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41] 동행-유다와 예수

헤로데의 비서가 사반에게 급히 궁에 들어오라는 전갈을 전했다. 사반이 군복을 차려입고 현관을 나서자 하인들이 양 손목에 가죽 손토시를 둘러 묶어주었다. 사반은 어깨에 힘을 주어 양 손목의 가죽 손토시 끼리 몇 번 부딪쳐 소리를 냈다. 이것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신호였다.

요한이 죽고 나서 광야 이곳저곳에서 외쳐대는 잔소리꾼들이 더욱 많아졌다. 달포 전에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스스로 선지자라 칭하는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제보를 듣고 즉시 사병들을 보내 그의 목을 걷어왔다. 살로메가 그자의 목을 보고나서 허리를 뒤로 한껏 제끼며 큰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리고 큰 거실을 한 바퀴 돌면서 춤을 추다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한번 보고 나서 획 뒤돌아섰다.

사반은 움찔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벌써 예수를 두 번째 놓쳤고 이번에도 역시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어제는 헤로디움에서 예수라는 선지자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물론 유대 땅의 남자들 열 명중에 한 둘은 예수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그와 같은 이름의 잔소리꾼들이 나타난다는 것이 영 꺼림칙했다. 그리고 그런 소리만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예민해지는 살로메를 볼 때마다 질투 비슷한 감정이 일어났다.

헤로데가 그의 쳐진 눈꼬리에 의심을 가득 담아서 눈을 가슴츠레하게 뜨고 사반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요한의 후계자라는 놈의 목을 성문밖에 매달았건만 왜 여기저기서 요한의 후계자라는 놈들이 자꾸만 기어 나오는 것이냐. 잔챙이들만 잡아 죽이면 오히려 백성들의 반감을 자극한다. 천하의 사반도 요한에게 홀린 모양이구나. 그놈들은 무슨 둔갑술이라도 쓴다는 말이더냐. 진짜 예수가 누구냐. 요한의 후사라는 놈 말이다’

살로메가 헤로데의 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주전자를 잡은 가느다란 팔 사이로 살포시 보이는 배꼽이 앙증맞게 생겼다. 살로메가 헤로데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갈릴리 촌구석에서 태어난 어줍잖은 예수라는 사람이 무슨 위협이라도 되겠습니까. 신경을 너무 과도하게 쓰십니다’
‘아니다. 불길한 징조는 싹부터 잘라야 하거늘’

사반은 진즉부터 아랫사람들을 풀어 예수를 찾는데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수하들을 모아놓고 탐문조의 인원을 두 배로 늘릴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사마리아 타볼산 이즈르엘 계곡에서 예수일행이 활동을 펴고 있다는 첩보가 날아들었다.

그가 수하에게 반복해서 물었다. 첩보를 가져온 수하가 분명히 요한의 후계자인 나자렛 예수임을 확인했다고 거듭 대답했다. 이번 기회엔 결코 그의 목을 따서 헤로데 보다 먼저 살로메 앞에 던져놓고 과연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꼭 보고야 말리라고 다짐했다. 자신만의 사병을 비밀리에 키우는 훈련장으로 곧장 향했다. 숫자가 많으면 오히려 번거로우니 그 중에서 가장 검술에 능한 무사 두 명을 뽑았다. 그들에게 내일 저녁에 길을 떠날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이곳에서 말을 달려 사마리아 지역인 ‘기네’의 객주에 말을 맡겨놓고 그곳에서부터는 길보아 산을 도보로 넘어 그들의 근거지인 하로드 강가의 계곡 배후로 잠입하는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이번 작전은 얼추 일주일도 넘게 걸릴 수 있으므로 전투용 식량을 충분히 챙기라고 당부했다. 이 모든 것은 살로메에게 철저히 비밀로 했다.

살로메는 사반의 움직임이 갑자기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사반의 졸개 가운데 그녀가 심어놓은 사내가 그녀를 몰래 찾아왔다.
‘사반 대장이 직접 무사들을 데리고 이틀 후 아침에 어디론가 출발한답니다.’ 그녀가 졸개에게 묵직한 돈주머니 한 개를 던져주었다. ‘그래, 제보된 그 자가 확실히 요한의 후사 예수라고 하던가?’ ‘예, 이번엔 틀림없습니다.’ 다시 조금 더 무거운 돈주머니 한 개를 던져주었다. ‘그러면 그곳이 정확하게 어디라고 하던가?’ ‘길보아 언덕 아래 하로드 강가의 계곡이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돈주머니 한 개를 던져주었다.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살로메는 그녀의 하인 중 가장 영리하고 믿을 만한 사내에게 자신의 날랜 말을 내주면서 말했다. ‘길보아 언덕 하로드 강 계곡까지 쉬지 말고 달려라. 이번엔 사반이 직접 나섰다고 그들에게 전해라’

그녀의 하인은 밤새워 말을 달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하로드 강 계곡에 도착해 유다를 만나 살로메가 전한 말을 했다. 유다가 물었다. 사반을 포함해서 모두 몇 명인가. 하인은 살로메에게 들었던 그대로 말했다. ‘사반의 사병들 중에서 뽑은 무사 두 명입니다. 모두 싸움에 능한 사람들이지만, 그 누구보다 사반 부장의 검술은 유대 땅에서 으뜸입니다’ 유다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인에게 물었다. 마케루스 궁을 표시하는 말 견장 깃발은 갖고 있는가. ‘내가 타고 온 말 안장 밑에 숨겨 두었습니다’ 그것을 내게 주시오. 그리고 당신은 돌아가는 길이 조금 멀겠지만 스키토폴리스를 지나 요르단 강을 따라서 마케루스로 가시오.

유다는 그리짐산에서 도망하여 이곳 길보아산에 자리를 잡자마자 가장 먼저 시몬과 함께 주변의 지형을 이미 파악했었다. 이곳이 접경지역이라서 규모 있는 병사를 동원하기엔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단 세 명만 온다는 것은 길보아산에 잠입하여 우리들의 움직임을 충분히 파악한 뒤에 매복이나 기습을 하려는 계획을 펼 것이다. 그들이 타고 온 말을 며칠 동안 맡길 만한 객주는 이 인근에서 길보아산 너머 ‘기네’ 밖에는 없었다. 유다는 즉시 동료들 중에 가장 눈이 밝고 발이 잰 나단을 기네 객주에 보내 살로메의 하인에게 받은 마케루스 궁의 말 견장을 눈에 쉽게 띄도록 마굿간에 버려두고 동태를 살피라고 했다. 다음날 오후에 나단이 급하게 달려왔다. ‘그들이 도착했소. 하인의 말 그대로 건장한 사내들 세 명이오. 말을 기네 객주에 맡기고 오늘 밤에 기동을 할 요량이오’

사반은 말을 마굿간에 넣어 안장을 들어내고 기둥에 고삐를 걸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케루스 궁의 말 견장을 주워들었다. 색깔이 녹색인 점으로 봐서 분명히 헤로디아나 살로메가 사용하는 말 견장이었다. 사반이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페레네 마케루스 궁의 말이 이곳에 들었다가 간적이 있소. 주인은 나단이 일러 준대로 말했다. 예, 당신들이 오기 직전에 잠깐 이곳에서 말을 쉬었다가 급히 떠났소이다.

사반이 여기까지 오면서 말을 달리는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러면 이곳에서 페레네로 향하는 길은 우리들이 올라온 길 말고 다른 길이 또 있는 것이오. 객주 주인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예, 두 개의 길이 있소. 사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살로메가 저놈들에게 미리 사람을 보냈다. 그러면 저들 예수 일행은 밤을 타고 이즈르엘 계곡을 따라 동북쪽으로 피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작전을 변경해야 했다. 아니, 오히려 일을 빨리 손쉽게 끝낼 수 있는 기회였다. 길보아산을 서쪽으로 돌아서 접근하여 이즈르엘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쯤에 매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다는 망설였다. 모두 함께 도피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헤로데와 사반의 추적이 계속되는 한 우리들이 먼 미래를 보고 장기적인 계획을 안정되게 세워 나갈 순 없었다. 그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사반과 어차피 사생결단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유다는 예수 몰래 동료들을 모았다. 시몬과 유다 외에 칼을 다룰 줄 아는 마레사가 선두에 나서고 이리야의 지휘아래 몇 명의 동료들이 후방에서 지원을 하는 계략을 짰다. 그리고 그들이 실패할 경우에 어떻게든 지연작전을 펴면서 신호를 보낼 터이니 엘나단과 안드레아 그리고 카루라가 미리 떠날 준비해두었다가 예수와 나머지 일행들을 데리고 스키토폴리스를 지나 요르단 강을 건너 펠라로 도피하라고 말했다. 펠라에는 그의 백부가 상당히 큰 대상을 꾸려 그곳 상권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유다는 일행들이 펠라에서 힘들게 되면 백부를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라며 안드레아에게 신신당부 했다. 안드레아가 눈물바람을 했다. 동료들도 모두 긴장했다.

유다 일행은 사반이 매복할 만한 길에 약 서른 발 간격으로 세 군데의 숲속에 마른나무 단을 묶어 마치 움막처럼 쌓고 그 뒤에 동료 한 명씩 숨어서 신호를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길 양쪽에 사람 세 길 크기의 무성한 싯딤나무 위에 나뭇단을 몇 개씩 올려놓고 나무마다 이리야의 지휘아래 동료 한 명씩 올라가서 몸을 숨겼다. 유다가 일일이 그들의 등을 다독이면서 말했다. 길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너희들은 절대 아래로 내려오면 안된다. 계획한대로만 하면 된다. 그리고 싸움에서 우리가 불리하다 생각되면 주저하지 말고 무조건 숲속으로 들어가 숨어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니 놈들은 함부로 숲속에 절대 들어오지 못한다.

유다의 심중은 복잡했다. 지금 이곳에 급파된 그들은 특별하게 조련 받은 무사들임이 분명하다. 세 명 모두를 각각이 갈라놓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달려든다 해도 승산이 없다. 그들은 숱한 전투의 경험으로 자기편 동료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지 몸에 익힌 녀석들이다. 단 한 명은 그 한명의 역할 밖에는 못하지만 두 명이 함께 있을 때는 다섯 여섯의 힘을 발휘하고 세 명이 같이 있을 때는 열 명 스무 명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어떻게든 그들 세 명을 각각 따로 분리만 해 놓는다면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 쪽에 승산이 있을 것이다.

초승달이 서쪽에 잠깐 보였다가 숲 뒤편으로 떨어졌다. 달이 지자 사위가 갑자기 더 어두워 졌다. 유다가 마치 예수처럼 보이도록 랍비복장을 했다. 마레사가 유다의 앞에 서고 시몬이 뒤에서 걸었다. 동료들이 준비하여 숨어있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몇 발자국 더 걸어가자 저 앞에서 희무끄레한 사람들 둘이 길로 나섰다. 유다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만 걸음을 멈추고 동료들이 길 양편 숲속에 숨어있는 뒤쪽으로 천천히 물러서라. 유다 일행은 동료들이 올라가 숨어있는 싯딤나무를 가늠하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 그림/홍성담

건장한 사내들 두 명이 빠르게 걸어서 다가왔다. 그들이 랍비복장을 한 유다를 확인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방금 그들이 숨어 있던 곳에서 다른 한 명이 나타났다. 유다가 물러서려하자 그 두 녀석이 길 양쪽으로 비껴서 유다 일행의 뒤를 막아섰다. 시몬과 마레사가 즉시 품안에 숨겼던 칼을 빼서 휘저으며 그 두 녀석을 더 뒤쪽으로 밀어붙였다. 갑자기 칼을 휘두르며 너무 완강하게 덤벼드는 바람에 두 녀석은 얼결에 뒤쪽으로 한참을 물러나서 뒤늦게 칼을 빼 들었다. 시몬과 유다의 사이가 열 걸음 쯤 벌어졌다. 그때 숲속에 숨어있던 동료들이 나뭇단을 시몬과 유다사이의 길에 쌓아 불을 붙였다.

사반이 자신과 수하들을 격리하는 저들의 화공을 지켜보면서 웃었다. 유다의 뒤쪽에서 치솟는 불길에 사반의 얼굴 표정이 자세하게 보였다. 무장답지 않게 신중한 표정이었다. 사반이 그의 앞에 서있는 랍비복장을 한 유다에게 물었다. ‘흠, 요한이 이런 병법 따위도 가르쳤더냐. 그러나 싸움은 병법만으로 되는게 아니지. 그래 네가 예수라는 놈이냐’ 유다는 떨리는 가슴을 억지로 누르고 태연한 척 말했다. 너의 눈에 그렇게 보이느냐.

사반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시골구석의 백면서생인 너도 칼을 쓸 줄 알더냐’ 유다의 등 뒤 불길 너머에선 벌써 칼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거푸 들렸다. 유다가 품에 숨겼던 칼을 빼 들었다. 내 생전에 부엌칼 외엔 한번도 써본 적이 없다만 이렇게 너에게 매번 도망다니느니 죽기 살기로 한번 해 보겠다. 사반이 크게 웃었다. ‘호, 용기는 가상하다마는 이런 조무래기를 상대해야 하는 내 칼이 부끄럽구나. 그래 먼저 덤벼 보아라.’

유다는 곁눈질로 동료가 숨어있는 나무를 가늠하면서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유다가 꼼짝도 하지 않자 사반이 숨을 크게 한번 고르고 나서 칼을 내지르며 뛰어 왔다. 유다가 어렵게 그의 칼을 두어 번 받아냈다. 사반의 힘이 워낙 강해서 칼이 부딪칠 때마다 유다의 칼이 한 뼘씩 밀렸다. 그 충격으로 벌써 유다의 손목이 시큰거렸다. 사반이 다시 칼을 내리치며 유다가 왼쪽으로 피한 것을 보고 그의 발이 유다의 복부를 걷어찼다. 유다가 비틀거리며 겨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직도 나무 위에 숨은 이리야의 신호가 없었다.

혹시 모두 도망 가버렸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끔직한 두려움이 유다의 몸을 덮었다. 그러나 이미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마음에 동하는 의심을 버리고 동료들의 지원을 믿었다. 저 녀석과 어떻게든 최소한 다섯 걸음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유다가 말했다. 사반. 너는 예의도 없구나. 어찌 이 랍비옷을 입고 내가 싸워야 하겠느냐. 이 긴 옷을 좀 벗겠다. 사반이 다시 크게 웃었다. ‘그렇지, 요즘 랍비라는 것이 모두 허울뿐이지. 너의 마지막 길이니 그 거추장스러운 허울을 벗고 사람답게 죽을 기회를 주겠다’

사반이 칼을 겨눈 채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유다가 옷을 벗어 동료들이 올라가 숨어있는 싯딤나무 밑둥에 획 던졌다. 호, 이 따위 것을 벗고 나니 네 말대로 아주 시원하구나. 오늘 한번 맘껏 겨뤄보자. 자 오너라. 다시 두 세 번의 접전이 이루어지고 사반의 마지막 칼끝이 유다의 칼을 든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유다가 한 손으로 어깨를 누르며 다시 뒤로 물러서서 거리를 유지했다. 사반은 이쯤에서 싸움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칼을 바짝 위로 올리고 달려왔다. 그때 이리야의 신호에 맞추어 나무위에 숨어있던 동료들이 사반을 향해 불붙은 나뭇단을 던졌다.

사반의 몸에 맞은 나뭇단이 어지럽게 불티를 날리며 그의 몸이 잠깐 균형을 잃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유다가 불티를 헤치고 달려가면서 사반의 허벅지에 칼을 그었다. 사반이 연기 속에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고함을 지르며 내려치는 칼을 유다의 칼이 아래서 올려치며 가까스로 막았다. 유다는 사반의 힘에 밀려 칼을 놓치고 넘어졌다. 칼을 놓친 유다의 손목이 얼얼했다. 자세를 수습한 사반이 넘어진 유다를 향해 칼을 찔렀다. 이리야가 나무위에서 몸을 날려 사반의 칼을 받았다. 사반의 칼이 이리야의 복부 깊숙이 박혔다. 이리야가 사반의 몸을 껴안아 양손을 둘러 깍지를 꼈다. 사반이 칼을 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이리야의 손깍지는 쇠사슬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이리야가 외쳤다. ‘유다! 이때다! 이때를 놓치지 말라구’ 유다가 놓친 칼을 주워들고 달려가 사반의 등을 깊이 그었다. 그때 시몬과 싸우던 무사 한 녀석이 불타는 나뭇단을 뚫고 나타났다. 녀석이 머리칼과 얼굴에 붙은 불티를 터는 순간 유다가 칼을 그의 가슴에 박으며 어깨로 밀었다. 이리야의 손에서 풀려난 사반이 비틀거리며 유다를 향해 다가왔다. 힘껏 내려치는 유다의 칼을 사반이 손으로 쳐냈다. 다시 유다가 칼을 놓치고 말았다.

불 건너편에서 사반의 무사와 접전을 하다가 부상당한 시몬이 칼을 땅에 짚고 절룩이며 사그라져가는 불꽃을 건너왔다. 애써서 정신을 가다듬은 사반이 품에서 짧은 칼을 꺼내들고 유다의 목을 겨누며 다가왔다. 시몬이 쓰러지면서 유다에게 칼을 던졌다. 유다가 칼을 받아 남아있는 모든 힘을 실어서 사반의 옆구리를 그었다. 사반이 짧은 칼을 놓치고 비틀대다가 핑그르르 한 바퀴 돌고나서 겨우 중심을 잡았다. 사반은 옆구리에 치명상을 입었다. 유다가 칼끝을 그의 가슴에 대고 밀었다. 그가 비칠거리며 뒤로 물러가서 싯딤나무에 등을 기댔다. 이미 그를 살려주기엔 늦었다. 숨통을 끊어주는 것이 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길이었다. 유다가 칼을 높이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제야 요한 선생의 원수를 갚는다’

사반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평생을 바쳐 바라보았던 권력이 아득하기만 했다. 지난번 거울에 비친 유대의 새로운 황제 사반이 한쪽 손을 높이 들고 손짓했다. 그 옆에 살로메가 흰색 토가를 입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 동굴처럼 깊은 눈을 흘기며 서 있었다.

사반이 옆구리의 벌어진 상처에서 삐져나오는 창자를 양손바닥으로 틀어막으며 물었다. ‘네가 예수냐’ 유다가 웃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름을 어찌 헤로데의 개가 외우느냐’ 사반이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 목을 거두어 살로메에게 보내라’ 사반이 눈을 감고 목을 길게 빼어 내주면서 다시 물었다. ‘도대체 넌 누구냐’

유다의 칼이 힘껏 내리쳤다. 목뼈를 짜르는 거친 감촉이 순간적으로 유다의 손바닥에 들어왔다. 사반의 목이 떨어져 땅바닥에서 두세 번 펄쩍 뛰다가 뚝 멈추어 눈을 뜬 채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다가 멀리 칼을 던지며 사반의 목을 향해 말했다.
‘나는 유다, 가리옷의 유다!’

유다는 긴장이 풀어지며 양쪽 무릎에 힘이 빠졌다. 곧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싯딤나무에 기댔던 사반의 건장한 몸이 쓰러지는 둔중한 소리가 그의 등 뒤로 들렸다.

시몬이 절룩이면서 유다의 품에 쓰러지듯이 안겼다. 오른팔에 상처를 입어 천으로 싸맨 마레사와 다른 동료들도 뛰어왔다. 이리야는 사반의 칼이 복부에 깊이 박힌 채 잠들어 있었다. 그들이 자리를 대강 수습했다. 다음날, 기네 객주에 맡긴 사반일행의 말에 사반의 목을 담은 나무상자를 실어 살로메에게 보냈다.

하인이 나무상자를 살로메의 탁자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그녀는 웃었다. 식탁위에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상자를 닫아라. 그리고 즉시 마차에 실어라’ 살로메가 탄 마차를 하인이 급히 몰았다. 그녀는 사반의 사병들을 비밀리에 키우는 훈련장으로 갔다. 사병들이 훈련을 하다말고 살로메 앞에 모두 모였다. 살로메가 나무상자에서 사반의 머리를 꺼내 높이 들어 올려 그들에게 보였다. ‘너희들의 주군이 이 모양이 되어 돌아왔구나. 너희는 어찌할 텐가. 주군이 없는 너희들은 노예나 종으로 팔려갈 것이다. 이곳에 남아서 나를 위해 일할 사람은 내가 모두 귀하게 거두겠다’ 사병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어 그들의 새로운 주군 살로메에게 수하의 예를 갖추었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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