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테너 가수, 그리고 카페 운영자 강신옥 수사]
- 앉은 자리에서 느끼는 모든 것이 문화
- 매 월 첫째 주 수요일 저녁 음악회 열려

카페에 들어섰을 때, 눈이 먼저 시원해졌다. 카페 산 다미아노. 프란치스코 성인이 예수님 환시를 보았을 때 “내 교회를 고쳐라”는 말씀을 듣고 버려진 옛 성당을 고쳤는데 훗날 공동체를 만들 때 모원으로 선택했다는 바로 그 성당의 이름이다.

▲ 산 다미아노 입구 (사진/정현진 기자)

이 카페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화관 1층에 위치한다. 지난 1월 작은형제회에서 ‘문화공간’으로 기획해 개관했다. 서울 도심, 특징 없는 브랜드 카페들만 무성한 가운데 보석처럼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운영자의 이력도 독특하다. 테너 강신옥 바오로 수사. 명함에 쓰인 그의 이력이다.

처음에는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에 이끌렸지만 둘러보면서 카페가 추구하는 남다름이 궁금해졌다. 한 달에 한 번 카페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빌미삼아 운영자 강신옥 수사를 만나 그와 산 다미아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음악’은 또 하나의 카리스마이자 나눔의 매개체

▲ 산 다미아노 운영자, 강신옥 바오로 수사 (사진/정현진 기자)

수도자, 테너 가수, 그리고 카페 사장님. 그는 어떻게 이 세 가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강신옥 수사는 원래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음악이라면 흔한 기타 정도를 취미로 두었을 뿐이었다. 우연히 유명한 트럼펫 주자였던 故 김광길 선생을 통해 트럼펫을 배웠고 그 분을 통해서 수도자이면서 음악가 또는 미술가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당시는 그런 일들이 생소하기도 했고, 음악을 배우더라도 그저 미사 반주나 해 볼 요량이었다. 한동안 그 생각을 잊고 있다가 1999년에 이태리 총본부로 소임을 받아 가면서 음악에 대한 생각이 다시 찾아왔다. 음악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나니 몇 번이나 잠꼬대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음악공부를 꼭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관구장의 허락을 받았다.

뒤늦게 찾아온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 정도였다니, 청원이 거절됐다면 수도생활과 음악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음악은 프란치스칸으로서 수도 생활을 위한 개인 카리스마를 찾던 중 발견한 것입니다. 그 당시 두 가지 생각이었어요. 만약 허락을 못 받는다면, 프란치스칸 영성을 공부해서 관상에 매진할 생각이었죠. 그전엔 입 밖에 낸 적은 없었지만 입회 전부터 6-7년간 그런 부분을 준비했었고, 로마에서 살 때는 하루 4시간 정도 좌관(좌선)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개인적인 열망이 아니라 수도자로 살면서 깨닫고 얻게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매개체였을 뿐입니다.”

막상 허락이 떨어졌지만 공부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전공 선택부터 막막했다. 처음에는 수도자로서 단순하게 로마에 있는 교회음악학교에서 그레고리안 성가를 공부하려고 했지만 그것 만으로는 처음의 목적과 부합될 것 같지 않았고 활용범위도 너무 좁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성악이었다. 전공을 선택하니 다음엔 선생님을 정하는 문제가 다가왔다. 성악은 기악과 달라서 배울수록 오히려 잘못되는 경우가 있는데 기초가 없으니 자신에게 맞는 교수법을 식별할 능력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선생님을 만났고 강 수사를 자식처럼 돌보며 끝까지 인도해준 그 분은 주님의 선물과도 같았다고 한다. 스승의 이야기를 하는 강 수사의 표정이 연인을 떠올리는 듯 달떠 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의 저처럼 선생님도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어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얻은 좌절감이었죠. 하지만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을 의탁하는 저를 가르치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노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5년 간 건강문제로 수업을 두 번 빠진 것 외에는 정말 열심히 임했고, 선생님도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셨어요. 그 가르침이 없었다면 아마 숱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도망치려고 했을 겁니다. 지금도 연락을 드리면 눈물까지 글썽이며 반가워해주시고 지금 제자들에게 제 이야기를 하신다고 해요.” 

▲ 특별히 기획하지 않아도 걸려있는 그림은 자연스레 전시회가 된다 (사진/정현진 기자)

귀국, 그리고 산 다미아노

5년간의 공부와 독창회를 마치고 2009년 10월에 귀국했다. 그 때 이미 수도회에서는 카페 준비를 진행 중이었고 ‘문화공간’으로 기획된 카페였기에 음악공부를 한 강 수사에게 맡겨졌다. 오픈은 코앞이었고 종신서원 후 10년이면 가져야 할 안식년은 커녕, 귀국 두어 달 만인 2010년 1월 4일 카페로 첫 출근을 했다. 그 다음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사람들이 카페 운영을 낭만적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오픈은 닥쳐있고 적응 시간, 상황 파악할 시간도 없고, 수도회도 나도 안 해본 일을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죠. 문화공간은 컨셉일 뿐 실제로 해야 할 일은 ‘커피 가격을 얼마로 해야 할 것인가, 직원들은 어떻게 뽑아야 할 것인가,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다못해 청소관리, 직원 면접까지. 다들 담당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구요. 일을 맡고 나서는 하루 12시간 씩, 첫 달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에 매달렸죠.”

만남과 소통, 여백과 배려의 문화

산 다미아노는 ‘문화공간’이다. 기본적으로 북카페로 운영되고, 전시와 연주를 위한 공간을 염두에 뒀다.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두고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궁금했다.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겠지만, 문화공간이라고 해서 모두 다 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 오히려 내용이 없어질 수 있고 위험하죠. 이 카페는 자신과의 만남, 절대자와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 만큼 여유 있고 편안하게 만들 겁니다. 그 자체도 문화니까요.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이런 저런 제안을 받지만 완급조절을 하려고 합니다. 완전히 정착되기 전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다 보면 오는 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고 여러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지향합니다.”

꿈을 꾸는 사람 같았다. 단지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라 카페 안에 산 다미아노의 문화를 채우는 일이 어쩌면 자신 안에 차근 차근 하나의 철학을 세워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 사진/정현진 기자

먹을거리도 문화,  손님들에게 아무 거나 드릴 수 없어요

이야기 중에 커피 맛이 좋다고 했더니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강 수사의 눈이 다시 반짝인다. 소비문화에 대한 고민으로 공정무역 커피를 쓰고 예쁘고 화려한 모양 보다는 신선도와 맛에 공을 들인다고 한다. 차도 유기농을 쓴다. 무엇보다 머핀이나 스콘 같은 곁들임 메뉴도 힘들지만 직접 굽는다. 정성을 들이는 만큼 손님들도 알아주고 호응이 좋다고 한다.

카페 공간에 대해서도 찬찬히 설명한다. 안과 밖이 서로 통하게 되어 있는 100여 평 공간은 하나인 것 같지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공간을 꾸미는데 최대한 돈을 들이지 않고 되도록 재활용, 기증으로 충당한다. 심지어 수도회 성당 결혼식에서 남은 꽃을 쓰기도 한단다. 책들도 모두 기증받은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성악가’로서 강 수사 개인의 바램을 들었다.

“성악을 공부한 것은 한국에서는 성직자 수도자 통틀어서 제가 처음인 것 같아요, 특히 수사로서는. 그래서 자선활동을 많이 하고 싶어요. 북한 돕기, 수재민 돕기 같은 것들. 애초에 성악공부를 한 목적이 음악으로 도움을 주고 교감을 갖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소망이 크죠. 하지만 지금은 맡은 소임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음악가 이전에 수도자이기 때문에. 수도자로서의 소임,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 그런 부분에 많이 마음을 써야 하고, 다만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열심히 하면 또 다른 계기가 주어질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일을 소홀히 하면 소임도 음악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이야기 내내 카페에 대한 끊임없는 궁리와 애정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카페는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공들여 빚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란 음악, 그림과 같은 단순히 아이템의 집합이 아닌, 삶을 아우르는 철학,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것이 또한 산 다미아노의 문화라고 한다면 무리가 될까.

아다지오 칸타빌레. 산 다미아노가 사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지만 알차게, 그리고 노래하듯 기쁘게 살아가는 산 다미아노의 모습이 자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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