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 소설-7] 동행-유다와 예수

▲ 동행-유다와 예수
수도교 사건의 성전시위가 잔혹하게 진압된 이후 유다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젤로트당이 최고 가치로 여기는 무장투쟁에 대해서 그의 마음속에서는 심각한 회의가 들었다. 무장투쟁은 오히려 총독을 자극하여 유대 땅에 파견된 로마군의 병력을 자꾸만 늘려갔다. 그리고 시위에 동원된 힘없는 군중들만 로마병사들의 창칼 앞에 피를 쏟으며 죽어갔다.

작고 큰 시위가 늘어갈 수록 로마군은 더욱 잔혹하게 진압했다. 젤로트 지도부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책임 있는 대안을 마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란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공적으로 삼아 젤로트 내부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시위와 반란을 조직했다. 그런 설익은 무장투쟁은 항상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위에 동원된 사람들과 반란이 일어난 지역의 백성들이 짊어졌다.

사람들은 토지를 빼앗기고 노예로 붙잡혀 이국땅으로 팔려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점점 젤로트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과도한 공물과 세금에 시달렸다. 성전은 번제 의식을 유지하고 십일조를 걷은 데만 혈안이 되어 로마에 협력하는 사제들의 터전으로 전락했다. 야훼가 준 신성한 땅은 그리스 로마의 상징물로 오염되었다. 아합과 므나쎄 시절에 이교 우상들이 야훼의 분노를 샀듯이 또 다른 처벌이 내려질 것 같았다. 이러한 상황들을 통렬하게 비난하는 예언자 요한에게 사람들은 새롭게 기대를 걸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요한이라는 새로운 예언자에게 모여들었다.

유다도 처음엔 요한이 쿰란의 에세네파의 일원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했다. 에세네파 역시 사막에서 금욕적 은둔생활을 하며 지상에 곧 신의 처벌이 임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철저한 금욕과 자기부정, 순수를 지향하는 폐쇄적 공동체였다. 그러나 요한은 그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주었다.

유다는 그를 따르는 몇 동료들과 함께 젤로트를 떠나 요한에게 가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젤로트 지도부는 그런 유다를 진즉부터 불안하게 생각했다. 유다는 그를 따르는 동료들을 먼저 요르단 강으로 보냈다. 그는 몇 일후 젤로트 지도부에 짧은 서신을 남기고 3년 동안 활동했던 도시 헤브론을 떠나 요르단 강을 향했다.

꼬박 하루를 쉬지 않고 걸어서 예리고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시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 숲에서 노숙을 했다. 이곳 예리고에도 낯이 익은 젤로트당 동료들이 있어서 그들과 마주치기가 싫었다.

새벽잠에서 깨어나 지난 밤 한기에 굳어있는 몸을 풀고 난후 작은 봇짐을 허리에 두르고 다시 날다시피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짐산 기슭에 도착하자 건너편 벌판 끝에서 아침 해가 떠올랐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인간을 빼버리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름다웠다. 투명한 아침 햇살을 한가닥 두가닥 셀 수 있을 만큼 청명한 아침이었다. 작은 개울에 흘러가는 맑은 물이 노래를 불렀다. 이슬에 젖은 깃털을 말리는 새들이 개울물 소리에 응답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발아래 떨어진 나뭇잎들이 삭아서 자연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냄새가 정겨웠다. 숲속은 겉으로 보기엔 정지되어 있는 것 같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보면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들이 없었다. 모두 제각각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만이 숲속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엔 왜 이런 것들이 자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그는 의아해 하면서 심호흡을 깊이 내쉬었다.

▲ 그림/홍성담

그가 개울가 나무뿌리에 걸터앉아 보따리 속에서 밀빵을 꺼냈다. 손으로 개울물을 떠서 입안을 적시고 밀빵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왠지 뒷골이 땅겼다. 그가 빵을 씹다가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장정 셋이서 그의 등에 칼을 겨누고 다가왔다. 유다는 무릎에 안겨있는 보따리를 그들에게 휙 내던지며 작은 개울을 한걸음에 건너뛰었다. 셋 중 맨 앞에 선 녀석은 몇 번 본적이 있는 예리고의 젤로트였다. 유다가 그를 향해 꾸짖었다.
‘이 놈들!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
그녀석이 들고 있던 짧은 칼을 곧추 세우며 말했다.
‘배신자! 넌 우리들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너의 입을 막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유다가 방어태세를 갖추며 도끼눈을 뜨고 말했다.
‘너희들이 이 개울을 넘어오는 순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

그녀석이 옆의 두 명에게 눈짓하면서 먼저 개울을 건너뛰어 유다를 덮쳤다. 유다가 옆으로 몸을 틀며 녀석의 허리를 발로 걷어찼다. 옆구리를 얻어맞은 녀석이 중심을 잃고 그어댄 칼날이 유다의 왼쪽 뺨을 살짝 스쳤다. 녀석의 엉덩이가 개울에 풍덩 빠지면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유다가 재빨리 돌멩이를 들어 주춤거리고 있는 두 명에게 던졌다. 그리고 개울에 엎어져 있는 녀석의 칼을 든 손목을 발로 밟았다. 녀석이 칼자루를 놓았다. 유다가 칼을 집어 들어 녀석의 턱밑에 칼등을 댔다.
‘거기 두 놈들은 물러서라. 너희들의 어줍잖은 재주로는 나를 베지 못한다’

두 녀석이 뒷걸음을 치더니 숲속으로 죽어라고 내뺐다. 유다가 쓰러진 녀석의 턱밑에 칼등을 바짝 대고 그의 어깨를 껴안아 일으켜 세우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젤로트는 더 이상 유대를 구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함께 투쟁했던 젤로트의 동료들을 사랑한다. 이제 제발 나를 자유스럽게 그만 놓아주라’
녀석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시는 나를 찾지 말라고 지도부 놈들에게 전해라’

유다는 녀석의 멱살을 풀어주며 칼을 뒤편 숲속으로 멀리 던졌다. 녀석이 유다를 쳐다보지도 않고 절룩거리면서 도망갔다. 그는 손에 개울물을 적셔서 뺨에 흘러 번지는 피를 닦았다. 흩어진 봇짐을 수습하여 허리에 두르고 다시 걸음을 재게 움직여 길을 떠났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봇짐에서 밀빵 한조각을 떼어 길가의 향나무 이파리와 함께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손바닥에 뱉어냈다. 그것을 넓게 펴서 뺨의 상처에 붙였다. 머리에 두른 긴 천 한쪽을 풀어서 어깨 아래까지 내려 혹시 사람들이 상처를 알아보지 못하게 감추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모든 인간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살아있다는 것이 서러웠다. 자신도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아침 이슬을 털면서 새 한 마리가 머리위로 날아갔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홍성담은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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