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신학연구소 박문수 소장

지난 2월 27일 (사)우리신학연구소(이하 우신연) 총회에서 새 소장에 박문수 박사가 선출됐다. 우신연 초기부터 동반해 왔고, 30주년을 맞는 해에 소장을 맡은 박문수 박사에게 우신연의 오늘과 앞으로 만들어 갈 길을 물었다.

평신도가 주체로 운영하는 우리신학연구소의 정체성 자체가 큰 의미였다는 박문수 소장은 “복음 정신에 입각해 늘 약자들 편에 서려 노력했고, 시대의 징표를 먼저 읽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려 했던 활동을 아주 잘했다고 볼 수는 없어도,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고 그간의 활동을 평가했다.

또 지난 30년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차별과 빈부격차, 욕망의 극대화였으며, 이는 교회 안에서도 존재해 왔다면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끊임없이 바뀌니 복음의 가치를 항상 그 시대의 언어로 설명하고 그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실천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쇄신과 적응은 모든 시대에 필요하며 우신연도 이 두 가지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30년에 대해 그는 지난 작업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비전 구상이 1차 과제라면서, “이와 같은 비중으로 해야 할 것은 교회, 종교가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을 동시대인들에게 설득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기도와 연구 방향, 과제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신한열 수사, 이미영 전 소장, 박문수 소장.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왼쪽부터) 신한열 수사, 이미영 전 소장, 박문수 소장.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아래는 박문수 소장(이하 박문수)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이하 지금여기)가 서면으로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지금여기> : 지난 30년을 함께 해 온 동료로 이번에 처음 소장을 맡게 된 소감이 어떠신지 여쭙습니다.

박문수 :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총회를 거치고 나서 부담감이 커졌습니다. 10여 년 가까이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이사를 맡아 왔지만 연구소 운영에 직접 관여한 게 아니어서 많은 것을 새로 배우고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인 듯합니다.

처음 소장 제안을 받았을 때는 창립회원(당시는 조합원)으로서 연구소가 30년을 버텨 온 것에 감사하고, 연구소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아준 회원(조합원), 후원회원, 후원자, 연구위원, 이사님들, 우리를 응원해 주었던 많은 신자분에게 무어라도 보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해 왔던 연구와 교회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소에 비어 있는 영역을 보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총회를 거치며 선임되고 나니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할 일이 아니어서 각오를 새롭게 하는 중입니다.

<지금여기> : 우신연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유일한 평신도 신학연구 모임입니다. 올해 30주년을 맞기도 했는데요. 우신연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에 비춰, 그동안 한국 교회에 어떤 의미였고,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박문수 : 운영에서 모든 일을 평신도가 맡아 하는 연구소는 우리가 유일합니다. 한님성서연구소같이 소장은 사제가 맡아도 연구원은 모두 평신도 신학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우신연이 처음 출범했을 때는 한국 교회 전체에 연구소가 드물었습니다. 더구나 저희 연구소처럼 평신도가 중심인 경우는 보편 교회 안에서 드문 사례입니다. 자랑할 만한 일이고, 이것이 연구소 정체성의 큰 측면이기도 합니다.

평신도 신학 연구소로서 평신도를 대변하는 목소리도 냈고 교회 쇄신을 위한 목소리도 꾸준히 냈습니다. 우리의 이런 목소리를 대부분 지지해 주었지만 불편해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불편해하는 분들 가운데 일부는 연구소 활동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잘되어야 한다는 충심에서 낸 소리니 후회는 없습니다. 한국 교회 현실에서 평신도 중심으로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언제든 좁은 길이니까요. 다행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발표하신 문헌들, 사목적 조치들이 저희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저희는 복음 정신에 입각해 늘 약자들 편에 서려 노력했고, 시대의 징표를 먼저 읽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려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당대 아테네 시민과 집권자들에게 ‘등에’ 역할을 했듯이 우리 연구소도 한국 교회에서 그런 역할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이 역할을 아주 잘해 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최선을 다했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신학연구소 박문수 소장.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 박문수 소장.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지금여기> : 우신연이 처음 생겨난 30년 전과 오늘의 한국 교회, 사회 상황은 어떤 면에서는 같지만 달라진 것도 있습니다. 여전히 지키면서 가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화에 발맞춰 가야 할 부분을 짚어 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박문수 : 과거엔 한 세대가 30년이었습니다. 최근에는 10년, 심지어 5년, 3년을 한 세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세상 변화가 빠르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30년 동안 교회와 사회 모두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 것에 비해 사람 마음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빈부격차도 약자에 대한 차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득권을 강화하는 구조는 오히려 더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양상이 많이 변했고 그것도 빨리 변했지만 원초적 욕망(권력, 재력, 명예)을 극대화하려는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욕망이 교회 안에서도 자라왔지요. 그래서 어디서나 약자와 한 편이 되고 스스로 약자가 되어 그들의 운명을 같이하려는 노력은 계속 연구소가 지켜가야 할 가치이자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모든 시대에 유효하다고 봅니다. 다만 시대 적응은 빨라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끊임없이 바뀌니 복음의 가치를 항상 그 시대의 언어로 설명하고, 그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실천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핵심을 ‘쇄신과 적응’이라 말하는데 이 과제는 모든 시대에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신연도 이 두 가지를 늘 염두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여기> : 신학뿐 아니라 북한학을 공부하셨고, 평화운동 단체와 여러 연구기관에서도 활동하셨는데요. 넓은 활동 경험을 반영해 우신연에서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가요?

박문수 : 새로운 시도라기보다 그동안 연구소가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연구, 하고 있으나 충분히 하지 못하는 연구를 잘해 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30년 동안의 우리 신학 작업을 성찰하고, 이에 기초해 다음 30년 동안 주력해야 할 비전을 구상하는 것이 일차 과제입니다.

그 다음이면서도 일차 과제와 같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이 시대에도 교회/종교가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을 동시대인에게 설득하는 일입니다. 급속하게 기울어가는 종교의 시대에 과연 종교는 어떤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기도하며 연구를 통해 방향과 과제를 찾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과제가 중차대하기에 이에 주력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부차적인 과제들도 도출되리라 봅니다.

<지금여기> : 이번 총회 때 보고한 2024년 사업계획에서 천주교 사회운동에 대한 연대와 지원도 포함되어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이나 연대 방향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문수 : 천주교(가톨릭) 사회운동(이하 천사운)의 지원과 연대는 연구소 정체성의 본질적 차원 가운데 하나입니다. 연구소 설립 동기 중 하나이기도 했구요. 그러니 새삼스러운 계획이나 연대 방향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 천사운이 크게 위축돼 있고 운동을 둘러싼 환경도 많이 변해 새로운 운동 방식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연구소 역할이 연구를 통해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니 현장의 요구에 더 가까이 귀를 기울이고 이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과 과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장 활동가들과 만나는 기회를 늘려 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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