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는 삼성 서울병원 장례식장 16호실.. 25일 오전 발인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작가로서의 나의 새로운 다짐이 있다면 남의 책에 밑줄을 절대로 안 치는 버릇부터 고쳐볼 생각이다. 내 정신상태 내지는 지적 수준을 남이 넘겨짚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일종의 잘난 척, 치사한 허영심,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폐증이라고 생각되자, 그런 내가 정떨어진다. 자신이 싫어하는 나를 누가 좋아해주겠는가.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그나저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지. 고통의 기억뿐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신속하게 지우면서. 나 좀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작가 박완서 씨가 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책에 들어있는 '내 생애의 밑줄'이란 글의 한 대목이다.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던 박완서 씨(정혜 엘리사벳)가 1월 22일 아침 6시 17분에 담낭앙으로 투병하다가 향년 80세의 나이로 이승을 떠났다. 하느님이 그녀를 이승에서 솎아내 새로운 여행길로 초대한 것이다.

 

박완서 씨는 1970년, 40세에 <여성동아>에서 '나목(裸木)'으로 등단해 한국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 속에서 생긴 자신의 깊은 상처를 다독거리며 글을 써왔으며,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시대의 황폐한 인간성을 글로 비판해 왔다. 장편소설로 유명한 것은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이 있으며, 소설집으로는 <엄마의 말뚝>, <친절한 복희씨> 등이 있다. 동화집으로 <나 어릴 적에>, <보시기 참 좋았다> 등이 있으며,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호미> 등이 유명하다. 2010년에는 마지막 책이 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미 그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필요한 사람이었고, 좋은 글을 남겼으니 여한이 없을 것이다.

박완서 씨의 부음을 듣고, 이례적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우리나라의 대표작가일 뿐 만 아니라 가톨릭 신앙인으로서도 훌륭한 모범을 보이신 분"이라며 빈소에 조화를 보내기도 했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인 허영엽 신부 역시 "박완서 선생님은 좋은 글을 통해 신자 뿐 아니라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선생님의 삶은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어머니와 할머니로서 큰 위로가 되었다"며 고인과 유족을 위로하고, "오랫동안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에서 깊은 묵상을 나눠주셔서 많은 신자들에게 감동을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고 전했다. 

박완서 씨는 50대 중반에 영세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했으며, 1996년부터 98년 말까지 천주교 서울주보에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은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시냇가에 심은 나무)'이란 묵상집으로 출간되었다. 

박완서 씨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 서울병원 장례식장 16호실에 마련되었으며, 25일 오전에 발인해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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