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현 신부, 매일 명동성당에서 1인 기도 중

명동성당 대성전 한 돌기둥 옆자리. 문정현 신부의 기도 지정석이다. 두 손 모으고 문 신부가 앉아있는 자리 옆에는 그분의 분신 같은 지팡이가 기둥에 기대 서있다.

문정현 신부는 요즘 매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명동성당에 들어선다. 하루 일정이 꽉 짜여진 고등학생 시간표 같다. 아침 8시부터 6시 미사까지 50분 기도에 10분 휴식이다. 1교시부터 9교시까지는 기도, 마지막 10교시는 미사로 그렇게 하루 기도를 이어간다. 10분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학생들처럼 문신부의 10분도 방문자들 인사에 분주하다.

처음 문정현 신부를 만나러 갔을 때, 모든 매체의 취재를 거부했다. 그저 조용히 기도만 할 작정이라고, 어떤 언급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기도가 이슈화되는 것도 부담스러울뿐더러 사람들을 만나면 기도에 방해가 된다며, 단순 취재나 잠깐 다녀가는 것 말고 옆에서 같이 기도 하자고 했다.

그래서 다시 갔다, 기도하러.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문 신부를 만나고 싶었다는 두 명의 친구를 동반했다. 말로만 전해 듣던 문정현 신부가 정말 그렇게 무서운 분인지 궁금하다면서 따라나선 두 친구는 대학교 3학년, 2학년 동아리 선후배 사이다. 이 순간 어떻게 때맞춰 자발적 참여자가 나타났느냐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까 우려해 일단 기자의 제안이 있었음을 양심상 밝히고 넘어간다. 하지만 싫으면 어쩔 수 없는 일, 흔쾌히 명동까지 나온 것은 순전히 그들의 의지다.

▲ 기도에 참여한 심재홍 가브리엘, 박현민 드보라 (사진/정현진 기자)

첫 번째 꾀임에 넘어간 심재홍(가브리엘)과 다시 그에게 낚인 어여쁜 후배 박현민(드보라). 둘 다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다. 심재홍 군은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 신부를 직접 만나는 게 무서웠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지척에서 그분을 뵙겠나 싶었단다. 어릴 적 시국사건을 통해서 봐왔던 문 신부에 대해 '정치신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고, 같은 전주교구 신부인줄 몰랐을 뿐더러 심지어 소속이 없는 줄 알았다고. 신앙인으로서 대학생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세상의 흐름 때문에 힘들었는데 문 신부의 모습을 보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박현민 양은 언론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문 신부를 알게 되었는데, 실제로 뵙고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강인한 이미지 뒤에 숨은 모습과 신부님은 20대에 어떤 분이셨을까 하는 깜찍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문 신부는 토요일과 주일은 전주로 내려가고 월요일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금요일까지 서울에서 지낸다. 전주에서 올라오는 날이라 월요일 기도는 오후에 시작됐다. 우리들 말고도 함께 기도하는 두어 분이 더 계셨다. 사실 우리는 기도보다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좋았지만, 문신부는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느라 기도시간을 못지킬까봐 노심초사 했다.

▲ 기도시간 (사진/정현진 기자)

기도 중간 쉬는 틈을 이용해 성당 앞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왜 이곳에서 기도를 시작하셨는가’ 일 터였다. 질문에 대해 문 신부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해. 그리고 명동성당은 한국 교회의 근원지이고 상징 아니냐. 이곳에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라고 했다. 문득 지난 번 방문했을 때 누군가가 “신부님, 명동성당 벽돌 수만큼 기도하셔야 해요. 그래야 뭐가 되도 되지 않겠어요?”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서 문신부는 왜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그간 있었던 교회 안팎의 불편한 일들에 대해 하나씩 풀어주었다. 4대강 반대 운동을 둘러싼 일들도 두 사람은 궁금했던 모양이다. 지난 4월 명동성당에서 사제 단식기도회가 진행되었던 일, 현재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의 활동들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들었다.

“4대강 사업 저지는 전체 주교가 뜻을 모은 교회의 뜻이자 공식 입장인데, 그것을 위한 활동을 명동성당은 받아들이지 않더라. 무엇보다 ‘영업 방해 말라’면서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기가 막혔지. 영업방해라니...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4대강은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생명 자체를 죽이는 일인데, 그걸 받아들일 수는 없지. 성서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 일이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던 모양이었다. ‘순명’에 대해 물었다.

“얘야, 따라야 한다고 해서 누군가 너에게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한다면 너는 그렇게 하겠니? 순명은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거야. 성서에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23)’라고 하지 않더냐.”

이야기를 정리하고 미사를 드리기 위해 들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용납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제는 다만 기도할 뿐이야. 기도로 표현하는 거다.”
 

▲ "순명은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문정현 신부. (사진/정현진 기자)

그동안 문신부는 기도 후에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봉헌됐던 생명평화미사에 갔었지만 오늘부터 명동성당 저녁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사제로서 제대가 아닌 신자석에서 미사를 드린다.

첫 명동미사. 입당성가는 때마침 가톨릭성가 28장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였다. 복음은 마태오가 전하는 거룩한 말씀 23장 13절에서 22절.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오늘의 주제를 관통하는 미사였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월요일 6시 평일미사인데도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웬만한 본당 주일미사 수준은 되어 보였다. 막 성당에서 나오는 순간, 문신부의 일갈.

“이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봐라.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지 않니. 그런데 우리는 어떠냐, 결국 우리 기도가 부족한거다.”

미사를 마치고 성모동산에서 4대강을 위한 기도를 함께 바쳤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다음날은 문정현 신부의 영명축일인, 성인 바르톨로메오 축일이기도 했다. 요즘 모 신문에 연재되는 글을 준비하는데 힘들다는 얘기, 활동하면서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들, 요즘 대학생들 사는 이야기, 곧 피정지도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준비할까 걱정이라는 말에 아이디어 제공도 조금.

식사를 마치고 문 신부는 근방의 숙소로 향했다. 후배 사제들에게 가면 좀 더 편히 쉬겠건만, 폐 끼치기 싫다며 다음날 아침거리를 가방에 넣어 둘러매고는 총총히 걸음을 돌렸다. 문 신부는 당분간 계속 기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언제 마칠지는 아직 계획에 없다. 기도 중에 방문을 원하는 이들은 쉬는 시간을 잘 고려하고 기도하러 가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매일 오후 5시에는 명동성당에서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6시 미사에 참례한다. 

돌아오는 길에 물어보지 못한 중요한 질문 하나가 생각났다.
'아...신부님께 수염은 왜 기르시냐고 꼭 물어본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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