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가을들녘(사진/한상봉 기자)

11월

-박춘식

숨가쁘게 달려왔다
1 2 3 4 …
가끔은 지겨운 흙길
달력 한 장 한 장 밟으면서

어느새
나뭇잎에 가렸던
무덤들이 가까이 보인다
텅 빈 들판에는
검불 태우는 연기가
계절의 향연으로 피어오른다

11 — 두 글자가
저승 들어가는 문
문설주로 우뚝
내 앞에 서 있다

<출처> 어머니하느님, 박춘식, 미루나무, 22쪽


위령성월이 11월인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과 자연의 흐름을 신앙적으로 연계시키는 좋은 본보기로 느껴집니다. 매일 무심히 지나가던 길, 나뭇잎이 다 떨어지자 무덤이 보입니다. 그리고 흙집에 사는 분들이 손을 흔들어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하는 모습이 아른거렸을 때 그들은 우리를 잠시 죽음 저 너머 세상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바람과 놀던 나무 잎들이 이제는 바람을 등지고 땅바닥으로 흩어지면서 굴러다닙니다. 언젠가 우리도 하나의 마른 잎이 되어 저렇게 부스러지면서 사라지게 되리라는 11월 묵상 기도를 한 두 번 바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박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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