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이광조]

일본 교토부 마에즈루. 마에즈루는 일본 해상 자위대 기지가 있는 군사항구도시다. 이곳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중국대륙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이 귀국선을 타고 들어온 항구로 일본인들에게는 패전의 쓰라린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마에즈루 항의 작은 만을 따라 난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옆으로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인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어린 아이를 안고 길을 나선 여인의 형상을 한 이 동상은 1945년 8월 22일, 마에즈루 항에서 침몰한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당시 우키사마호에는 일제에 의해 강제 연행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해군시설 등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 노동자와 그 가족 3735명(일본정부 발표, 민간단체 추정으로 약 5천에서 6천명)이 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본군의 의도적인 폭파로 추정되는 이 사고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잃었다(일본정부의 공식집계로는 조선인 524명, 일본인 승무원 25명. 민간단체 추정으로는 조선인 약 5천명).

부산을 바라보고 있는 이 추모동상 옆에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가 함께 서있다. 이 추모동상과 기념비는 마에즈루에 살던 평범한 일본인 교사들과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 일본 우익들의 방해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뜻있는 재일동포들도 하나 둘 힘을 보태 지금은 매년 8월 22일, 이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 마에즈루 항에서 침몰한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동상. (사진/이광조)

지난 2005년 이곳에서 추모동상 건립을 주도했던 미술교사 요헤 가쓰히코 씨와 관동군으로 전쟁을 체험했고 귀국한 뒤에는 마에즈루시 공무원으로 일하며 동상건립에 앞장섰던 스나가 씨를 만났었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지금껏 내 마음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건 우키시마호 폭침 당시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구했던 마을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남자들은 죄다 전쟁터에 끌려가고 여성들만 남은 어촌. 패전 후의 팍팍한 살림살이에 날마다 작은 어선을 타고 바다 일을 나갔던 여성들이 우키시마호의 침몰을 목격하고 바다에 빠진 생존자들을 구출했다고 한다. 사고 뒤 현장에 찾아온 신문기자가 ‘조선인인 줄 알고 구출했냐’는 질문을 던지자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데 그 사람이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그게 무슨 문제냐’고 야단을 쳐서 쫒아냈다는 여성들. 우키시마호 침몰사건의 원인과 배경에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무거운 역사가 도사리고 있지만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는 건 어쩌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지역 해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었다. 안타깝게도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목숨을 잃을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엄청난 고난을 겪고 있는 일본국민들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모예배와 미사, 법회가 열리고 각국 정부와 국민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사회 일각에서 일본의 재난을 ‘징벌’에 비유하는 발언들이 나와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소수의 편협한 생각이라 자위해 보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많이 앗아갔다. 피로 물든 그 살육의 역사는 대부분 국가와 민족, 인종,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을 나 또는 우리와 일체화하려는 시도는 많은 경우 폭력을 동반했고 전체주의로 흘렀다. 그 무시무시한 역사를 벌써 잊었나. 나와 너, 우리는 국가, 민족, 인종, 신앙에 앞서 사람이 아닌가.

이광조/ CBS PD

<기사제공/인권연대 http://hrights.or.kr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