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신하영옥]

여주 이포보 공사현장을 다녀왔다. 7월에 한 번, 8월에 한 번. 아니 정확히 말하면 4대강 반대를 위해 보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에 대한 지지와 격려, 4대강에 대한 공사를 중단하라는 요구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집회에 다녀왔다. 7월 집회에도 많이 더웠고, 거름냄새가 역겨웠었다. 나는 그 거름이 장승공원의 나무들을 위해 뿌린 것이겠거니 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아직 열흘을 넘기지 않은 농성 덕에 보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상태가 양호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성을 듣고 망원경으로나마 그들의 모습을 접하자 찡! 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그들이 저 보를 오를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지금은 저렇게 웃고는 있으나 또 어떤 심경들일지. 아니 자꾸만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고 몰려갈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먹먹하게 다가 왔다. 언제쯤이나 이런 극한의 상황들이 사라질 것인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극한의 투쟁들이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농성 일주일 후부터 생활용품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도 활동가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생활용품과 먹거리는 반입을 못하고 말았다. 찜통더위에 식량은커녕 먹을 물조차 반입을 기피하는 것은 뭐하자는 것이냐며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비난과 원망이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그렇게 그 날은 돌아왔다. 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한 에어컨으로 달래가며... 잠시 동안의 더위에도 지치고 힘들어 차량에어컨을 들들볶아대었는데, 종일을 높은 보 위에서 텐트조각으로 햇빛을 가리는 그들의 더위와 갈증에 미안해야 했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장난질을 하는 현 정부와 공사업체의 잔혹함이라니.

그리고, 8월에 한 번 더 방문했다. 그 때는 거름냄새가 지난번보다 더 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상황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을 이장단에서 상황실 철수와 지지방문 방해를 목적으로 일부러 뿌린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한밤중에 몰래 와서. 현장에는 4대강공사 찬성현수막이 줄줄이 널려있다. 비슷비슷한 문구들, 개발에 대한 염원을 담은 문구들... 언뜻 봐도 같은 사람이 만든 것 같은 현수막들이 여주 주민의 이름으로 걸려있고 그 사이에 하나, 4대강 반대의 현수막이 또한 여주 주민의 이름으로 걸려있다. 적든 많든 부동산과 토지를 소유하는 있는 이들이 찬성 측이라고 한다.

그 날은 찬성하는 주민들의 집회도 있었다. 그리고 현장방문에는 대학생들도 50여명 와서 현장을 둘러보고 자기들끼리 집담회를 하고 있었다. 찬성집회는 어느 순간 대학생들에 대한 공격과 욕설로 얼룩져 버렸고, 상황실을 공격할 기세로 인해 경찰들이 상황실을 보호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살아생전 전투경찰의 보호를 받기는 처음’이라며 웃음을 주고받기는 했으나 마음 한편은 찜찜했다. 자식뻘인 대학생들을 향한 욕설과 흥분은 결코 당당하거나 정당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사업이 중단될까 두려워하는 모습, 안절부절하는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내몰고 있는 걸까? 

▲ 사진출처/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

언제부턴가 이 사회에서는 ‘개발은 돈’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있다. 그것은 부동산이 재산증식의 주요한 수단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개발이 곧 돈이 되는 것은 그 개발과 관련한 부동산이 있을 때 확실한 보증수표가 된다. 개발예정지에 외지인들이 부동산을 사들이는 것이 그런 이유이자 증거가 아닐까? 여주 이포보의 갈등도, 찬성 측의 대부분도 부동산을 소유한 이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다수 주민들은 구체적인 이익에 대한 정보보다는 정보와 권력을 점유한 찬성 측의 입장을 전달받을 뿐이라고 한다. 군수와 이장들이 전부 개입되어 있으니 일반주민들이 섣불리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긴 힘들 것이라고 한다. 진실은 결국 권력과 부를 가진 몇몇에 이득이 돌아갈 것이라는 게 아닐까?

지역출장을 위해 오랜 시간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다니다보면 보이는 곳곳이 헤집어져 있음을 본다. 산이 통째로 뭉개지고, 강이 파이고, 시뻘겋게 드러난 맨 땅위에 철과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세워지는 모습... 그것이 개발이란 미명하에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벼로 출렁이던 들과 나무로 싱싱하던 산과 말갛게 흐르던 강물이나 냇물이 그런 모습으로 대체되고 있다. 나의 고향집 앞산도 통째로 뭉개져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는 회색건물들이 고향집에서 보는 시야의 전부가 된다. 여주 남한강의 공사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시뻘건 피를 토하듯 드러난 흙이 푸른 강나루를 대신하고 있다. 강이 주는 평화란 찾아볼 수 없다. 전쟁하듯이 강을 뒤집고 점령하듯이 강나루를 짓이기고 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정복, 폭력, 전쟁 같은, 잔혹한 단어들이 떠올랐고 분노가 올라왔다. 파괴된 자연에 대한 숙연함과 더불어 마치 내 몸을 유린당한 것 같은 분노. 강의 야생성이 주는 편안함과 평화는 이제 더 이상 못 본다는 것에 대한 분노. 현장 방문한 이들이 적어놓은 지지와 격려의 글 중에 ‘그냥 흐르게 두라’는 글귀가 있었다. 그렇다 왜 ‘그냥’ ‘흐르도록’ 두지 못하는 것인가? 왜 사물이 본래의 모습으로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존재하도록 그냥 두지 못하는 것인가?

여성의 몸과 마음과 생각을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관점으로 재단해서 깎고 자르고 통제하듯이 자본과 결탁한 가부장제는 자연마저 자본의 도구로 통제하려고 하고 있다. 여성의 미를 규격화 하듯이 자연의 아름다움마저 규격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멘트로 덧입혀진 인공 강나루가 수풀로 우거진 강나루에 비해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주장하는 배경, 잘 흐르는 강물을 막더니 그 자리에 인공호수를 만들려는 발상의 배경은 아름다움조차도 가공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 다름 아니다. 제발 그냥 두라!! 천박한 심미안과 욕심을 지금이라도 거두라!! 그냥 이대로, 지금 그대로 두어라!!

자연이 파괴된다면 그 다음은 인간의 파괴라는 것을 모르는가? 몸이 없이 생각이 없듯이 자연이 없이 인간의 문명과 문화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도 다 아는 상식을 그들은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개발과 성장의 의미를 다시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 이 시각, 비가 온다. 이 비로 인해 더위는 한풀 꺾이겠지만, 비로 인한 또 다른 불편들을 생각하니 편하지만은 않다. 벌써 한 달을 넘긴 농성에 활동가들의 몸은 지치고 이러저러한 병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쉽게 농성을 접을 수 없는 활동가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길은 4대강 사업의 문제에 대한 침묵을 걷어낸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일 것이다. 아니 활동가들의 고충을 떠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안식을 찾고 찜통더위와 이상한파로 나타나는 이상기후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도 참여해야 한다.

결국 인간 스스로의 멸망을 막기 위해 나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여주의 찬성하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 묻고 싶었다. “진정 찬성하세요?”, “건설로 인한 이득과 자식들의 미래를 바꾸고 싶으신가요?” 그러나 실제 이 작업은 국가가 해야 한다.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행위다.

[기사제공-인권연대]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교육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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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보 촛불문화제(동영상출처/i-kol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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