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김상화, <강은 흘러야 한다>, 미들하우스(2009)

▲ 사진/한상봉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평생을 강과 더불어 산 사람, 김상화 씨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다 아는 이 노래가 초등학교에서 사라진 것을 가슴 아파했다. 우리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강을 만나러 가곤 했는데, 이젠 강변에 가도 금모래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정부에서 4대강을 개발한다면서 처음엔 4대강에서 모래를 4억 4천만 톤을 준설하려다 반발이 심하자 3억 7천만 톤만 파내겠다고 말한다. 보와 둑이 만들어지고 나면, 우리는 모래강변을 만날 수 없다. 강은 호수처럼 변하고, 둑 위에 서서 유람선이나 보게 될런지도 모른다.

김상화 씨는 작년 말에 출간한 책 <강은 흘러야 한다>에서 이 모든 게 "돈이 몰고 온 힘"이라고 비판한다.

▲ 김상화, <강은 흘러야 한다>, 미들하우스(2009)
"경부운하, 한반도 운하가 4대강 정비사업으로 바뀌면서부터 명분은 힘발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초 13조 8천억이란 예산이 22조 2천억으로 바뀌고 또 이런저런 명분을 붙여 30조까지 뛰어오르니, 이젠 신뢰까지 묽어져 간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돈이 나눠진다 하니까 전국에서 강을 끼고 있는 지방정부는 이 돈을 먼저 받아내려고 줄서기를 마다않고, 지방의 토목건설업자들은 공사 하나를 더 따내려고 동분서주하면서 혈안이 되어 있고, 4대강 중에서 낙동강이 전체예산 반 이상을 가져간다 하니까 나머지 3대강은 진한 박탈감에 젖어 '우리는 뭐냐?'하고 있다

돈이 몰고 온 힘이다. 돈의 사슬고리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다. 녹색의 강을 팔아 '녹색성장'이란 이름을 붙이는데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먼저 우리의 마음밭부터 갈아엎고 실종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아이들에게 다시 들려주기 위해, 살아있는 양심으로 종을 치자고 김상화 씨는 다짐하고 호소한다. "평생 수십 년을 바쳐 가며 가꿔온 농토를 버리고 쫒겨나야만 하는 농민들의 절박함, 막혀버린 콘크리트벽에 부딛혀 한 발자국도 오르지 못하는 물고기떼의 무기력함, 쫒겨나 갈 길 잃어 방황하는 구미 해평의 두루미와 수만 마리의 철새들을 위해 우리의 가슴을 두드려서라도 종을 쳐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35년 동안 1,370번 낙동강을 발품 팔아가며 답사 

김상화 씨는 지난 35년 동안 1,370번 낙동강을 발품 팔아가며 답사하고 787회의 사랑방좌담회를 통해 낙동강과 낙동강 유역 주민들의 환경과제를 발굴하여 각 지역 환경단체들에 제시하고 국회 환경포럼과 환경부 등에 대안을 제시해 왔지만, 결과는 4대강 사업으로 나타나 절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점아 점아 콩점아'로 시작되는 민중가요 <점치는 아이>의 작곡가이기도하고, 강에서 운율을 찾아나선 예인이다. 현재 사단법인 낙동강 공동체 대표로 <낙동강 생명 찾기 백서1,2,3>과 <거꾸로 흐르는 강> 등을 쓴 낙동강의 사람이다.

그는 1973년 2월 6일 생일에 맞춰 봇짐 하나 덜렁 메고 낙동강 끝자락인 을숙도에서 발원지인 태백의 황지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때 홍수진 씨가 지어준 노랫말에 김상화 씨는 곡을 붙였다. '누야꽃'이라는 노래다. "누야가 가구던 누야꽃이 어둔 밤 남몰래 피었네. 누야의 하이얀 웃음꽃이 고웁게 피었네."로 시작되는 노래다. 누나를 경상도에서는 '누부야'로, 또 '누야'로 부른다면서, 김상화 씨는 이 누야꽃이 곧 낙동강의 모성적 표현이라고 말한다.

"우리 겨레의 젖줄이자 국토의 핏줄인 낙동강은 천지개벽 같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밤낮없이 숱한 생명을 거두어 왔고, 언제나 한결같은 우리 엄마처럼 따뜻한 사랑을 머금어 주었다는 뜻이다."

▲ 사진/한상봉

강은 죽지 않았다, 고통스러워할 뿐

정부에서는 홍보물을 통해 "강이 죽었습니다. 하수구나 다를 바 없이 죽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라고 말하지만, 김상화 씨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30년 전에 강들은 산업폐수와 생활하수로 인해 병들고 오염되어 있었지만 그동안 정화시설 확충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많이 회복되었다. 강은 죽지 않았다. 다만 "강은 누군가가 할퀴고 괴롭힌 만큼 고통스러워 할 뿐이다. (보와 댐과 둑으로) 조이고 묶어놓은 고통의 사슬을 풀어주면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김상화 씨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시장 시절 서울에 만들었던 청계천과 4대강을 함부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청계천은 물이 흐르지 못하는 도시하천 바닥을 긁어낸 뒤 콘크리트로 물길을 만들고, 양수로 퍼올린 물을 하천유지수로 사용하지만, 4대강은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하구에서 발원지까지 넓은 유역을 지니고 있으며, 그 유역 안에 다양한 생태계를 끌어 안을 수 있는 기운찬 물길이라는 것이다.

2009년 6월 29일 대통령 연설에서, 이명박은 "완전히 죽었던 태화강을 준설해서 물을 풍부하게 하고 환경친화적으로 강을 정비하고 나니까, 이제는 울산의 아주 보물이 되었습니다... 4대강 살리기도 바로 그런 목적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태화강은 4대강과 개념이 전혀 달랐다고 말한다. 태화강 오염의 주 원인은 1987년에 하류에 지어진 길이 600미터의 명촌보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8.8km 떨어진 상류까지 퇴적물이 내려가지 못해 썩고 썩어서 악취까지 풍겼다는 것이다. 2006년 4월에 이 보를 허물어버리자 울산시민과 울산시가 공동으로 노력한 태화강 살리기에 탄력이 붙었다는 것이다. 강의 자연적 정화능력에 맡긴 것이다.

4대강 사업은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낙동강의 경우에 높이 11m, 수심 6m의 대형 보 8개가 본류를 꿰차고 들어선다면, 만약의 경우 태풍이 일어 엄청난 양의 폭우가 온다면, 자칫 대홍수 때는 댐과 보에 담겨 있던 물이 합세하여 대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상화 씨는 여기에 92개의 '직접지류 낙차공 시설'이라는 자연 통제장치가 92개의 폭발물이나 다름업사도 경고하면서, 4대강 사업에 따른 '잠복된 재난'을 걱정했다. "막으면 언젠가는 터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기를 낳고 싶다 

▲ 낙동강 공동체 대표, 김상화 씨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는 사실 4대강 죽이기라는 것이 김상화 씨의 의견이다. 그래서 반드시 철저하고 투명한 검증이 필요한 사업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박희태 전 대표는 4대강 사업을 "전광석화같이 착수해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책에서 김상화 씨는 "복잡미묘하고 불확실이 점철되어 있는 곳을 건드리면서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기세로 밀어붙인다면, 이런 정부 밑에서 국토 안정과 국민안녕이 보호받을수 있겠는가?" 묻는다.

이 사업을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이기 위해 정부는 법적 장치도 개정했다. 2009년 3월에 개정된 국가재정법 시행령 13조에는 "보 설치, 하천 준설사업은 재해예방 사업이기 때문에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제외한다"고 고쳐서, 낙동강의 10개 보와 4억4천만 톤 골재 채취가 검증에서 빠져나갔다.

또 국가재정법은 총 공사비 500억 원 이상, 국 재정지원 300억 원 이상인 사업에만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도록 했기 때문에 500억 원 미만에 해당하는 사업은 이 과정에서 자류롭도록 풀어놓았다. 그런 뒤에, 낙동강 선도사업 지구인 안동과 상주, 구미 등 대부분의 4대강 사업들은 구간 별로 쪼개 놓은 상태에서 각 사업이 480억 원으로 정해졌다. 결국 4대강 사업의 총예산 가운데 90%가 예비타당성 없이 사용되는 것이다.

김상화 씨는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지는 강은 이미 예전의 강이 아니며, 호수처럼 흐르지 않는 강이 될 것을 염려한다.  그래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이 책의 말미에 이런 시를 적어놓았다.

"30여 년 전에는 강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다.
세월이 흘러서일까?
요즘은 강에만 가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진정한 마음으로 낙동강을 짝사랑해 왔지만
겁탈하듯이 할퀴고 도망쳐버리는 패거리를 막지 못해서다.
일제 강점기 때 시인 김용호는
북받쳐 오는 민족 한을 풀기 위해 날마다 연신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를 외쳐 불렀다.
시인 이동순은 상처뿐인 강을 끌어안고
'이제, 이 낙동강에 빗돌 하나도 세우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시인 고은은 명사십리 백사장에서
'여기서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다.
민족도 학문도 문학도 이 강을 지키고 싶어했고, 이강에 기대기를 원했다.
낙동강이 품고 있는 생명의 미학을
낙동강이 지니고 있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이제 남아있는 것만도 제대로 지켜줘야 한다.
지켜서, 사랑하는 우리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그 일만이 우리가 해야 할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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