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한상봉 기자

문정현 신부는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도 명동성당 앞마당에서 서각을 하고 있다. 그동안 새긴 서각 작품들은 성당 앞에서 오늘도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바보예수상 발치에 진열되어 있었다. 첫눈에 들어오는 서각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지금 문 신부가 파고 있는 복음묵상글은 "목마르다"였다.  문 신부는 따로 배우지 않은 서각을 명동에서 새기면서 바로 익혔다. 칼날을 다루는 솜씨가 날로 다르다. 요즘엔 하루엔 한판을 새겨낼 정도로 숙달된 것이다. 서각 판목에 덧붙여진 붓글씨도 직접 쓴 것이라 한다.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어도 쓰고 또 쓰다보면 제 글씨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연습 없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자전거를 배울 때도 넘어지고 또 넘어지지만, 그래도 계속 타다 보면 어느 순간 제대로 운전하고 있는 걸 알게 되지. 덕행도 마찬가지야. 연습을 해야한다는 거지. 덕행도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습관처럼 몸에 배인 덕행을 행하게 되는 법이지. 그래서 자꾸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거야. 분심이 들어도 기도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게 몸에 배일 때까지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분이 말을 걸게 되겠지."

문 신부가 서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여러 사람들이 기웃거리다, 말도 걸다 가곤 했다. 떡으로 간식을 삼으며, 간간이 담배도 태우며, 문 신부는 이야기 중에도 칼날을 놓치지 않았다. 나름대로 고민하며 배운 기법으로 저 나름대로 마음을 세상에 새기고 있다. "교회, 이런다고 안 변해!" 하면서도 명동성당을 떠나지 못하지만, 마음이 닿는대로 움직일 수 있는 한, 여전히 평안한 표정이다. 평온한 기운이 명동성당에 스며든다.

거룩한 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거룩한 사람이 있는 곳이 바로 성소(聖所)라는 말이 떠오른다. 명동성당은 요즘 문정현 신부가 날마다 찾아와 거룩한 곳이 되었다. 날마다 천사가 어깨 위에 내려 앉아 조리있게 날아가는 칼끝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 사진/한상봉 기자

▲사진/한상봉 기자

▲ 사진/한상봉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