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들의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온 첫 날,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는 안이 훤칠히 들여다보이는 입시학원에 학생들이 꽉 차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하루 종일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공부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갑갑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날 새벽, 다시 창밖을 보는데 새벽 2시가 되어 가는데도 학생들이 귀가한 뒤 텅 빈 학원에는 불이 켜져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잠들어 있을 새벽녘, 두 명의 아주머니께서 학생들이 사용하던 강의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새벽2시에 노동을 하고 있는 저 분들은 오전과 오후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을까. 아마도 분명 그녀들은 새벽 세시나 되어야 끝나는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이른 아침에 눈을 떠 가사노동과 다른 수입원이 될 수 있는 노동을 할 터였다.

우렁각시 마냥 남들이 안 볼 때 후다닥 청소 마쳐야

저 으리으리한 건물에 우리가 '청소부 아줌마 혹은 아저씨'라고 부르는 청소노동자들이 두 다리 뻗고 쉴 만한 공간은 있는지, 우렁각시 마냥 남들이 최대한 안 볼 때 후다닥 청소를 마쳐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월급은 한 달을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을지, 무엇보다 새벽 두 시 현재 너무 고단하진 않을지… 새벽 두 시, 하나의 건물 하나의 강의실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이사 첫 날이었다.

이곳저곳 다니다보면 청소노동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버리는 사람 따로 있는 이곳, 용역회사의 이름이 박힌 옷을 입고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청소노동자. 민망함을 무릅쓰고 용변을 보고 있는 남자화장실에도 터프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화장실 한 켠 청소도구함인 동시에 휴식공간인 곳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누군들 남자 오줌 싸고 있는 모습 보고 싶어서 들어가겠나. 또 누군들 남들이 똥 싸고, 술 마시고 토하는 화장실에서 밥을 먹고 싶을까.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차갑게 식어버린 밥을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 밖에 없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모든 청소노동자들의 화장실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커다란 건물 안에 청소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만한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또 그나마 청소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이라고 되어있는 곳조차도 화장실 한 칸 처럼 매우 열악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휴식공간'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그냥 건물 안에 사무실 다 들여 채워놓고 건물 안 남은 한 구석 정도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한나라 당사 앞에서 더러운 정치를 깨끗이 한다는 취지 아래 청소를 하고 있다.

청소노동자 중 81.6%는 여성..
청소노동자 평균 임금 79.6만 원


현재 민주노총 공공노조와 시민인권사회단체들은 "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를"이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또 대학교들을 중심으로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있는 등 그들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해나가기 위한 밑거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캠페인 팀이 여의도 모처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시더니 자기는 이 캠페인 내용에 너무나 공감한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 아주머니는 바로 근처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이고, 그나마 있던 휴게실을 건물주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하는 바람에 자신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밥을 어디서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울분을 토하셨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돈의 논리에 노동하는 자의 휴식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당하는 장면이다. 먼 곳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존재를 알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그 사람들의 삶이 이렇게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들의 삶은 어떻게 박탈당하고 있는가.

지난 6월 23일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단'이 진행한 "청소노동자 현황보고"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직업들을 426개로 분류했을 때, 임금노동자 중 청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네 번째로 높았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청소노동이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필수적인 노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청소노동자 중 81.6%는 여성으로, 이들 중 41.7%가 50대, 39.5%가 60대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청소노동자 중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구주인 경우도 36.9%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에 여성이라는 이중 굴레도 모자라 고령이라는 삼중의 굴레에 얽혀있는 그녀들. 전체 426개 직업 중 청소노동자가 받는 평균 임금 79.6만원은 낮은 순위로 여덟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최하위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임금은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해본다면 이사 첫 날, 내가 창밖으로 바라봤던 청소노동자 아주머니 두 분께서 새벽 세시까지 일을 하고 다음날 이른 아침 다른 노동을 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아마도 적중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말 그대로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다른 방법은 없을 테니 말이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 사람처럼 되는거야"

얼마 전, 모 대학에서 한 대학생이 청소노동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고 해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대학생을 욕하며 마치 돌팔매질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는 모양새를 보며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사건을 해당 대학생 개인 성격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인가. 어릴 때부터 계급의 차이를 내면화 하며 성장하게 하는 이 사회는 책임이 없는가. 청소노동자들을 유령 취급 하는 우리들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길을 가다 노숙인을 보고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 사람처럼 되는거야"라고 말 하는 사람은 누구였던가. 바로 우리 아닌가.

바로 얼마 전, 내년 최저임금이 5.1% 올라 4,320원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맨 처음 경영계에서는 10원 인상안을 주장했다고 한다. 기가 막히다 못해 내 온 몸의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10원짜리 껌도 안 파는 세상에 고작 10원이라니.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는가. 5.1%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대형 커피전문점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액수이다. 최저임금이 조금 올랐다고 해도 많은 청소노동자들은 여전히 도시락을 싸서 차갑게 식은 밥을 먹을 것이다. 밥이라도 제대로 먹게 해달라! 옆에서 누군가 볼 일 보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겠나. 먼지투성이인 창고에서 휴식을 취할 순 없지 않는가.

따뜻한 밥 한 끼와 인간답게 대우를 받으며 일할 권리를 외치는 이화여자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출범 선언문의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더 이상 유령이 아니라 당당한 노동자로서 길을 걸을 그/그녀들의 삶에 연대와 지지의 박수를 보내며.

"우리 청소 용역 노동자들은 지난 세월 동안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무 소리 못하고 마치 노예처럼 일해 왔다. 한 겨울에도 쥐가 다닐 것 같은 휴게실에서 찬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현실, 매년 반복되는 재계약의 공포, 관리자의 해고 협박…. (…) 이제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이야기할 수 있는 당당한 '노동자'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화여대를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주체'임을 선언한다."


▲공공노조는 지난 5월 12일 오전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의 경과 보고를 하고 '청소노동자 행진'을 선포했다. 신복기 이화여대 분회장은 "집에서는, 한 가정에서는 중요한 어머니이자 부인데 일하러 나오는 순간부터 사람이 아니라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된다"며 계단 밑에서 쪼그려 앉아 찬 밥을 먹어야 하는 청소노동자의 현실을 규탄했다.(동영상 제공/민중의 소리)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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