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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타인 위했던 우리의 에스더, 김은숙말기 위암 투병중인 부미방 관련자 김은숙씨 위한 음악회 열려
고은 시인, "우리와 함께 이 삶을 이어가길 빌고, 또 빌고, 또 빈다"

“정말 감사합니다. 멀리서 부족한 저를 위해 이렇게 모여서, 격려하고 희망을 전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꼭 낫도록 하겠습니다.”

음악회가 끝날 무렵, 야윈 얼굴이었지만 단정한 단발머리, 화사한 분홍 스카프를 두른 김은숙 씨는 나직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면서 끝내 눈물을 쏟았다. 숨죽여 그녀를 바라보던 참석자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1980년 광주항쟁을 묵인하고 비호했던 미국의 실체를 드러내고 이후 반미운동의 물꼬를 텄던,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자, 김은숙(52세, 에스더) 씨는 현재 말기 위암으로 투병중이다. 외롭게 병상에 있는 김은숙 씨에게 사랑과 용기와 희망을 전하기 위한 '작은 음악회'가 지난 4월 5일 저녁 7시, 그녀가 입원해 있는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 로비에서 열렸다. 

 

   
▲ 이날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가족'이었고, 김은숙 씨에게 언니, 오빠, 동생, 그리고 부모님이 되어주었다. (사진/정현진 기자)

 

김은숙 씨의 동생으로서 이 자리를 준비했다는 임수경 씨는, 김은숙 씨의 투병에 대해 트위터로 알리면서 후원 모금을 시작했다. 지인들은 물론, 일면식 없던 이들의 소액 후원금이 5분, 10분 단위로 도착했고 모금액은 닷새 만에 6천 만원을 넘었다.

음악회는 녹색병원 양길승 원장, 원무과장, 김은숙 씨의 주치의 등의 도움과 김은숙 씨를 아는 이들이 출연을 자청해 이뤄졌다. 특히 이 자리에는 봉사활동을 통해 김은숙 씨를 알게 됐다는 여고생 이주홍 양, 최고령 독립운동가 104세 구익균 옹이 자신의 후원금을 나누고자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 임수경씨는 "트위터로 올리기 시작한 작은 소식들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이렇게 할 수 있을지 몰랐는데,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진/정현진 기자)

 

음악회에 자리한 고은 시인은 “은숙이는 드러내는 것 보다는 자신의 부재를 내세우는 숨은 꽃 같은 존재다. 운명적으로 숨어지내는 꽃이지만, 그런 꽃이 절벽에서 이룬 불꽃을 우리는 기억한다”라고 말하면서, “목련과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는 이런 봄날, 은숙이가 아프다. 아픔을 딛고 넘어서서, 우리와 함께 이 고단한 삶을 더불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빈 마음으로 빌고, 또 빌고, 또 빌고, 빌 따름이다”라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 고은 시인은 "은숙이는 숨은 꽃 같은 존재다. 운명적으로 숨어지내는 꽃이지만, 그 꽃이 일으켰던 불꽃을 우리는 기억한다"고 말했다. (사진/정현진 기자)

 

김은숙 씨가 부미방 사건으로 원주에 피해 있을 때, 이돈명 변호사와 함께 자진출두를 도왔던 함세웅 신부는 “김은숙의 어머니, 두 딸을 함께 기억하고 기도한다. 은숙이는 개신교와 가톨릭을 넘나들었는데, 가톨릭으로 왔을 때, 에스더라는 세례명을 주었다. 구약의 인물인 에스더는 민족공동체와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한 여인이었다”라고 그녀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는 그녀에게 많은 빚을 졌다. 이제 우리도 원초적 체험의 장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민족을 위해 자신을 던졌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함세웅 신부는 "김은숙은 목숨을 걸고 민족공동체를 위해 기도했던, 우리의 에스더"라고 김은숙씨 삶을 읽었다. (사진/정현진 기자)

 

소설가 윤정모 씨는 출소 후,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주변의 그늘진 사람들과 재소자들의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해 애썼던 김은숙 씨의 마음을 기억하며, 젖은 목소리로 김은숙 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 내렸다.

“그대 왜 이렇게 일찍 지쳐 버렸는가. 아직 할 일도 많은데, 먼저 맥을 놓아버리면 선배인 우리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세상이 준 고통들이 너무 무거워 이처럼 손을 놓고 싶었던 것인가. (중략) 그래, 그대는 항상 죄를 지은 듯 숨었지만, 그대는 구석구석 많은 밀알을 심었다. 부미방 사건도 노예 같은 한미관계를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지 않았는가. 당당히 일어나서 걸어갈 것으로 믿겠네. 빨리 쾌차하게.”

   
▲ 소설가 유시춘씨는 자신이 기록한 86년 고문의 역사 속에 김은숙이 있다면서, 그녀의 용기 앞에 비겁했던 부끄러움을 고백했다.(사진/정현진 기자)

소설가 유시춘씨는 스스로 김은숙의 큰언니이며, 불의한 권력이 맺어 준 인연이라고 소개했다. 86년 사방에서 24시간 고문소리가 들리던 시절, 고문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김은숙 씨를 만났고, 그녀는 출소한 지 한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수기로 써주었다. 그러나 유시춘 씨는 그 내용들을 책으로 내면서 두려움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민가협의 이름 뒤에 숨었다면서, 그 일이 짧지 않은 생애 가장 부끄러운 기억 중 하나라고 고백했다.

유 씨는 “김은숙은 강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은, 목련처럼 단아하고 고운 사람이다. 만인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위해 청춘을 묻었지만 그 청춘은 아름답다”라고 말하며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작곡가 윤민석 씨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10년 쯤 흐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난 시간은 각자의 삶 이상이 아니었음을, 개인의 아픔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은숙 선배가 이렇게 아프다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다. 많은 선배들의 길이 최소한 조롱은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또 최창남 목사는 “김은숙 선배는 아파 누워서도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고 전했고, 시인 황선은 “김은숙 선배가 가장 아끼는 이름은 큰 딸의 이름인 ‘유채’다.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4.3 항쟁, 유채꽃, 부문방 사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면서 <당신은>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이창학, 손방일 씨는 “동시대를 함께 살고 고민했던 이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며 노래를 바쳤다.

   
▲ '평화의 나무' 합창단 공연 (사진/정현진 기자)

 

 

   
▲ 김은숙씨를 병실로 돌려보내면서, 모든 사람들은 손을 잡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노래했다.(사진/정현진 기자)

모든 순서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은 손을 잡고 ‘함께 가자 이 길을’이라는 노래로 병실로 올라가는 그녀를 배웅했다. 음악회가 끝난 후, 누군가 만들어 온 모금함이 돌기 시작했다. 쌓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은 누구도 혼자 아프게 두지 말자는 다짐 같았다.

김은숙 씨 후원계좌는 농협 302-0378-0560-01(예금주 임수경) 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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