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생명대회 취재기자 후일담]

지난 7월 9일부터 11일까지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열리는 '2010 전국 생명대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전국의 천주교회 생명운동가들이 모여 생명운동의 경과와 전망을 나누는 생명포럼, 2천여 명의 전국 본당 대표들이 모이는 생명의 밤 행사, 1만여 명의 신자들이 모여 생명운동에 나설 것을 다짐하는 파견 미사로 생명대회가 이뤄졌다.

어떤 이유로도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하느냐이다. 이번 생명대회를 참관하면서 정말 교회가 우리 사회에 생명문화를 건설하려면 두 가지를 더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교회가 조직된 힘의 논리로 생명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낙태 문제가 아닌 생명 문제에도 교회가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2010 전국생명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사진/고동주 기자)

마지막 날인 11일 생명운동 다짐의 날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꽃동네 오웅진 신부의 말 그대로라면 온돌이 깔린 연수원에는 7천 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거의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음악 공연과 낙태 상황을 재현한 퍼포먼스가 끝나고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총무인 송열섭 신부는 얼굴이 상기된 채로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위원장인 장봉훈 주교는 "정부가 만약 낙태를 합법화할 경우, 우리가 시청 광장에 가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그리고 이날 미사에는 홍재형 국회부의장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이시종 충북도지사가 참여해 축사를 남겼다. 이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신자들은 박수를 던졌다.

이것은 교회가 하는 생명운동의 힘을 과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생명운동의 전사들인 여러분이 앞으로 더 힘을 내셔야 한다"는 말도 한다.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고 반포될 생명운동지침서(안)에는 '비폭력 생명운동'이 적혀 있지만, 무의식 속에는 전투성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세를 불려서 제도를 고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싸워서 제도는 원하는 데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정 생명의 가치를 심을 수 있을까? 생명포럼에서 이병호 주교의 강의를 흥미롭게 들었다. "예수님께서 어떤 이유로도 아내를 버리지 못한다고 하시자, 제자들조차 그렇다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주교는 그만큼 생명의 가치를 지킨다는 것을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성경구절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렇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가 제시하신 바를 어려워했는데, 비 그리스도인들이야 어련하겠는가. 천주교 신자들의 낙태율과 인식도 일반 신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수의 한심한 제자들은 어떻게 변화됐는가? 스승 예수의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과 희생이 있고 난 후 성령을 통해 제자들은 용기 있게 세상을 향해 문을 박차고 나갔다. 교회도 예수처럼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을 하는지는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품고 있다. 교회가 소유한 사업장의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사랑 실천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정성이다. 교회가 생명을 살리겠다는 진정성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 홍재형 국회부의장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파견 미사에 참석했다.(사진/고동주 기자)

▲ 아기의 비명소리와 함께 아기 인형의 사지를 자르는 퍼포먼스로 낙태의 잔인함을 표현했다.(사진/고동주 기자)

태아보호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반론을 펼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명은 태아만 가진 것이 아니다. 이번 생명대회의 포럼에서 강우일 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의 복음'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적하는 인간 생명에 관한 가르침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아래와 같이 인용했다.

“온갖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스르는 모든 행위;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을 해치는 고문, 심리적 억압과 같이 인간의 온전함에 폭력을 자행하는 모든 행위;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 불법 감금, 추방, 노예화, 매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매매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 또한 노동자들이 자유와 책임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이윤 추구의 단순한 도구로 취급당하는 굴욕적인 노동 조건; 이 모든 행위와 이 같은 다른 행위들은 참으로 치욕입니다. 이는 인간 문명을 부패시키는 한편, 불의를 당하는 사람보다도 그러한 불의를 자행하는 자들을 더 더럽히며, 창조주의 영예를 극도로 모욕하는 것입니다.” (사목헌장 27항, 생명의 복음 3항)

교회가 인정하는 생명의 범위가 생각보다 굉장히 넓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실로 반생명적인 죽음의 문화가 곳곳에 깔렸다. 교회가 생명보호를 외치며 낙태만을 반대하고 다른 생명의 죽음에는 눈을 감는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진리로 이끌기는 불가능하다. 예수처럼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가르침을 전할 각오를 해야 한다.

사실 공산주의보다 더욱 심각한 유물론을 유포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인간 생명의 존엄함이 무시당하고 착취당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그놈의 돈 때문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은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려는 것이었고,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놓고 차별하는 것도 기업이 경쟁력을 높여 돈을 더 잘 벌려는 것이다. 교회가 죽음의 문화를 넘어 생명의 문화를 향하겠다면 바로 이 자본주의를 거슬러 온 힘을 다해 돈보다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임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 스스로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

▲ 6명의 자녀를 낳은 가족이 장봉훈 주교로부터 태아 발배지를 받고나서 인사하고 있다.(사진/고동주 기자)

천주교인들조차 낙태율이 높다는 지적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인 박정우 신부는 "그동안 교회가 직무유기를 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생명대회를 계기로 적극적으로 낙태의 문제점을 알리고 생명운동을 해나가겠다"고 답했다. 혹시 교회가 했다는 직무유기의 범위를 '낙태의 문제점 홍보'로 비좁게만 생각한다면 태아보호 자체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태아, 청소년, 성인, 노인, 여성, 이주민, 그리고 다른 모든 피조물에 대한 억압에 대해 교회가 직무유기를 한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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