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맞고, 네가 하면 틀리다?

요즘 교육계에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특권 계층을 위한 정책에 반대하고 모든 학생을 위한 보편적 정책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현 정부에서 추진한다’는 이유로 기존 입장을 번복하며 ‘윤석열표 정책,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보통합’과 ‘늘봄학교’다.

지난해 12월 8일 국회에서 통과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분리해 관리했던 유아교육과 보육을 교육부로 일원화하는 ‘유보통합’의 첫발을 내딛은, 교육계의 숙원 과제였다. 영유아가 처음 받는 교육부터 유치원, 어린이집, 공립, 사립 중 어떤 기관에 다니는지에 따라 급식, 교사, 교육 환경, 교육과정 등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교육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초등학생 대상 돌봄 정책인 ‘늘봄학교’는 이전 정부에서도 ‘온종일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법안 입법과 토론회를 진행했고, 협의체를 구성해 교육 주체별로 여러 차례 논의했었다. 맞벌이 가정 자녀의 돌봄 공백으로 인한 경력 단절, 학원 뺑뺑이 등의 개인 부담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늘봄학교(온종일 돌봄)’는 사교육비 경감과 저출생 해소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정책이다.

참고로, 유보통합과 늘봄학교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여·야 후보 모두 공통으로 내걸었던 공약이다. 유치원·어린이집이 줄줄이 폐원하고 서울의 초·중·고등학교까지 폐교하는 초저출생 시대다. 누가 당선되었어도 시급히 실시했어야 한다.

정쟁 도구가 된 늘봄학교

올해 3월부터 늘봄학교가 시작됐다. 늘봄학교는 초등학교 정규 수업시간 전인 오전 7시부터 방과 후인 저녁 8시까지 원하는 학생에게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며, 1학기엔 신청한 학교 2700개교에서, 2학기엔 전국 공립 초등학교에서 전면 시행한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신청한 초등학교의 참여율이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였다. 참여율이 낮은 교육청은 서울(6.8), 전북(17.9), 울산(19.8), 광주(20.6), 인천(22.9), 강원(24.1), 충남(28.6) 순으로 30퍼센트를 채우지 못했다. 반면 늘봄학교 참여율이 높은 5곳은 부산(100), 전남(100), 경기(73.3), 제주(48.2), 세종(47.2) 순이다. 나머지 지역은 30퍼센트대의 참여율을 보였다.

이를 두고 대통령은 2월 20일 국무회의에서 "국가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해야 할 인도적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방과 후에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모두가 내 아이를 돌본다는 생각으로 동참해야 한다. 교육부, 지자체뿐만 아니라 전 내각이 늘봄학교 안착에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덧붙여 "서울을 비롯한 일부 시·도에서 신청률이 낮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2024.2.20. <JTBC>)

일부 언론은 늘봄학교 참여율 차이를 진보 교육감 대 보수 교육감의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서울 참여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서울교사노조가 ‘초1학년 맞춤형 교육프로그램 관련 공문을 방과후부장 등 정규교사에게 접수 금지’해 달라는 공문을 서울의 초등학교에 배포했다는 기사도 보도되었다.(2024.2.27. <TV조선>)

이는 시·도의 일반 행정과 교육 행정이 엇박자를 내고 발목을 잡으니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자는 주장과, 교사와 학부모를 갈라치기 하는 전략이 동시에 깔린 위협적인 여론몰이로 보여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2018년 11월 12일 진행한 온종일 돌봄 정책토론회. (사진 출처 = 2018.11.21. 좋은교사운동 보도자료)<br>
2018년 11월 12일 진행한 온종일 돌봄 정책토론회. (사진 출처 = 2018.11.21. 좋은교사운동 보도자료)

브레이크가 아닌 견인차가 필요하다

정부와 언론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실, 교육계에서도 늘봄학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각자의 주장을 담아 발표했다. 토론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설문조사 문항은 늘봄학교의 찬반 입장에 따라 주최 기관의 의도가 담긴 내용과 표본 집단의 불균형 등이 보였고, 토론회 패널도 주최 측의 찬반 주장 쪽으로 구성원이 기울여 있었다. 2월 23일 국회에서 진행한 ‘늘봄학교, 제대로 가고 있는가’ 토론회에서 청중석에 있던 한 학부모가 자신을 초등 입학생 학부모라고 소개하면서 “토론회 내내 늘봄학교의 문제점만 들은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이전 정부부터 온종일 돌봄을 모범적으로 실시했던 사례들이 있었고, 현 정부에서도 시범 운영 기간을 가졌다. 일부 교육청과 학교들은 각자의 여건에 맞는 인력과 공간을 확보해 미리 준비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교원 단체들의 늘봄학교 반대 목소리에 묻히거나 친 정부·보수 성향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늘봄학교는 애초에 취학통지서와 함께 예비 초1 학부모들에게 돌봄 수요를 조사했으면 됐을 일이다. 그 결과에 따라 수요가 많은 학교부터 1학기에 선정하고 2학기에 전면 확대 시행하면 될 것을 수요자가 아닌 학교와 교사에게 신청 권한을 주고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질책하는 것은 책임 전가로밖에는 안 보인다.

돌봄은 개인이 아닌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진보·보수를 떠나 모든 정치인이 앞다퉈 내세웠던 공약이다. 영아부터 노인까지 평생 동안 돌봄이 필요하고,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촘촘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유독 18살 미만 아동의 돌봄만은 양육자인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있다. 불평등의 문제로 시야를 넓혀야 된다. 이를 위해 지자체의 협력 사례, 일과 육아를 병행하도록 지원하는 기업의 모범 사례 등을 찾아 확산시키고 나아가 모두의 노동 여건 개선에 힘을 모아야 한다.

학교는 학생의 성장을 위한 공간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학생이 없어 폐교되는 학교가 그 증거다. 올해 1학년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던 초등학교가 전국 157개교에 달한다.

물론 그 학교 안에서 함께 생활하며 인권친화적인 문화를 만드는 것은 학생만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주체지만 우선순위는 학생이 다니고 싶은 학교,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데에 두어야 한다.

방과 후에도 교실에서 업무를 해야 되니 학생을 학교 밖으로 나가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교사가 별도의 업무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맞다. 학교에 오래 남게 하는 것을 아동학대로 인정할 정도로 교도소 같은 학교가 아니라 수면실, 놀이터, 음악실, 댄스실, 노래방, 컴퓨터실 등이 갖춰진 ‘놀 곳’으로 바꿔야 한다.(군대도 PC방, 노래방이 있고, 올해부터 10개 이상 메뉴 중 골라 먹는 뷔페식 식사를 제공한다고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또래와 함께 부대끼며 성장하는 또 하나의 ‘사회’다. 참고로, 늘봄학교를 반대하는 이유 중에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냐는 우려도 있던데 이는 학교폭력의 범위를 몰라서 하는 우문이다. 학교폭력은 24시간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것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늘봄학교는 돌봄이 필요한 학생이면 누구나 지원한다고 한다.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 경력 단절이 된 선배 직장맘으로서 매우 환영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여전히 특수학교 방과후 돌봄은 뽑기 운에 맡겨져 있다고 한다. 장애학생 한 명이 입학해도 그 학생에 맞게 모든 시설을 보수하는 외국 학교처럼 한 명 한 명의 성장을 돕는 맞춤형 교육이 실현되는 ‘우리 학교’를 꿈꿔 본다.

이윤경

사교육 기업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다 2011년 여성단체 상근 활동가로 취업한 후 마을공동체 살리기, 차별 반대, 교육개혁 운동 등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마케터에서 활동가, 상담가, 조직가로 지나온 시간 속에 언제나 ‘진심’을 다했던 경험들이 자랑이자 자산이다. 공저로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4", "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학교, 회복을 담다", "체벌 거부 선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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