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특검과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에 대한 사제들의 반응

최근 삼성 특검 수사결과 발표와 삼성그룹의 경영쇄신안 발표에 대한 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정의구현사제단이 이 사안에 대하여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향후 전망을 어떻게 잡고 있는지 가늠해 보기 위하여 사제단 기자회견 내용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교구 신월동 성당의 나승구 신부를 인터뷰 한 결과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특검결과는 자본에 의한 국가공권력 매수와 타락상의 심각성 보여주는 사례
오히려 비자금을 이건희의 개인자산으로 안전하게 지켜준 셈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지난해 가진 기자회견(사진출처: 민중의 소리)

지난 4월 23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전종훈 신부)은 김인국, 배인호, 김영식 신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3시 서울교구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4월 17일 삼성특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22일 이건희 삼성 회장의 퇴진과 경영쇄신안을 발표한 직후에 이루어진 것이며, 지금껏 특검을 통해 진행된 삼성문제를 둘러싼 조사 결과와 사태에 대한 사제단의 평가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삼성특검, 범법자 편들어

이날 사제단은 삼성특검에 대하여 “범법 당사자들의 일방적인 주장과 진술을 근거로” 비자금 조성과 로비에 대하여 모두 무혐의 처리하고, 경영권 승계과정의 위법사항에 대해서도 경영권 방어 차원이었다는 이유로 책임자 모두 불구속 기소한데 대하여 “삼성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갖가지 범죄사실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며, 수많은 불법행위의 근본 이유였던 경영권의 부자세습마저 법적 정당성을 얻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이미 자신이 가담했던 범죄 사실을 고백하고 시인한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묵살한 채 “범법자들을 편들어 결론을 꾸며 발표”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사제단은 이러한 결과를 두고 “특검결과야말로 자본에 의한 국가공권력의 매수와 타락상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가늠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비판하였다.

삼성그룹은 불법, 편접, 탈법 실상 고백하고 용서 청해야


삼성그룹의 경영 쇄신안에 대해서는, 삼성 최고경영진이 자신들의 과오에 대하여 밝히지 않은 채 막연히 용서를 청하는데 의문을 표시하고, 진정으로 삼성그룹이 새로운 출발을 원한다면 자신의 불법, 편법, 탈법한 실상을 낱낱이 고백하고 용서를 청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또한 경영쇄신안을 통하여 회장과 가신그룹의 퇴진, 전략기획실의 해체 등을 발표하였으나, “순환출자구조의 개선안을 밝히지 않은데다 모든 죄의 근원이었던 불법승계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쇄신안도 오랜 세월동안 삼성이 관행의 이름으로 반복해온 여러 가지 병폐를 단절하는 개혁안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경제라는 물신에 굴복한 국민정서도 문제

한편 사제단은 이번 사건을 통하여 공동선을 위해 복무해야 할 각종 공권력이 어떻게 마비되고 오염되는지 깊이 실감하고 있으며,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물론이고 돈의 힘에 굴복해버린 각계의 유력자들과 돈으로 영혼을 매수하는 자들까지 결국 모두가 돈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고백하고,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을 통해 드러난 낡은 질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질서를 맞이할 때가 왔다는 징표를 읽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일부 언론의 왜곡과 많은 지식인들의 침묵과 냉소는 용기 있는 증언자들을 절망하게 만들었으며, “경제라는 이름의 물신을 위해 모든 가치를 뒤로 미루는 오늘의 국민정서 또한 재벌의 범죄를 방관하거나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범이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2007년을 경제민주화 운동의 원년으로 삼겠다

사제단은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면서, 1987년이 절차 민주주의의 원년이었다면 삼성 비자금 사태가 발발한 작년 2007년을 경제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하면서, 그 동안의 증언들을 토대로 권력과 자본의 결탁사례를 세상에 알리고 호소하는 일을 계속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다짐하는 뜻으로 사제단은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단식기도를 하겠다고 밝혔다.

특검은 사제단 명예 훼손시켜

이 자리에서 김용철 변호사는 “나와 사제단은 시종일관 특검의 의한 수사를 원한 바 없다. 특검의 수사결과는 최초에 제기된 수사대상이었던 비자금과 불법승계에 대해서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결론을 내렸고 수사대상도 아닌 권한도 아닌 사안에 대해 결론을 발표했다”면서 “특검은 많은 부분에서 사제단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내용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의 퇴진 역시 “소나기가 오는 것을 잠시 피하겠다는 뜻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일축하며, “나와 사제단은 양심있는 시민과 더불어 이씨 일가의 범죄와 관하여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서둘러 막을 내린 삼성특검

4월 24일,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하면서 단식을 시작한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신월동 성당 주임,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처장)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이건희 회장의 퇴진은 “당장에 숨어버린 느낌이 들었으며, 이건희 회장이 재등장하지 않더라도 삼성은 구조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 두 사람이 자리를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하였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사회에서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리로 가게 하는데 사제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하면서, 이번 삼성특검 수사결과 발표와 삼성그룹의 쇄신안 발표는 “아직 연극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막을 내린 격”이라고 말하면서, “이상한 것은 국민들이 삼성과 재벌의 문제를 다 알면서도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점”이라고 하면서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일치시켜 생각하는 게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경제 민주화, 복음선포의 차원에서 다뤄야

나승구 신부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사제단은 이러한 재벌문제 등이 본연의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사건의 과정에서 들어 온 제보를 통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그리고 최근에 불거져 나온 ‘실용’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물신적 경향을 복음선포의 차원에서 그냥 치나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다. 덧붙여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문제 등의 경우에도 “결국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그릇된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며, 재물신인 맘몬에 굴복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착취를 통한 부, 잘못된 경제관

한편 나승구 신부는 “국민들이 잘 살기를 바라지만, 문제는 어떻게 잘 사는 게 바람직한가, 라고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잘 사는 것이 다른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이루어진다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제3세계의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우리가 잘 살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죄악”이라는 것이다. 경제 역시 “누구를 위한 경제냐?”하고 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나신부는 “이번 총선에서 서울사람들이 뉴타운 개발 때문에 한나라당에게 넘어갔는데, 결국 경제적 이해득실만 따지는 것이었고, 설령 개발이 되더라도 혜택을 받는 사람은 겨우 25% 정도에 지나지 않는 부유한 사람들과 개발업자들인데, 마치 모든 시민들이 수혜자가 될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려는 것은 나눔을 중단하는 것

이러한 상황을 두고 나신부는 “예수는 가난한 이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가난한 이들이 행복하다는 말씀은 곧 그들이 가난하지만 이웃들과 더 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곧 “나눔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계속 모아야만 부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신부는 “가장 불안한 사회는 100명의 사람이 있는데 90인분의 먹을 게 있는 사회”라고 말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그 10명에 들지 않기 위해 악을 쓰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먹을 게 50인분이 있는 사회에서 서로 나눠 먹으려고 한다고 지적하면서, “피정을 가서 음식을 먹는데, 지난 번 식사 때 밥이 부족했던 경우엔 다음 식사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서둘러 식당에 줄을 서게 된다”는 예를 들어가며, “지금 우리 사회는 90인분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은 보은의 마음으로 처신해야

나신부는 우리 사회가 GDP 세계 12위라면서도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여전히 나누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말하고, 마치 그 90인분을 삼성이 제공하고 있는 양 잘못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이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국민이 삼성을 먹여 살려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보은의 마음으로 처신하지 않고, 여전히 국민을 담보로 잡고 유세한다”고 말했다.

이건희 일가에겐 결과적으로 고마운 특검

나신부가 보기에 이번 특검의 가장 큰 문제는, 특검이 이 사건을 큰 여파 없이 어떻게 끝내버릴까 궁리한 흔적이 여실하다는 것이다. 나신부는 수사결과를 지켜보며, 이번 특검이 오히려 “이건희 일가에겐 고마운 특검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드러난 것만 해도 4조5천억이나 되는 차명계좌의 돈을 두고 불안했을 텐데, 분명 삼성의 비자금으로 조성되었을 그 돈이 특검 결과로 안전하게 이건희 개인의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검 후에 이건희 회장이 세계 부자서열에서 상향조정이 되었다는 소문도 들었다고 한다.

사제단은 양심적 시민들과 언제나 함께 할 것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이 특검에서 증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범인들의 완강한 부인에 따라서 무혐의 처리된 문제라고 보았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으로 그동안 익히 알면서도 쉬쉬하던 재벌정관계 문제, 로비, 순환출자, 그리고 그들이 관리해온 차명계좌 등이 밝혀진 것은 다행인데, 앞으로 경제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다른 재벌의 경우에도 분명히 있을 이러한 부정을 특검 같은 것을 믿고 폭로할 수 있는 제2, 제3의 김용철 변호사가 나올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심적 시민들이 패배감에 젖지 않도록, 사제단은 앞으로도 삼성문제와 같은 것을 특정 개인의 일로 치부되지 않도록 이러한 사람들과 계속 함께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200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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