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박영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신학연구소는 새 길 찾기를 위해 노력했다. 지나고 나니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이다. 이를 통해 얻어진 결론을 보면 다시 제자리에 선 셈이다. 우리신학연구소는 연구와 실천을 통합해야 한다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결론이다. 하지만 헛바퀴를 돈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1년 동안의 논의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이 연구소의 과제와 미래에 대해 더 깊이 더 넓게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는 게 아니라 ‘통합’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연구 그 자체가 실천이 될 수 있는 연구, 실천에 영감을 주고 활력을 주는 연구, 실천을 통해 그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연구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아직 우리신학연구소가 설립되기 전, 우리가 평신도 신학운동을 고민하고 연구소 설립을 준비할 때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은 우리 사회에서 진보학술운동이 새롭게 모색되는 시기였다. 진보학술운동은 기존 학계에 대한 날선 비판을 전제로 했는데, 비판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나는 기존 학술 활동이 실천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지식 생산이 개인화되었다는 것이었다. 혼자 연구하고 그 성과를 독점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우리신학연구소 전신 가운데 하나였던 가톨릭청년신학동지회(우리신학연구소는 우리신학연구실, 가톨릭청년신학동지회, 가톨릭자료정보센터가 합쳐 설립되었다)는 천주교사회운동의 이론, 공동체운동론 등 해마다 공동 연구 과제를 정하고 이를 다시 소주제로 나누어 월례발표회를 연구 결과를 통해 진행했다. 제1기 월례발표회의 연구 성과는 무크지 불쏘시개의 첫째 권인 <변혁시대의 교회>로 자가 출판되었다. 여기 실린 글들은 가톨릭청년학생모임에서 소모임 학습 교재로 활용되었다.

우리신학연구실이 만들어낸 청년 성서 모임 교재 <우리들의 성서> 시리즈도 전문 학자가 아닌 청년 활동가의 공동 연구를 통해 탄생하였다. 우리는 기존 가톨릭청년성서모임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성서 모임이 단순히 공부로 끝나지 않고 사회 실천을 이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들의 성서>를 만들었다. 우리신학연구소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우리들의 성서> 모임을 확산하기 위한 담당 기구인 소공동체교육원을 두었다. 당시 <우리들의 성서> 모임을 이끌던 분들은 우리신학운동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진보신학운동에서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을 모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대중성과 현장성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신학연구소는 연구의 전문성을 주로 고민했던 가톨릭청년신학동지회, 공동체운동을 통한 신학의 대중화를 주로 고민했던 <우리들의 성서>, 이 두 흐름이 서로 균형이 이루며 발전해야 했다. 하지만 전문성을 추구한 그룹은 상근 전업 방식으로 일했고, 소공동체교육원은 자원 봉사 형식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우리신학연구소는 현실적으로 연구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소공동체교육원 책임자가 외국 유학을 떠나면서 <우리들의 성서> 모임도 소공동체교육원도 점점 쇠퇴하였다.

연구와 실천의 통합은 생각이나 지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꿈,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기투합과 투신이 필요하다.

우리신학연구소를 설립할 때 우리는 몬드라곤공동체의 설립자 호세 마리아 신부의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든다”는 말씀을 늘 마음에 새겼다. 다시 길 아닌 길 앞에서 서며 정호승의 “봄길”을 마음에 새겨본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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