘대형교회가 아닌 대안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성문밖교회가 예전처럼 명성은 없어졌지만, 여성적이고 생명을 돌보는 교회로 거듭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거죠.

가톨릭교회의 여성사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모든 운동은 당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여성사제 불가론은 상식적이지 못하잖아요. 개신교의 경우엔, 총회 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이 달려가서 입장을 표명합니다. 의식을 공유한 이들이 몇 명이라도 교회에 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다른 측면을 보게끔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의 한편에선 “여자나 남자나 주 안에서 하나”라면서 어떤 구절에선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니 말입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선배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희생했듯이 우리도 그래야 하죠. 여성사제 문제는 여성에게 권력을 주고 안 주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가톨릭교회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교회가 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여성사제 운동의 목적이 선한 것이라면 해볼 만한 일이죠. 가톨릭에서 말하듯 성찬례가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모두가 하면 더 좋을 것 아닙니까?

여성안수가 이뤄질 때까지 신학교 여학생들의 노력과 연대, 여성신학자들의 노력이 중요했죠. 그 당시 여교역자들을 위한 책도 많이 출간되었죠. 이를 테면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에 대한 성경 해석이 특별했죠. 어느 이교도 여인이 마귀에 사로잡힌 딸을 구해달라고 청하자, 예수께서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죠. 그러자 그 여인은 ‘주님, 그러나 상 아래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였죠. 결국 예수의 유대주의적 한계를 이 여인이 지적하고 도전한 것입니다. 이 여인의 도발적인 발언이 예수의 인식을 확장시킨 계기가 되었던 것이지요.

마지막 말씀이 특히 가슴에 와 닿네요. 교회가 사제직에서 제외시킨 여성들이지만, 그들의 도전으로 우리 교회도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성문밖교회 앞에서, 서울시교육감 투표를 하러 나가는 길에 사진 한 장.


/한상봉 200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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