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동아리에서 만나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선배가 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부터 뜻이 잘 맞아 매우 자주 어울려 다녔다. 군부독재가 한창이던 그때, 우리는 시위꾼들 속에서 만나 서로 격려하는 눈빛을 주고받기도 했고, 좋아하는 선배에 대한 짝사랑을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지금은 자기 개인이 아니라 가정에서 책임질 것이 더 막중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적어도 일 년에 두세 번은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눈다.

6.2지방선거가 있기 며칠 전, 광화문광장이 내다보이는 곳에서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바깥에는 서울시장 후보자인 한명숙을 지지하는 선거유세가 한창이었다. 선거와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녀가 불쑥 불교교리반에 등록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오래전에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다녔고, 당시 수녀선생님들로부터 수도회에 입회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아 한때 본인도 심각하게 진로를 고민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내가 받은 그녀의 편지는 데레사라는 세례명으로 말미가 장식되어 있을 만큼 그녀는 자신이 믿는 신을 사랑했다. 그런 그녀가 이제 가톨릭을 떠나 불교에 입교하겠다니……. 그녀는 에둘러 설명하지 않았다. 

▲ 명진스님, 봉은사에서 (사진/한상봉)
"명진 스님 보고 가톨릭에서 불교로 가려고 했던 거지. 너도 알잖니? 명진 스님 안상수하고 맞장 뜬 거. 그거 아무나 하니? , 그래도 종교가 썩지는 않았구나 생각한 거지. 내가 전에 말했던 적 있지? 우리 본당 신부 강론하는 거 질려서 성당 안 다닌다고.

노무현이 잘했다고만 볼 수 없지만, 그때 노무현 때였는데, 매번 못 잡아먹어서 난리였거든. 뭐 조중동이 따로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래저래 종교에 등지고 있었는데, 웬걸, 불교가 노무현을, 가톨릭은 자살이라는 명분으로 유스티노를 배척했는데 불교는 그 사람을 품어 안는 거야. 전국 대부분 사찰에서 그를 추모했잖아.

 그런데 이번엔 명진 스님이 권력에 대응해서 호된 소리를 하는 걸 보고, 아 종교란 게 이런 거지, 그래서 불교에 입교하겠다고 마음먹고 갔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절이 하나 있는데, 내가 보기에 개념 있는 절로 보이더라고.

 교리 시작하는 첫 날이었는데. 올봄이 늦게까지 계속 됐잖아. 절로 올라가는 길이 미끄러워서 운전하고 올라가면 위험하다고 산 밑에 있는 공익근무자들이 만류하는 거야. 나는 교리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공익하고 한참 싸웠어. 그러고 나서야 아주 힘들게 절에 도착해서 스님을 기다렸거든. 웬걸, 주지 스님은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안 나타나는 거야. 40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등장하더라고. 근데 옷차림도 엉망인데다가 다짜고짜 목탁이 어디 있지 하며 부산스럽게 찾는 거야. 그러더니 익숙하지 않은 예불인지 염불인지를 시작하더군……."

 

 "염불을 다 하더니만 처음 시작하는 말이 명진 스님 욕을 해대는 거야. 아니 늦게 왔으면 이런저런 전후 설명이나 변명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40분씩이나 늦게 오고선 아무 변명도 없이 명진 스님 욕을 해대는데, 기가 막히더군. 여태 종교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가 그래도 명진 스님 하는 거 보고 ‘그래’ 하면서 불교에 온 건데 말이야.

 주지 스님 하시는 말씀이 이런 거야. ‘지금 불교계가 이럴 때가 아니다. 법정 스님 입적하시고 분위기 좋은데, 명진 스님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 명진 스님도 (중노릇) 한두 해 하냐. 같은 도반으로 불교계에 똥칠하고 있다. 한겨레하고 경향신문은 신이 나 있다.’ , 이런 내용이었어. 근데 참고 있을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한마디 했지. 안상수가 좌파스님 발언하고 조계종단에서는 봉은사를 직영사찰하겠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이야. 그랬더니 말 흐리더라고. 뒤에 앉아 있던 예비 신자는 그만하시죠! 하더군. 이를테면 신앙생활 하겠다고 왔는데, 구태여 여기까지 와서 정치 얘긴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앞에 앉아 있던 어떤 사람은 틀린 말은 아니지 하며 내 뜻을 존중해 주더군."

 

▲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제들이 천막을 치려하자 명동 가톨릭회관 직원들이 천막을 철거하고 있다.(사진/ 김용길 기자)

그녀의 이야기가 단지 불교에 한정될까. 아니 오히려 불교와 가톨릭이 마치 쌍생아처럼 어찌도 이리 똑 닮았는가 할 정도 아닌가. 천주교회 본당에서는 마치 불문율처럼, 금기사항이나 되는 것처럼 사제도 수도자도 신자들도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아름다운’, ‘전능하신’, ‘불쌍히’, ‘사랑’ 등 추상적인 낱말들로 가득 찬 기도를 바칠 뿐이다. 

지금 자연이 파헤쳐지고 있는데 과연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 , 아름답다고만 찬양할 수 있는지, 어린 학생들이 도대체 왜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고민하는 마당에 과연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도무지 ‘아름다운’이란 말에 동의할 수 없는데 그런 말로 가득하다. ‘불쌍히’ 여기겠다고 하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는데, 그들에게는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 어떻게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모두가 허공중에 떠도는 말들이다.

 본당 내 소공동체로 가면 더 볼만하다. 형식적인 복음나누기에 이어 벌어지는 술판과 수다, 끼리끼리 모여 제 3자 흠결잡기, 시부모와 남편 흉보기, 성공적인 재테크를 위한 정보 교환하기……. 그것이 전부다. 누군가는 소공동체 운동을 성공적인 케이스로 평가했지만, 그는 책상머리에서 연구했거나 겉만 훑었다고 본다 

소공동체 운동은 절대 성공하지 않았다. 소공동체운동이 신자 수 불리기에 일조했다면 몰라도 공동체의 복음화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소공동체는 동네 친목회나 혹은 계모임보다 나을 게 전혀 없다. 자기들끼리 친절하고 자기들끼리 품앗이하고 자기들끼리 좋은 것을 공유하는 그들은 전혀 복음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종교의 옷을 하나 더 걸치고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상 한복판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본당은, 신자는 커밍아웃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같은 거 잘 모른다고. 교회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잘 갖춘 ‘복합문화센터’이고 우리는 그 센터를 유지시켜 주는 'VIP'라고. 본당은 우리가 특별히 다른 곳을 찾을 필요 없이 우리가 추구하는 우아함과 아름다움과 품격을 두루두루 충족시켜 주는 명품복합문화센터여서 비싼 연회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우리의 멤버십을 공고히 해 줄뿐만 아니라 가끔 우리의 위선조차도 알아서 잘 감추어 주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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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스님은 교리를 시작했고 선배는 그 자리를 떠나왔다고 했다. 그녀는 교리등록비 10만 원이 아까워 불쌍한 사람을 돕는 데 써달라고 주문하려다가 말았다고 했다. 그녀는 나보다 더 배우고 더 도를 닦은 사람에게서 위로도 받고 또 종교 안에서 내 안의 번뇌를 다스리고 혜안을 얻으려고 산에 올라갔는데 오히려 번뇌를 짊어지고 산에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종교는 정치와는 먼 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거나 혹은 교묘하게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종교인들 때문에 그녀는 또다시 종교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선배가 얘기하는 교리 첫 시간을 들으며 어찌 이렇게도 가톨릭 예비자교리 시간과 똑같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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