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박병상]

▲ 구제역 확산으로 200만 마리의 소 돼지가 살처분되었고, 이 생명을 위무하는 의식이 17일 종교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진/한상봉 기자)

저절로 치유되던 구제역이 돈다는 이유로 200만 마리나 되는 소와 돼지를 마구 죽어댈 때, 우리의 겨울은 삼한사온을 잃었고 소독약을 얼리는 영하의 날씨는 도무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가축과 정을 붙이지 않는 ‘공장식 축산’이라고 해도 그렇지, 희로애락을 분명히 느끼는 생명들을 저토록 무자비하게 죽여도 인간은 천벌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이지, 인간이 기분 내키는대로 죽여도 되는 가축은 제발 기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종차별주의’가 완화된 시대가 되면 삼한사온이 찾아올 것인지.

작년 봄, 강화 일원에 구제역이 돌았을 때, 그 전 해의 겨울부터 이어진 날씨가 무척 추웠다. 농부들이 파종시기를 찾지 못하는 사이 새들은 짝지을 시기를 놓쳤다. 다행스럽게 날씨가 풀려 여름이 급히 다가왔지만 장마 뒤에 정체전선이 발생해 장맛비 이상의 국지성 호우를 여기저기 지루하게 뿌렸고, 15년 만에 중부지방을 관통한 태풍 곤파스가 수도권 아파트의 베란다 새시를 무섭게 강타했다. 장마 뒤에 심어야 적당한 김장용 김치와 무는 ‘4대강 사업’ 때문에 농토가 줄어든 상태에서 파종을 자꾸 미루다 그만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고 그 여파는 요사이 시장물가로 이어지는데, 어느새 다가온 겨울은 지난해에 이어 매섭기만 하다. 내년으로 이어질 날씨는 어떻게 다가올까.

언젠가 텔레비전 뉴스는 몇 년 안으로 북극해의 얼음이 다 녹으면 북극항로가 활짝 열린다고 기대에 찬 목소리를 전했다. 우리나라가 싱가포르를 추월하는 무역항을 보유할 날이 멀지 않았다면서 김칫국부터 마셨는데, 줄어드는 북극해의 빙원 때문에 북극곰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은 물론 전하지 않았다. 북극해 아래 묻힌 가스전 개발에 가슴이 뛰면서 얼음이 없는 북극해에 태양열이 흡수되면서 지구온난화가 거세진다는 내용도 생략했다. 지금 쯤 꽝꽝 얼어붙어야 할 북극해가 올해는 예년보다 섭씨 10도 이상 높다고 한다. 그 여파로 아직도 얼지 않았다고 기후 전문가는 전한다.

얼음이 없는 북극해에 쏟아지는 태양열이 증발량을 늘리는 가운데, 북극의 추위가 약해지면서 상층권의 제트기류가 헐거워지자 북극 상공에 갇혀야 할 이맘때 냉기가 낮은 위도로 빠져나간다고 기상 전문가는 설명했다. 그 때문에 영국은 축구장에 눈이 쌓여 경기를 취소했고 프랑스는 드골 공항의 지붕이 무너질 위기에 몰렸으며 눈에 덮인 미국 동부는 작년에 이어 올 겨울에도 마비되고 말았다. 시베리아를 뒤덮은 눈이 햇볕을 반사시키자 더욱 차가워진 기단이 삼한사온을 밀어내는 우리의 처지는 어떤가. 라니냐가 동해의 수온을 높이면서 늘어난 수증기가 우리 동해안에 ‘눈 폭탄’을 투여할 거라는데, 생매장 살처분에 동원되는 공무원들이 과로로 숨지거나 병원 신세를 진다. 내년 이후에는 어떨까.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이렇게 지속되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산악지대 최전방에서 졸병으로 지내던 1980년대 중반에도 없었다. 지구온난화가 역설적으로 만든 이번의 혹독한 겨울은 자연의 확실한 경고다. 점잖게 한두 마디로 던지던 자연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에게 더욱 분명한 경고를 보내는 거다. 이럴 때 대책은 반성에서 출발해야 할 텐데, 살처분으로 구제역을 막으려는 우리는 시방 어떤 대책에 골몰하고 있는가. 혼수용품이 된 에어컨 때문에 여름 한철 급증하는 전기 소비량이 이번 겨울에 경신되었다고 한다. 전기난로와 보일러가 대책인 셈인데, 자연의 경고는 더욱 거칠어지게 생겼다.

흔히 이스터라 말하는 라파누이 섬은 한계에 다가오면서 보낸 자연의 경고를 더욱 가혹한 개발로 대처하려다 황폐해지고 만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수천만 년 쌓인 인광석을 수십 년 만에 캐내며 잠시 흥청거렸던 남태평양의 나우루공화국은 자원이 바닥나자 먹고살 길이 막연해졌다. 외부의 지원이 없는데 지속 불가능한 개발에 몰두하던 문명의 뒤끝은 예외 없이 처참했다. 자연의 경고를 규모를 훨씬 키운 개발로 대응하려는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날수록 나약해지는 존재다. 과학기술이라는 신기루를 믿고 개발이라는 부메랑을 자연에 마구 던지는 인간은 맹랑하게 오만하다. 지구라는 라파누이는 외부의 지원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석유 위기가 예고되는 이때, 지구촌이라는 나우루공화국은 인광석을 거의 다 썼다. 이제 남은 시간마저 충분하지 않다.

구제역은 매우 민감하게 전파되는 가축의 질병이지만 살처분 속도로 처참하게 죽이지 않았다. 그랬다면 가축들은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구제역이 전에 없이 무서워진 건 순전히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면역을 희생시키며 획일적으로 육종한 가축들을 축사 안에 밀집시켜 얼른 살찌우려 호르몬, 항생제, 매합사료를 남발하는 공장식 축산이 빚은 필연적 부메랑이다. 구제역과 조류독감과 광우병도 마찬가지다. 외양간과 마당에서 눈 마주치면서 한두 마리 키우던 예전처럼 가축을 키우고, 고기는 기념일에 조금 나눠먹거나 아예 사양하는 식습관을 회복해야 구제역과 조류독감은 사그러들 것이다.

가축과 정을 나누며 공존할 때 기상이변은 없었고 인간의 몸과 마음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했다. 겨울이 겨울답고 여름이 여름다울 때, 북극해의 북극곰은 오늘도 어제처럼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거듭되는 구제역과 한파는 아직은 관대한 자연이 보내는 강력한 경고다. 마지막으로 치닫는 경고를 늦어버리기 전에 귀담고 이제 행동에 옮겨야 한다. 생태계 균형이 깨진 지구에서 지금까지 5차례 이상 벌어진 자연의 살처분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박병상/ 인하대학교에서 척추동물 계통분류학을 공부한 이학박사로 성공회대학교, 가톨릭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생태'를 화두로 강의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환경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도시 속의 녹색 여백을 추구하기 위한 인천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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