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사제 아동성추행 공개사과... 독신제도 철폐 목소리 높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5일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파문과 관련해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사과했다. 대표적 가톨릭국가인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미국·스위스·오스트리아·남미, 그리고 교황의 모국인 독일 등에서 잇따라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파문이 일어난 데 대한 사과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교황은 바티칸 성서위원회에 참석해 "우리(가톨릭교회)의 죄로 인해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는 지금, 참회해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교황의 이 같은 언급은 일부에서 교황을 퇴위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오는 등 가톨릭교회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나온 첫 공개사과 발언이다.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문제로 위기에 처해

하지만 교황의 사과가 있기 전까지, 베네딕토 16세를 비롯한 교황청 수뇌부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와 연결시키거나 '반가톨릭 혐오 캠페인'으로 치부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성추행 문제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고 신자들까지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난 12일에는 교황청 2인자에 해당하는 타르시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이 '동성애와 소아성애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언해 동성애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을 분노하게 했다.

아동성추행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책임을 반유대주의나 성적 소수자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은 교회조직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무책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교황이나 교황청이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것은 교황 스스로 독일 뮌헨 대주교와 바티칸 교리성 장관을 할 때 성추행 사건을 은폐했고 교황의 형인 게오르그 라칭어 신부까지 연루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교황청은 교황이 공개사과하기 전날인 14일 성추행 혐의가 있는 사제들을 세속 사법당국에 넘기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성직자의 아동성추행 처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누리집을 통해 발표했다. 새 규정은 성추행 정도가 심각한 경우 교황이 교회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해당 성직자의 직위를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아동은 물론 여성들을 성추행한 사제들에 대해 교회에서 축출하고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것보다는 피해자들에게 금전적으로 보상하고 물의를 일으킨 사제는 다른 나라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눈감아 주었다. 한국에서도 사제들의 성추문에 대해 교회가 공개적으로 조사에 착수한 경우가 거의 없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봉사기관 같은 곳으로 보직발령(해외포함)을 하거나 휴직 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언론 역시 개신교 목사들의 성추문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가톨릭사제들의 문제는 여러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응해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사제들 성범죄 막으려면 결혼 허용해야

그러나 교황청이 내놓은 대책들이 사제들의 성적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과거와는 다르게 남녀와 나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성적 욕망을 성취하는 시대를 보고 자란 사제들이 독신서약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수도원 문화가 유행하고 엄격한 규율이 작동하던 중세시대조차 교황을 비롯한 고위사제들이 성적 스캔들에 휩싸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교황청이 내놓은 대책들은 미봉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슈테른>지는 독일의 가톨릭 신자 중 겨우 17%만이 교회를 권위 있는 기관으로 신뢰하고 있으며 20%에 가까운 신자들은 사제들의 성추행문제로 교회를 떠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부 비판자들은 사제들의 변태적 성욕을 비판하면서 성을 일상적인 생활로 통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독신 생활로 이끌린다는 매우 과격한 분석까지 하고 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가 현재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미 교황청은 여성사제와 동성애를 인정하는 성공회 흐름에 반발하는 성공회 보수파 사제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성공회는 사제들의 결혼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톨릭교회가 성공회 사제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사제들의 결혼을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 세계 교회 중에 사제들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는 교회는 개신교회와 성공회, 동방정교회다. 동방정교회의 경우는 기혼 또는 독신성직자를 모두 허용하고 있으나 주교 같은 고위급 인사들은 독신사제 중에서 선발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가톨릭교회가 결혼을 전면적으로 허용함으로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동방정교회 모델을 수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독신' 무기로 '특권' 누려온 가톨릭

한편에서는 결혼으로 사제들의 성범죄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반 기혼 남성들 중에도 아동성추행이나 자녀들까지 성폭행하는 성도착자들이 많고 또한 결혼한 다른 종파사제들도 유사한 사례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결혼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와 대다수 사제들은 독신을 무기로 자신들이 일반 신도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신주의라는 굴레에 갇혀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가부장적 교회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랑의 성사>라는 교황권고를 통해 드러난다. 교황은 권고문에서 "사제독신제는 소중한 보화"로서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도 '동정의 상태'에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시기까지 당신 사명을 실천하셨다는 사실은 라틴 교회의 이 전통이 지니는 의미를 이해하는 확실한 준거점이 된다"면서, "사제 독신제를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라틴전통에서 "독신 생활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생활 방식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특별한 방식"이기에 "사제 독신제가 여전히 의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권고는 사제들이 독신을 통해 구세주인 예수의 권위를 이어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교회 내에 사제 독신주의가 특권이 되고 사제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강제되면서 오랫동안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들이 사제들에게 농락당해도 이를 호소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었다. 엄격한 가톨릭 국가 중에 하나인 아일랜드의 경우 한 성직자는 100여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를 시인했고 또 다른 성직자는 지난 25년여 동안 보름에 한 번꼴로 아동을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아일랜드의 피해자들은 가톨릭교회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성추문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은폐해 왔다고 비판했다. 

베네딕토 16세 치하에서 변화 가능할까

종교전문가들은 가톨릭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특권에 안주하지 말고 사제들의 결혼을 허용하면서 일반 신자들중에서 신앙과 도덕이 검증된 사람들을 사제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사제들의 수가 줄고 있는 미국 등 서구 가톨릭교회 지도자 일부도 사제의 결혼을 인정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일반 신자사이에 이를 지지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특권과 비밀주의로 인해 교회내 범죄는 증가하게 되고 이번 아동성추행의 사례처럼 결국 언젠가 폭로되면서 더 큰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지적에도 극보수 신학과 신앙을 지향하고 있는 현 베네딕토 16세 치하에서는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의 전례와 성경을 현지 언어로 하는 토착화노력이 진행되어 왔으나 교황은 취임직후 다시 구시대 언어인 라틴어로 환원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미 토착화된 교회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또한 이슬람교와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고 콘돔이 에이즈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비상식적인 발언을 하면서 스스로 종교지도자로서 권위를 추락시켰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면전에서 강력하게 비판하고 신자유주의를 경계하는 등 개방적인 모습으로 가톨릭교회를 통합시킨 것에 비교해 현 교황은 오히려 교회를 분열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시대의 낙오자가 되어버린 베네딕토 16세가 그나마 교황으로서 업적과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제들의 결혼을 비롯해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여성사제 문제를 전향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그가 83세라는 고령인 것을 감안하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교황청의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백찬홍 (유영모, 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재단법인 씨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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