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촛불평화미사, 재능교육 학습지 농성장에서 봉헌-"따뜻한 동료들의 사랑때문에 후회없어요"

1월 22일 토요일 유독 추운날씨에도 촛불평화미사가 봉헌되었다. 서울 시청 앞 광장 길 건너 재능교육 학습지 회사 앞 농성장에는 거의 망가져 가는 1인용 천막 2개가 보인다. 농성천막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리만큼 갖추어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만큼 용역경비 깡패들의 횡포가 심한 편이다.

   
▲너무나 허술한 농성천막 추운 겨울 농성중인 노동자들의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다.(사진/두현진 기자)

1월22일 토요일로 재능교육학습지 천막농성 1129일째, 강종숙 전국학습지산업 노동조합 위원장은 마음 편할 날 없이 천막농성장을 지켜왔다. 강종숙씨는 올해 42살 방문학습지 노동자로 일을 시작한 것은 2000년, 어느덧 11년이 지나고 있다. 추운 겨울도 천막농성장을 떠날 수 없는 농성생활, 처음부터 그가 이런 생활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돈을 벌려고 들어온 회사가 학습지 회사였고, 오래 일할 생각도 갖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올바르지 않다,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가 어느새 그를 노동운동가로 만들었다.  처음 방문학습지 교사로 일을 시작한 지역은 서울 상도동 밤골,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다. 부모가 일을 나가 낮 동안에는 어린이와 노인들만 보이는 곳, 눈 치울 사람이 없어 겨울눈이 이듬해 봄까지 남는 곳, 우산을 받쳐 들고 지나가기 힘겨운 좁은 골목이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사정도 딱해 보였다.

부모들이 관심을 줄 수 없어 기초학력도 모자라고 정서적으로도 산만한 경향이 있었다.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마음 아팠다는 강종숙씨,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어린이, 힘겹게 할머니와 함께 사는 어린이등,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이 학습지를 끊으면 자신이 돈을 내며 가르치기도 했다. 강종숙씨는 "방문 학습지 교사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면 참 많은 사연이 있다"며,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동료들의 사랑때문에 후회없이 살아갑니다." 강종숙 전국학습지 산업노조 위원장. (사진/두현진 기자)
학습지교사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학습지 회사는 다단계 피라미드처럼 ‘학습지를 시작하는 학생이, 그만두는 학생보다 많아야 한다.’며 교사들을 괴롭혔다. 주 5일 근무라고 했지만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실적을 채우라는 독촉을 들었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돈으로 허위 허위학생을 만들어내야 했다. 인간적 모멸감이 가장 힘겨웠고 답답했던 강종숙 씨는 지국에 근무하는 동료들을 모아 '교사회의'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국 관리자에게 '주5일 근무 준수, 부정영업 근절'등을 요구했다. 지국 35명 모든 교사가 한 목소리를 내자 지국 관리자는 예전처럼 독단적으로 학습지교사들을 마구 대하지 못했다. 이렇게 동료들을 대변해 회사에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방문지 학습교사는 주5일 근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회사의 통제를 받고, 때로는 교사가 돈을 내야하는 허위 학생을 만드는 등 부정 업무를 강요받기고 한다. 그러나 학습지 교사들은 노동 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학습지 회사에서 교사들을 개인사업자로 등록시켜 법적으로는 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게 만들었다. 회사 측은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고 말한다. ‘해고자 복직, 단체협약 준수’ 등을 요구하는 천막농성 학습지 교사들에게 회사 측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월급을 가압류 당하게 만들었다.

강종숙 위원장의 월급도 모두 가압류되었다. 월급도 가압류되는 힘겨운 생활 강 위원장은 어떤 마음으로 농성장을 지키고 있을까?

"2006년도에도 싸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천막농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농성을 시작했죠. 그런데 아내가 임신중이였습니다. 100일 동안 집에는 2~3번 들어갔습니다. 동료들에게는 아내의 임신소식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천막을 비우면 조합원들이 흔들릴 것 같아 묵묵히 천막을 지켰습니다. 임신으로 힘겨워하는 아내에게 해준 것이 없어요. 아내와 아들에게는 평생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평생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는 강종숙 씨, 지금의 생활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에 회사 측에서 고용한 경비용역 깡패들은 학습지교사들의 농성을 더 많이 괴롭힌다. 여성교사들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성적 욕설과 폭행 등이 늘 가해지고 있다. 이런 어려운 천막농성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집을 방문하면 참 어려운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혼 때문에 조부모 혹은 홀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 우리사회가 왜 이래야 되는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이 싸움이 학습지 교사들을 위한 싸움일수 있지만 전체 사회를 좀더 밝게 만드는 싸움이라 생각합니다."

강종숙씨는 자신의 싸움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동료 조합원들이 저한테 뱀처럼 차갑다는 말을 해요. 사실은 아니랍니다.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제가 그 역할을 맡은 건데..." 동료들에게 마음이 차갑다고 지적받으면 안타깝다는 강종숙 씨, 하지만 그가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동료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추운 밤을 천막에서 지내고 나면 동료들이 머리맡에 장갑이나 신발 등을 갖다 놓았다. 월급이 압류되면 동료들이 만 원, 이만 원 돈을 모아 갖다 주기도 했다. 이것저것 동료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은 일을 다 말할 수 없다는 강종숙 씨, 그는 "지금껏 살아온 삶에 후회는 없습니다."라며 환히 웃는다.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봉헌된 촛불평화 미사. (사진/두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두현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