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환,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생각의나무, 2011

"나는 교육이론가나 학자도 아니고 신실한 교사도 못 된다. 그래서 사회를 분석하고 교육모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난다. 그러나 학교가 얼마나 굴종과 억압의 공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그 학교가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 굴종과 억압을 원한 것은 아니라지만 살펴보면 우리가 초래한 것이듯, 한국사회의 모순 역시 대중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 그 중심에 교육이 있어왔다. 이 책은 이 사태를 늦게 깨달은 현장교사의 고백이기도 하다."

학교를 통해 세상을, 세상을 통해 학교를 보다

한국사회에서 교육문제는 가장 많이 이야기되지만 가장 해결책이 멀다. 그러한 답답함 때문에 외국의 뛰어난 교육사례들을 소개하여 돌파구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그 답답함을 떨치기 힘들고 첩첩산중 오리무중일 뿐이다. 저자 황주환은 일선 교사로서 이러한 교육현실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온몸으로 느꼈다.

스스로를 ‘신실한 교사’도 못 되고, 교육모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다고 말하지만, 학교가 얼마나 굴종과 억압의 공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 학교가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에 절망한다. 한국사회의 여러 모순은 대중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말하고 싶었고, 그 중심에 교육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학교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겪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말하고 있으며, 저자가 교사가 된 후, 한국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변하게 되었는가를 말한 현장교사의 고백이다.

저자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점차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하는데, 그의 학생들은 단순한 가르침의 대상에 멈추지 않고 저자를 일깨우는 존재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썽 많고 반항하고 어두운 아이들이지만 결코 따듯한 연민을 놓지 않는 저자의 시선이 엿보인다. 더욱 큰 문제는 학생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제대로 성장시켜주어야 할 학교라는 공간이 너무도 많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가난한 아이들을 향한 배려 없는 시선과 끊임없이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든가 학교는 즐겁고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저자는 비록 이처럼 어두운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희망의 끈과 따듯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가 인용한 노신의 글귀는 인상적이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질문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답을 찾게 한다

저자는 자신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향적이며, 중립을 믿지도 않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불려지는 것도 바라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지배의 논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름답고 말랑말랑한 이야기 속에서 은폐되어버린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불편한 말들로 춤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껄끄러운 독자가 있다면, 자신의 글이 일정 부분 성공한 것으로 여기겠다는 것이다. “불편하지 않은 독서란 무의미하고, 불편한 질문을 시작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수히 많다. 병의 치유는 병의 자각에서 시작되기에.”

따라서 저자는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요구한다. 제대로 된 질문은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질문이 우리의 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질문하는 태도와 방법을 잃어버렸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마냥 긍정하거나 뭐 별것 있어 하면서 냉소적 태도로 일관할 때가 많다.

저자는 굳어버린 비판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우리 교육이 갖는 최대의 문제점이기도 한데, 많은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기에 급급해 그것을 제대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훈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두발문제와 관련해 학생들과 토론하는 장면에서 저자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주문한다. 자칫 인정에 묻혀 불편함을 애써 피하기 위해 지나치는 많은 것들이 결국은 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구축된다는 점을 저자는 내내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비판의식의 함양은 합리적 소통능력을 지닌 ‘민주시민’의 소양과도 깊은 관련성을 갖게 된다. 저자의 관점에서 교육이란 그런 능력을 지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풍성하게 바라보게 하고, 나와 세상을 바꾸는 ‘불온한 독서’

이 책에 수록된 황주환의 독서노트는 우리가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고, 그 책을 통해 어떻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범들이다. “나를 바꿔준 책들에 대하여”에는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세상을 비춰 보게 했던 책들에 대하여”에는 루쉰의 <아큐정전>, 강명관의 <열녀의 탄생>,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독서노트가 실려 있다.

이 독서노트들은 하나의 서평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책 자체의 텍스트를 넘어 저자 자신의 삶과 사유라는 컨텍스트로 이어짐으로써, 하나의 책들을 더욱 깊고도 풍성하게 읽어내게 되고, 전태일, 아이히만, 아큐 등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해준다.

저자의 독서노트는 텍스트 자체를 소화함과 동시에 서평을 기반으로 한 하나의 시론으로 발전하는 성격을 갖는데, 그러한 이중적 과정 속에서 인식의 폭과 비판의식을 향상시켜준다. 물론 모든 텍스트는 그것을 읽어내는 독자의 몫이지만, 어떤 공감을 충분히 이끌어냄으써 편향성을 넘어 균형감 있는 시각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저자의 글이 공허하지 않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관념보다는 삶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폭넓은 사유와 삶을 기반으로 한 이러한 독서노트는 저자가 종종 쓰기도 했던 ‘텅 빈 기호’를 충만하게 채우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시골교사 황주환의 글은 세상을 둘러싼 두터운 벽을 흔드는 작은 외침이며,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절망을 넘어 아름다운 삶을 갈망하고 되뇌이게 하는 희망가다. 삶으로 써낸 일선 교사의 자기고백적 글은 모순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많은 것들을 냉철하게 돌아보게 하며, 그 모순을 풀어가기 위해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절실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황주환 씨는 1966년 경북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개인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어수선하게 보냈다. 1994년부터 몇몇 학교를 거쳐 지금은 작은 읍의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가르친다’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응시하다가 딸을 낳고는, 한국사회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다. 이제, 모두 제 몫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지금보다는 더 아름다운 세상을 희망한다. 그래서 이 봄날, 나도 꽃피고 싶어 환장한 남자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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