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전증, 시력장애 안고 노래하는 생활성가 가수 황인숙 마리아
- 내게 주신 수많은 은총들, 끝없이 나누고 싶어

시각장애인, 신부전증 환자이면서 생활성가 가수로 활동하는 황인숙 마리아씨에게 전화를 했을 때, 목소리 톤 높기로 유명한 기자보다 쾌활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어딘가 어둡고 낮은 목소리를 상상했던 걸까. 통화를 했던 날은 마침 시각장애인 봉사단체 빈첸시오회에서 봉사활동을 나가있다고 했다.

왕년의 골프선수, 생활성가 가수, 봉사회 부회장으로서 허락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자신이 받은 모든 은총과 희망을 끝없이 나누고 싶다는 그녀, 황인숙 마리아의 이야기다.

▲ 그의 목소리는 활기차고, 얼굴은 아무 두려움 없어 보인다. (사진/정현진 기자)
신학교에서 교회음악을 전공하며 가스펠 가수를 꿈꿨던 그녀가 실명위기를 맞은 것은 1997년이었다. 친구들의 배신으로 충격을 받아 실명 위기에 처한 것. 황인숙씨는 나중에 생각하니 결국 그 일은 자신의 욕심 때문이었고, 오히려 자신이 친구들에게 죄를 짓게 만들었다고 했다.

수술을 받고 고혈당증으로 망막출혈이 멈추지 않아 꼼짝없이 누워있던 어느날, 그녀에게 옆 환자 보호자가 ‘루르드 기적수’를 내밀었다. 당시 황인숙씨는 개신교 신자였는데, 옆에 놓인 성경책을 보고 이야기를 건넨 것이다. 그 분은 루르드 기적수를 선물하면서 성모마리아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지만 개신교 신자였던 당시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분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모마리아에게 기도했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계신다면 지금 맞고 있는 약이라도 안 맞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날 밤, 맑은 물속에 잠겼다가 건져지는 꿈을 꿨고 신기하게도 27-8을 기록하며 떨어지지 않던 혈당수치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운동도 할 수 없는 환자가 이유 없이 혈당이 떨어지자 당혹스러워했고 점점 더 혈당이 떨어지면서 먹던 약도 줄어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됐다.

그때까지도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기적수를 준 이에게 천주교에서는 무슨 기도를 하냐고 물었고 그분은 묵주와 묵주기도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선물해줬다. 몸이 힘들어서 기도하기도 힘들었지만 묵주기도 테이프를 틀어놓고 마냥 묵주알을 굴리기 시작했는데 54일 기도를 다 마치도록 아무 반응이 없자 조바심으로 왜 아무 일이 없냐며 따져 물었다.

그러다가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고 듣던 방송에서 믿음으로 아이를 살린 페니키아 여인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됐다. 그 말씀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했다. ‘저는 주님 한 분 밖에 모릅니다. 제가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면, 작은 미생물이라도 좋으니 당신 나라에 들어가게만 해 주십시오.’

기도 100일 째 되는 날, 어렴풋이 머릿속에 성모성심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눈이 보이지도 않고 성모 마리아를 알지도 못했으니 나중에 그 모습을 설명해주고서야 그것이 성모성심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나 싶어 묵주기도를 알려줬던 이에게 연락을 했더니 마침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고 함께 대치2동 성당의 조창수 신부를 찾아갔다. 상담을 한 3일 후 조 신부는 황인숙씨에게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특별 세례를 주었다.

“그 당시 느꼈던 뜨거운 기운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세례를 받고 더 열심히 기도하고 미사 드리고, 신부님 말씀대로 현재의 고통을 희생으로 바친다는 마음으로 지냈어요. 더 이상 내 병을 낫게 해달라는 기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됐어요. 신심은 아직 약했지만 더 알고 싶은 마음에 그저 세상을 위한 기도를 하며 지냈어요”

우연히, 운명처럼 노래를 만나다

10여년 간 집, 성당, 병원만 다니며 지냈다. 그러던 2006년 경, 동성고 동문들과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봉사활동 단체를 만들게 됐다. ‘아동산회’, 아름다운 동행을 한다는 뜻으로 혼자서는 제대로 운동을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산책을 돕는 봉사단체였다. 그 단체에 골프 컬럼을 쓰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시각장애인들도 골프를 할 수 있고, 이미 14개국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 골프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우연히 회원권을 양도받아 골프를 시작하게 됐는데 당시는 시각장애인 골프가 개척 과정이었기 때문에 상황이 열악했지만 몸이 건강해지니 더 열심히 하게 됐다.

“그 당시 별명이 본드걸, 딱풀이었어요. 연습장에 붙여놨냐고. 실은 시각장애인들은 연습장에 한번 자리를 잡으면 이동이 어렵기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고, 신장 문제 때문에 함부로 밥을 먹을 수 없으니 굶어가면서 연습했던 거에요. 그러면서 대회도 나갔어요. 저 TV에도 출연했었답니다(웃음).”

그 골프 모임에서 회식중에 노래를 하게 됐는데 그 자리에 마침 음악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갑자기 노래를 해보겠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녹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왕 노래를 하게 됐다면 복음성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커서 녹음 중에 두 곡만 하게 해달라고 졸라 만들게 된 것이 ‘행복레슨’이라는 곡을 담은 1집 앨범이다. 원래 가스펠 가수가 꿈이었던 황인숙씨는 실명와 병마, 여러 일을 겪으면서 꿈도 잊었고, 감히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잃었다.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통해 노래를 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음반이 나오고, 주로 성당 사람들을 만나 노래도 들려주고 판매를 하게 됐지만 음반이 팔릴수록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온전한 성가 음반도 아니고 잘하는 실력도 아닌데, 그저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때마침 교회 신문 등을 통해 홍보가 되기 시작했고 당시 본당 신부가 본격적으로 복음성가를 해보라며 한국가톨릭문화원을 연결시켜 주었다. 자본금도 턱없이 부족했고 용기도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본당 신부는 ‘이 상황은 너에게 하느님이 노래를 하라는 뜻으로 마련해주신 기회다’라면서 격려해주었다.

문화원을 통해 신상훈 음악팀장을 소개받았고 2집을 준비하게 됐다. 신곡은 황인숙씨가 작사한 2곡, 나머지 11곡은 테제를 비롯한 기존 곡을 편곡해서 실었다. 앨범을 만들 당시, 투석을 받으면서 하다 보니 7개월이 걸렸는데 그 과정에 고마운 이들의 많은 손길이 있었다. 봉사자들이 있었고, 매체를 통해 홍보도 됐다. 음악작업, 앨범 제작, 홍보 등의 과정이 이른바 재능기부로 이루어진 것이다.

▲ 손과 손이 이어져 하느님의 빛에 가 닿는다는 뜻을 담았다. (사진/정현진 기자)

끊임없이 이끄시는 목소리, 그리고 응답하다

황인숙씨는 현재 5곳의 병원에서 미사 특송 봉사를 하고 있다. 자신이 환자이다 보니 같은 환우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그들을 위한 봉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다니던 본당에 삼성의료원 원목 신부가 미사를 하러 왔다.

“미사를 가는데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하는 거에요. 얘기를 하다보니 병원 원목 신부님이잖아요. 다짜고짜  병원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했죠. 첫날 가서 노래를 불렀더니 다들 너무 좋아하시는 거에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고 나중에 그 신부님 가는 병원마다 쫒아가고, 다른 병원에서도 요청이 오고 지금은 5곳에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구치소에도 봉사를 가구요.”

투병생활 중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하나라도 실마리를 얻게 되면 그것을 통해서 무언가 하게 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역사라고 황인숙씨는 말한다. 특별하고 거창한 일은 못하지만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통해서 요즘처럼 힘든 세상에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한다.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모자란 것이 많다보니, 내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 역시 내 욕심이 아닌가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수시로 든다. 그럴 때마다 많은 분들에게 묻기도 하고 신부님들과 면담도 하면서 식별하려고 애쓴다. 지금 주 3-4회씩 투석을 하고 있는데 분명한 건 이런 건강상태로 다니면서 노래를 한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라는 생각이다. 다음 9월 28일에는 대전 법동성당의 초대를 받아서 신앙증언과 노래를 할 예정인데 어떤 이들을 만날까, 어떤 일들이 있을까 설레인다고 했다.

이런 황인숙 씨의 신앙에도 큰 위기가 있었다. 5-6년 전, 투석을 하면서 만난 시각장애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너무 절망하고 있으니 병원 수간호사가 황인숙씨를 소개한 것이다. 그 힘든 투석을 받으면서도 노래하는 황인숙씨를 보면서 병원 사람들 모두 혀를 내두를 지경이어서 그 사람도 곁에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황인숙 씨는 투석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이식수술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있었는데 누군가 이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 다른 병원을 통해 알아보던 때였다. 그 사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 저런 활동들을 소개해주고 세례도 받게 했다. 생계가 어려운 사람이라, 후원도 받게 해 주었다. 그런데 이식을 신청한 지 한달 만에 황인숙씨보다 그 사람이 먼저 수술을 받게 됐다. 황인숙씨 어머니는 딸을 통해 세례를 받았는데, 굉장히 힘들어하면서 미사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충격은 황인숙씨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설상가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도왔던 그 사람이 황인숙 씨를 배신하고 비난하고 다녔다. 오래 방황했지만 결국 ‘하느님이 이것까지 나한테 받아들이라고 하시는구나’ 생각하며 모든 일을 받아들였다.

오, 고통이여...

황인숙 씨는 자신에 대한 모든 이야기의 주체가 하느님이다. 모든 일을 할 때 성령을 청하고 그 안에서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일을 ‘내가 했다’라고 하지 않고 ‘그분께서 나에게 해 주셨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내면서 안타까운 일이 많다고 한다.

“미사 안에, 천주교 신앙 안에 얼마나 엄청난 은총이 많은지 사람들은 잘 몰라요. 사랑, 용서, 회개 등 얼마나 은총이 많은가요. 가끔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요. 죄를 지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자비를 믿고 돌아오는 아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이 이미 누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던 큰아들. 이미 받고 있는 은총을 모르는 사람들, 누릴 줄 모르는 사람들은 큰아들과 같다고 생각해요.

누림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은 시련이 와도 두렵지 않아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나갈 수 있어요. 세상의 이치와 하느님의 이치는 다르죠. 나는 눈을 잃었지만 마음의 눈을 얻었습니다. 그것에 정말 감사해요. 볼 수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이 깨닫지 못했고 나쁜 일을 더 많이 했어요.

내가 죄를 지어도 옆에서 기다려주시는 분, 끝까지 버리지 않는 분, 99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더 소중한 분이 하느님이세요. 세상 속에서 다른 것에 더 집중하니 하느님의 목소리가 안들리는 거에요. 나 역시 아프기 전엔 그것을 몰랐어요. 오로지 돈 버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었죠. 그래서 내 고통에 감사합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느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찾으며 그분을 찬양합니다.
사람에게는 무슨 고통을 당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당하는지가 문제입니다.
똑같은 미풍에도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거룩한 기름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깁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사람들은 오로지 축복만 원해요. 축복, 축복... 그러나 고통 없이는 축복도 없어요, 시간과 깨달음이 없다면 하느님의 참평화를 느끼지 못하죠. 결국 나 역시도 바닥으로 떨어진 이후에야 알았어요. 하느님은 이런 나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깨우치게 하는 거라고, 주님의 은총을 전하게 하신 것이라고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믿으면서 현세에만 집착하잖아요. 이곳이 다가 아니고 내 것은 없어요. 그렇게 나를 비우면 세상의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어요. 다 내려놓으면 그분이 알아서 하실 거에요, 우린 그저 준비만 하면 될 뿐이에요.”

▲ 인터뷰를 마치고 성당에서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정현진 기자)

찬양은 나의 힘, 할 수 있는 모든 것 통해 나누고 싶어

병원봉사를 다니면서 세상에 고통 받는 이들이 왜 이리 많은지 마음이 아프단다. 그럴 때면 기도한다. 그 안에 당신 뜻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니 꼭 그렇게 해 달라고. 그러면서 자신의 노래를 통해 위로받은 이들을 떠올리며 기도하듯 노래한다. 찬양은 그의 힘이고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노래라는 것이 특별한 힘을 가진 것 같아요. 많이 좋아하시니 저도 좋죠. 내 실력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뭔가를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가사를 음미하면서, 그리고 이렇게 노래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요. 물론 다 하느님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제 노래를 듣고 힘을 얻고 위로를 얻었다고 할 때, 저 역시 똑같이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부족한 것은 매일 미사를 하면서 하느님께 청하죠.”

이번 2집 앨범은 황인숙 씨 이식수술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둠속에 있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빛으로 비춰달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앨범 안에는 여러 모습의 손이 있는데 손의 의미는 시각장애인의 눈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여러 모습으로 나누고 사랑하고 봉사할 때 빛이신 하느님에게로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끊임없이 나눌 곳을 찾는 그에게 무엇이 더 하고 싶은지 물었다. 음악 선교사가 되고 싶단다.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 어느 곳이든 몸만 허락된다면 선교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지금도 한국컴패션 회원이다. 종교를 떠나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돕는일을 하고, 앞으로 시각장애인 팀을 만들어 그들이 할 수 있는 안마나 침술을 통해 의료봉사도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장애인이라고 봉사를 받는 것만이 아니라 충분히 베풀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리고 노래봉사를 통해 그 동안 받은 많은 사랑과 은총을 되돌려 주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 전하면서 기쁘게 사는 것. 죽을 때까지 사랑하면서 기쁘게 사는 것. 그것이 그녀가 지금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주님 내 마음에 눈을 열어 주셨네
주님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내 마음에 눈을 주셨네
- 황인숙 작사곡 <내 마음에 눈을 주셨네> 중에서 -

 


▲내 마음안의 그사랑 - 글:황인숙/곡: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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