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박춘식]

▲ 사진/한상봉 기자

사순절 고백

-홍윤숙

사순절 지키지 못한 죄 제가 압니다
금식도 금육도 마음뿐이고
십자가의 길 한 번 제대로 묵상하지 못하고
밤이면 부질없는 세상의 시름 번뇌로 잠 못 듭니다
잠들게 하소서 잠들게 하소서 빌어보지만
애원도 약도 소용없는 밤
주(主)보다 주(酒)의 힘 빌리고자
포도주 몇 잔 털어마시니
주(主)보다 주(酒)가 그리 쉽고 빠르더이다
진실로 말씀은 멀고
세상의 유혹 그리 쉽고 달콤하니 ‥‥

<출처>홍윤숙 시선집, 홍윤숙, 시와시학사, 1467쪽


해마다 사순시기는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사십일 동안 예수님과 나날이 가까워져야 하는데, 나약한 걸음으로 허우적거리다 어느 날은 예수님께서 저만치 물러서 계십니다. 이러한 우리 심정을 데레사 홍윤숙 시인이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는 아주 멋진 기도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싹들을 보면서 감사와 찬미기도를 바치고, 잡다한 삶의 움직임 안에서 십자가를 자주 생각하며, 그리고 밤에는 빛살기도(화살기도)를 여러 모금 마시면서 잠을 청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할 것 같습니다. 어깨에 숨어있는 거만한 힘을 빼고, 흙가슴으로 사순시기를 낮게 낮게 색칠하여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간다면 어떨런지요.

나모 박춘식 야고보는 경북 칠곡 출생으로 가톨릭대학 신학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선교 및 교육활동을 하였고 신일전문대학에서 퇴임한 다음 현재는 스스로 반(半)시인이라고 부르며 칠곡군 작은 골짜기에서 기도와 시에 단단히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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