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 소설 -9] 동행-유다와 예수

▲ 동행-유다와 예수
한껏 빛나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여전히 요한은 오전에 아침 해를 등지고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했다. 깡마르고 왜소한 체구였지만 목소리는 마치 산에서 바위 돌이 굴러 내리는 것처럼 단단하고 우렁찼다. 제자들은 그런 선생님을 두고 ‘바위 구르는 소리 요한’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 내내 요르단강에 발을 담그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례의식을 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제는 유대민족 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눈에 띠었다. 가끔 바리사이파나 사두가이파 귀족들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면서 들리기도 했다.

어제는 1개 분대쯤 되어 보이는 로마병사들이 이곳에 들어섰다. 강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렸으나 병사들은 자신들의 책임자인 듯한 건장한 사내의 명령에 따라 이곳의 질서를 나름대로 지키면서 다소곳이 요한의 설교를 주의 깊게 들었다. 그 중 한 병사와 건장한 사내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 놀랬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의 적에게 세례를 줄 수 있냐고 불평을 늘어놓았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유대민족의 자긍심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돌아가기 위해 병장기를 수습하여 길에 나섰다. 건장한 사내가 말에 올라타다 말고 뒤돌아서서 그들을 배웅하려 서있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걸어오더니 유다를 껴안았다. 사내의 양쪽 가슴을 감싸고 있는 철갑주가 유다의 턱을 눌렀다. 그는 유다를 꼭 껴안으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형제여,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때 까지 항상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유다도 깜짝 놀라 그를 껴안으면서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야훼 앞에서 하나의 형제다’
그가 포옹을 풀더니 은화 스무 닢이 든 주머니를 이곳 재정에 사용하라며 유다의 손에 쥐어주고 나서 그들 무리 쪽으로 걸어가 말에 올라탔다. 허리에 찬 칼이 흔들리며 쇳소리를 냈다. 제자들은 유대총독이 요한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보낸 병사들이라고 믿었다.

유다가 이곳 세례공동체의 일원이 된지도 벌써 1년이 훨씬 넘었다. 남쪽으로 느보산을 바라보고 있는 이곳 요르단강가는 예리고에서 반나절 거리였다. 압복강의 작은 개천과 만나서 사해로 흘러가는 길목의 요르단강은 제법 수량이 풍부했다. 강가에 삐죽 튀어나와 넓게 펼쳐진 바위를 사람들은 아파스 바위라고 불렀다. 요한과 제자들 일행은 아파스 바위 아래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이곳에서 한 달음에 숲 언덕을 넘어가면 이곳 요르단강과는 전혀 다른 황량한 광야가 남부유대까지 끝없이 펼쳐졌다.

요한은 오후부터 시작되는 세례의식을 끝내고 밤이 되기 전에 항상 거친 낙타털로 짠 윗옷을 걸친 채 숲 언덕 너머에 있는 사막 쪽을 향해 홀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침이 밝기 전에 되돌아와 아파스 바위 위에 앉아서 고요히 눈을 감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단 한번도 제자들과 식사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 먹고 잠자는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가 메뚜기를 구워 먹는 것을 봤다는 말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광야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면서 야훼가 내려주신 만나를 주워 먹는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사실을 확인한 사람이 없었다. 때때로 제자들 중에 호기심이 많은 이들 한 둘이 그를 몰래 따라나섰으나 숲 언덕을 오르는 그의 걸음이 바람처럼 빨라서 도저히 그 뒤를 따라 붙을 수가 없어 결국 그의 걸음을 놓쳤다고 말했다.

수년간 땀에 쩐 요한의 낙타털옷에서 나는 강한 누린내가 마치 메뚜기를 불에 끄슬린 냄새 같기도 했다. 그리고 요한의 허리에 두른 가느다란 가죽띠 끝에 조그만 병이 항상 매달려 있었다. 그 작은 병에는 무엇이 담겨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느날 문둥병에 걸린 환자가 들것에 실려와 요한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요한이 그의 몸을 요르단 강물에 깨끗하게 씻겨주고 나서 여기저기 고름이 차 있는 상처를 허리에 찬 조그만 병에서 쏟은 액체로 발라주었다. 그리고 그 위에 파피루스 이파리를 찢어서 붙여주면서 문둥병 환자에게 말했다.
‘이제 됐다. 저 숲에 머물면서 제자들이 주는 풀과 뿌리를 입속에서 침과 버물어 이 상처에 바르면 곧 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야훼를 진실한 마음으로 불러라. 그러면 야훼께서는 응답으로 너에게 곧 건강을 주실 것이다’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 본 제자들은 요한의 허리에 차고 있던 조그만 병에서 쏟은 끈끈한 액체가 들꿀이라고 말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 "제자가 되다" (그림/홍성담)

요한의 모습은 높다란 절벽과도 같았다. 그 절벽 맨 끝을 부여잡고 표표하게 서있는 나무뿌리처럼 강건하게 보이지만 스스로 자신을 자학이나 다를 바 없는 외로움 속에 가두어 놓고 세상과의 교통을 끊고 있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토해내는 세상의 종말에 관한 그의 단호한 이야기는 모든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의 제자들은 그런 스승에게 간단한 인사말조차 부치기를 두려워했다.

오후의 세례일정을 모두 끝내고 기진맥진한 요한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유다에게 물었다.
‘저들에게 먹일 식량은 충분한가?’
‘예. 닷새 전에 베델의 한 상인이 통밀 두 수레를 보내와 걱정 없습니다’
요한이 숲 뒤쪽으로 펼쳐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시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바쁘다. 우리에겐 단지 하루일뿐이지만 야훼께는 백년 또는 천년일 수 있다. 야훼의 역사가 곧 임박 했다. 어제 아침엔 내 발목을 적시는 맑은 이슬방울이 그렇게 이야기 하더니 오늘은 강에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이 나에게 또다시 속삭이고 있다’

천천히 뒤돌아서는 요한을 향해 유다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저도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저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아라. 너는 굽이굽이 흐르는 저 강도 신의 창조물이라고 믿느냐. 강물이 말하는 비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곧 그 분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시간 너머에 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그 분의 성정이 급해지고 있다. 그 분의 소리와 창조물의 소리들과 인생의 비밀들을 간직한 강과 벌판과 산과 바다를 모두 한꺼번에 말씀하실 분을 신께서 세상에 내려 보내셨다. 이제 곧 우리는 그 분을 맞게 될 것이다. 너의 탁한 눈빛을 날마다 저 강물로 씻어라. 그러면 곧 그 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다의 물음은 굳이 요한에게 던졌던 질문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했던 무망한 물음을 요한이 놓치지 않고 대답을 한 것이다. 유다는 요한의 말을 듣고 마냥 환하게 빛나던 가슴의 한쪽 끝이 다시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요한은 숲 언덕 너머 광야를 향해 걸어갔다.
밀려오는 어둠이 요한을 광야로 밀어내고 있었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홍성담은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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