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의 짱똘]

#1.
집에 티브이가 없다.

#2.
티브이가 바보상자라는 고상한 이유가 아니다. 단지 티브이를 놓아둘 위치가 마땅치 않아 ‘싹’ 없애기로 가족들의 동의를 구했다. 물론 인터넷 등으로 힐금힐금 보기도 한다. 단지 수상기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가난하지 않다!

#3.
추석을 앞두고 다리를 다쳤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른발 네 번째 발가락이 부러졌다. 물론 발은 무척 아팠지만 발가락 하나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기브스를 한 채 6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의사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방정식이 순간적으로 펼쳐졌다. 회사 출근은? 추석연휴는? 민예총 정기공연은? 무엇보다 이 좋은 가을 날 싸돌아 다녀야 하는 일은? 방정식이 인정사정없이 마구 꼬이는 것과 관계없이 간호사는 입원절차를 밟았다. 에라, 모르겠다. 케 세라 세라!

#4.
덕분에 티브이를 ‘강제 시청’ 했다. 고속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일방적으로 보기를 강요하는 경우와 같으면서도 다른 기분으로 며칠 동안 신나게(?) 티브이를 봤다. 앞서 입원한 환자들이 명절을 앞두고 서둘러 퇴원한 덕에 불과 며칠 만에 방장으로 승격되고 리모컨 운영자가 되었다. 그것도 티브이와 에어컨 둘씩이나. 신났다!

▲ 엠네트의 수퍼슈타 K2 화면 캡처

#5.
<슈퍼스타K2>를 만났다. 케이블방송인 엠넷에서 만든 서바이블 게임 같은 가수 등용 프로그램이 <슈퍼스타K2>다. ‘2’가 붙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언젠가 ‘1’을 했던 모양이다. 미안하다. 그 땐 몰랐다. 아무튼 한마디로 흥미진진했다. 다양한 연령의 평범한 시민들이 단 하나의 정상자리로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 기획자가 의도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도전자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들어 있었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눈물과 미소, 흐뭇함과 안타까움이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모드로 이끌었다. 눈이 빠졌다!

#6.
출연자들은 자신이 가진 춤과 노래 혹은 연주 실력을 심사위원과 스탭들에게 보여주려 했지만 심사위원들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무대를 모욕했다” “진지함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재능임에도 자만심이 앞선다” “간절함이 없다” “자신에게 맞는 노래를 택해라”는 혹평을 “역시 전문가들이구나” 소리가 나올 만큼 적절하게 지적했다. 물론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재능에 대해 “소름이 끼친다”는 ‘쟁이’ 들의 용어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때로는 출연진보다 심사위원을 보면서 더 소름이 끼쳤다. 매서웠다!

#7.
지난 6.2지방선거를 통해서 많은 <슈퍼스타2010>을 탄생시켰다. 과연 시민들은 심사위원들처럼 날카로움을 가지고 혹은 소름이 끼치는 ‘필’을 가지고 <슈퍼스타2010>을 선택했을까? 스타는 선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다. 혹여 지금이라도 선택한 <슈퍼스타2010>들에게 초심의 진지함과 간절함이 사라지고 허접한 자만심이 보인다면 혹독한 비판을 아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슈퍼스타들이 소름끼칠 차례다!

#8.
애초에 잘 뽑아야한다. <슈퍼스타2012> 멀지 않다. 소름끼치도록 투표하자!!!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