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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밖으로 나와 아기예수를 영접하라.[교회는 누구인가-김덕진]

이천 번하고도 열 번을 더 보태는 횟수만큼 아기예수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서른셋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기준으로 그 다음 해부터 아기예수가 오신 것으로 친다면 일천 구백 칠십 칠 번째 쯤 된다고 해야 하나.

어찌 되었든 매년 찾아오는 12월 25일, 아니 사실 25일은 조용하고 그 전날인 24일, 이름도 찬란하게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불리는 이날에는 왜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비싼 레스토랑을 예약해야하고 가족들은 자신들의 생일도 아니면서 케익을 먹어야 하는가? 애인이 없는 사람들은 속은 시끄러우면서도 왜 태연한 척 하며 끼리끼리 그리 신나지도 않으면서 깔깔대며 소주잔을 기울여야 하는 걸까?

물론 필자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으며 억지 웃음을 지어도 행복했던 날 따위의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이브의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에너지 대란이 오기전에 에너지를 아끼자고 한여름 서민들의 오아시스였던 관공서, 은행, 대형마트는 후덥지근하게 만들어 놓고, 전국에서 빛나는 수백조억개의 전구들이 12월 한달내내 소비하는 에너지는 장로 대통령님이 좋아하시는 일이니 아깝지 않은 것일까?

   
▲ 2009년 12월 24일, 용산 천막에서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이 조촐하게 성탄 전야 미사를 봉헌했다(사진/고동주 기자)

   
▲ 2010년 12월 24일 여의도 국회앞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위한 성탄 전야미사(사진/김용길 기자)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인 2009년 12월 24일에 난 대한민국 재개발 잔혹사에 영원히 남을 용산참사의 현장 남일당 건물 앞 천막기도처에서 열린 성탄전야 미사에 참여했다. 이미 구속된 농성철거민들에게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했었고 유족들과 철거민들은 마르지 않는 눈물을 계속 흘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협상이 타결되는가 싶더니 틀어지고, 여야 정치인들이 나서서 자기들이 해결을 하겠다고 큰소리만 치던 시기였다.

한강대교를 타고 넘어온 한겨울 찬바람이 천막 기도처의 비닐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작은 아기예수를 가운데 모시고 30여명이 비좁게 앉아 초라하지만 따뜻한 성탄 전야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가 끝나고 자정이 넘을 때까지 소박한 음식을 차려놓고 웃음꽃을 피우며 용산참사의 비참함은 잠시들 옆에두고 기도 천막에서 성탄을 맞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용산과 여의도 사이

그 후로 딱 1년 후인 어제는, 30년 만에 가장 추운 12월의 하루였다는 어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년 전 그 바람보다 열배쯤 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천막도, 비닐도 없이 성탄전야 거리미사에 참여했다. 이미 몇 달 동안 ‘4대강 공사 중단, 한반도 평화 촉구 월요전국사제 시국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성탄을 맞아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성탄전야미사를 개최했다.

날은 더 추웠지만 1년 전 용산에서의 그때보다 사제들도 많이 왔고, 함께 하기 위해 온 사람들도 많았다. 1206일째 국회 앞에서 작은 천막을 치고 시강강사들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농성중인 김동애 · 김영곤 부부, 6년간의 투쟁 끝에 승리한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 용산참사 유가족 유영숙 여사 등도 함께 했다. 다들 손이 시려 촛불을 들지 못할 정도였지만 옹기종기 모인 100여명은 성가도 크게 부르고 밝은 표정으로 다들 신명이 나 있었다. 평화를 빈다는 문정현 신부의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가 크리스마스 이브 공허한 여의도 하늘을 가득 채웠다.

두 번의 성탄 전야미사의 사진을 놓고 보니 공통점이 있다. 거리의 신부, 민중의 벗 문정현 신부,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 인천교구 갑곶성지 주임 김종성 신부 등이 2년 연속 출연한다. 물론, 필자는 2년 연속 사진을 찍고 있다. 2009년에는 전종훈 신부가 오체투지 때 다친 팔에 깁스를 하고 있고 2010년에는 수술을 받고 회복기가 되어 양손을 들어 축복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랄까? 전종훈 신부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서울대교구의 안식년 발령연장으로 임지가 없는 상태이고, 문정현 신부는 용산 대신 명동성당을 근거지로 천주교회의 회개를 위한 매일 기도를 진행하고 있다.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작년보다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1년 줄었다는 기쁜 생각 정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듯한 집이나 근사한 장소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는 때에, 왜 이 사제들은 이렇게 춥고 초라한 거리에서 성탄을 맞는가? 여의도 가는 길에 창밖으로 보이던 순복음 교회의 웅장함이, 명동성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북적거림 같은 것들은 왜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사제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들이 어느 순간 어디에 있어야 하는 지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제도권 천주교에게는 없는 시대정신을 그들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지난 5월 17일 오후 3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4대강사업 중단 촉구 전국사제단식기도회를 시작했다.(사진/김용길 기자)

다사다난한 세상..아니 교회, "이젠 성당 건물에서 미사를 하지 않으리" 약속

매년 연말이 되면 흔히들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매년 반복하는 말이지만 정말 올해는 다사다난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와 민주주의·인권의 추락, 날치기 여당과 독선만 남은 대통령, 여기에 무능하고 힘없는 야당 등은 온 국민을 혼란과 절망에 빠뜨렸다. 최고치와 최저치를 수없이 반복하며 널뛰기 하는 환율과 잡지 못한 물가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다 문을 닫을 지경이고 배추가 한포기에 1만 5천원이라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여기에 종교계도 한 몫을 거들었다. 정권과 명확하게 각을 세운 조계종과 4대강 죽이기 사업을 눈감아 줄 것 같은 추기경이 계속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필자는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따서 ‘대건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에는 ‘복사’라는 이름으로 사제들의 시종노릇을 하기 위해 1년간 매일 새벽 미사를 가기도 했고 7년간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성당에서 청춘의 반을 보내기도 했다. 그랬던 나는 천주교회가 성모병원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사학법 개정에 반대에 앞장서던 때부터 ‘성당이라는 이름의 건물’에서 행해지는 미사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을 한 바 있다. 그래서 미군장갑차에 효순이·미선이가 깔려 죽임을 당했을 때, 아무도 유죄를 선고받지 않은 것에 온 국민이 분노했을 때부터, 사제단의 시국미사에 줄곧 함께 해 왔다. 사제단이 없었다면 난 아마 10년간 미사 한번 참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내겐 소중한 거리미사였다.

천주교가 보수화 되고, 돈과 권력에 밀접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중세시대부터 가톨릭은 곧, 권력이었고 분쟁과 권모술수의 온상이지 않았던가? 한국 천주교가 그나마 한국의 다른 종교에 비해 아직 이미지가 좋고,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 물결이 장사진을 이뤘던 것은 사실 천주교가 고결하고 아름다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라는 한국 사회의 시대적 배경이 양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세상안에서 독재정권과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시기였기만 그래도 당시에는 천주교가 앞장서서 독재의 칼날에 맞서 싸웠다. 오랫동안 천주교가 민주화의 상징, 인권옹호를 위한 투쟁으로 기록되는 역사적인 일들의 중심에 있을 수 있었던 것, 사실 사제단 신부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는가?

인혁당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삼성그룹의 비리 등 한국사의 굵직한 흔적을 남긴 사건들에 직접 나서서 끈질기고 담대하게 비뚤어진 문제를 바로잡고자 했던 사제들은 모두 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사건들의 핵심이었던 지학순 주교와 돌아가신 김승훈 신부를 비롯하여 양홍 신부, 함세웅 신부, 문정현 신부, 안충석 신부 등은 모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직접 만들고 지금까지도 후배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정진석 추기경의 용퇴를 강력하게 촉구한 원로 사제 25인에 다 포함된다.

천주교 신자들의 아버지여야 하는 ‘추기경’이라는 존재께서 한국 천주교의 공식 대표기구인 천주교 주교회의 주교단의 결정에 반하는 말씀을 하시며 신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만도 눈앞이 캄캄한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대해 조선일보 · 동아일보 같은 보수 신문들이 ‘운동권 사제’니, ‘김정일의 사제’니 하면서 칼럼을 써대고 있고 공당의 대표라는 이회창씨는 ‘사제단은 북에 가서 순교하라’는 등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떠들어 대고 있으니 참으로 나라의 우경화가 우려스럽다. 급기야 ’한국천주교 나라사랑기도회‘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체가 불현 듯 나타나 사제단을 사이비라고 떠들고 있으니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여기에 지난 12월 23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천주교의 추천으로 문화관광부에 특채 된 간부들이 있고, 이들이 명동개발 사업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니 참으로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음이 안타깝다.

   
▲ 용산참사 현장의 대림초(사진/김용길 기자)

예수가 성탄에 꼭 한 곳에만 미사에 함께 하신다면..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을 두고 천주교는 ‘낮은 곳에서 나신 그리스도’라 하고 예수님의 정신은 항상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웃과 사랑하며 살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은 부자들을 꾸짖고 호화로운 성전에 불을 지르겠다고 하셨다. 도대체 명동 한복판에 수백억원을 들여 고층 빌딩을 지으라는 가르침이 예수님의 말씀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성경에 해박한 누군가가 설명을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주교단의 결정이 아니라도 천주교 신자라면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천주교의 교리대로라면 하느님이 만드신 이 대자연을 인간이 파괴하려고 하는 것은 바벨탑처럼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아닌가? 한반도에서 포격이나 군사훈련보다 대화와 설득으로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것도 종교인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예수님이 성탄에 꼭 한 곳에만 찾아가셔서 미사를 함께 하셔야한다면 온갖 대형교회들과 이제는 그만큼 커져버린 성당에서 열리는 화려한 성탄 전야 예배나 미사보다는 여의도 칼바람 속에서 열린 그 소박한 미사를 찾으실 것이 너무나 뻔하다. 그렇치 않다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천주교의 가르침은 거짓말이 아니겠는가?

한국 천주교와 이 땅의 대형 교회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을 팔아 웅장한 교회를 짓고 건물을 세우는 일은 중단해야한다. 그런 식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그분이 달가워하실 리가 없다. 만일 그런 식의 받들림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난 내일 당장 예수를 닮아가려고 노력하며 살겠다는 내 삶의 다짐을 찢어 버릴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을 거대한 ‘교회건물’ 안에서 기다리지 말고 거리에 나와 진짜 예수를 영접하라.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성탄을 맞아 한국 천주교에 부탁하고 싶다. 우선 천주교가 고용하고 있는 전국의 수천, 수만의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처우와 권리를 보장하라. 그리고 시혜와 동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세상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웃들의 편에 서라. 진짜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성경 좀 읽자. 마태오 복음을 통해 예수께서 친히 우리에게 정확하게 말씀해 주고 계시지 않는가 말이다.

마태오 복음서 25장 40절과 45절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지 않았을 때마다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 45)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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