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육계에 가장 많이 거론된 주제는 ‘교권’이었다. 교권 추락, 교권 붕괴 등의 기사 제목들은 어느새 학생 인권 탓으로 연결되더니 급기야 12월 15일 충남 학생인권 조례가 폐지되기까지 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일어났던 교권 침해 사안들은 물론, 학교 폭력, 아동학대 신고, 교사 사망 사건들까지 모든 문제가 마치 학생인권 조례만 폐지되면 해결되는 것인 양 학생인권 사냥의 불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법으로 강제해야 하는 인권

처음 학생인권 조례가 만들어진 시대는 ‘오죽하면 때리지 말라고 법으로 강제했을까’ 반성해야 할 상황이었다. 사랑의 매, 엎드려뻗쳐, 운동장 몇 바퀴, 원산 폭격, 오리 걸음 등의 체벌은 20-30대도 알아들을 정도로 그리 오래전 얘기가 아니다. 서울의 ‘오장풍 교사’ 사건으로 교사의 폭력 문제가 대두됐고 청소년 인권 단체들이 2000년대부터 국회의원을 통해 학생인권법 제정을 요청했지만 당시 사회 정서상 쉽지 않았다. 이에 차선책으로 교육감 선거에 나선 후보들에게 학생인권 보장을 공약에 담을 것을 요구했고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된 뒤 2010년에 학생인권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순으로 전국 6개 지역에서 학생인권 조례가 제정되었다.

인권은 허락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동등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천부인권’이라 부른다. 그런데 ‘학생도 사람’이라는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법으로라도 강제하자 한 것이 결국 법 체계상 가장 하위 규칙인 조례로 간신히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2000년대로 후퇴하고 있다.

학생인권 조례를 반대하는 이유

학생인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10여 년 전 조례를 제정할 때 반대한 이유였던 ‘학생답지 않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에 ‘교권 침해의 주범’이라는 주장을 추가했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제반 상황들은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인권 감수성이 너무 낮아서 생긴 문제들이다. 시대가 변하고 학교 구성원들의 세대가 달라졌으며 특히 코로나19로 관계가 단절돼 상호 간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상식도 지켜지지 않는 것이 원인인데, 이에 대해 정부는 교육적 측면에서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가장 만만한 학생인권 탓으로 몰아가고 있다. 여기에 총선 대비용 진보·보수 프레임을 덧씌워 정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교육부, 서울시의회, 충남도의회 등 학생인권과 관련된 공청회나 기자회견장마다 조직적으로 등장하는 학생인권 반대 세력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작년 8월, 학생생활지도 고시를 위해 교육부가 주최한 공청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왜곡한 발제 자료가 버젓이 발표됐고1) 학생인권조례가 마치 진보 교육감의 성과물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지난 12월, 교육감 17명 중 9명만 학생인권 조례 폐지를 반대하는 성명에 동참해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지역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감의 위상을 스스로 반쪽짜리로 전락시킨 비교육적 행태다.

지난 12월 21일 서울특별시의회 앞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폐지반대집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 이윤경)

학생인권과 교권은 무관하다

지난해 10월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한 ‘지방교육자치법규에 대한 사후입법영향분석 : 학생인권조례를 중심으로’라는 보고서에서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법 인식이 미시행 지역의 학생들보다 높았다. 해마다 실시한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 결과도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미시행 지역보다 높게 나타난다.

결정적으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발생한 ‘교권침해 건수’ 교육부 통계를 보면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 조례가 있는 지역보다 교권 침해가 더 많이 일어났다. 이처럼 학생인권과 교권이 무관하다는 증거 자료가 넘쳐나도 정부는 국민의 몇 퍼센트, 교원의 몇 퍼센트 운운하며 답정너 식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학생인권 침해 구제 장치 필요

학생인권 조례가 폐지돼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례 시행 지역에서도 조례를 무시한 학칙들이 있고, 조례보다 센 힘으로 두발, 복장, 용모 등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생인권 조례의 유무가 아니라 학생이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는지 여부다. 학생인권 조례가 있는 지역에는 권리 구제 기구를 두게 되어 있는데 조례가 폐지되면 권리 구제 장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사안은 신고와 조치 규정을 대폭 강화하면서 학생이 인권 침해를 호소할 수 있는 기구는 없애겠다는 건, 대놓고 불평등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지역자치 권한을 침범하면서까지 시·도에 학생인권 조례를 대체하라고 내려보낸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 조례’ 예시안에도 학생인권 침해 구제 규정이나 기구가 없다. 국가인권위나 국민권익위처럼 학생도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학생도 국민이다. 국회의원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교권보호 4법’과 교권보호위원회의 교육지원청 이관 방침처럼 학생을 위한 법 개정과 대책 마련에도 공평해야 한다. 학생인권 침해 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아동학대 신고를 줄이는 방안이기도 하다. 현재는 교사로 인한 부당한 처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동학대 처벌법’밖에 없어서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인권 친화적 학교와 학생인권법

일부의 오해와 달리 서울 학생인권 조례에는 이미 학생의 책무 조항이 담겨 있다. "학생은 교사 및 다른 학생과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학교 교육에 협력하고 학교 규범을 존중해야 한다", "학생은 언어,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학생인권 조례는 물론 인권에 대한 교육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있다. 특히 학부모 대상 인권 교육은 거의 전무하다. 조례에 따르면 학교는 의무적으로 학생인권 교육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교육 당국은 학교 구성원 간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2021년 11월 3일 박주민 의원 대표 발의로 강민정, 강득구, 최혜영 의원 등 14명이 참여한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21대 국회에서 이 법안만 통과되면 조례를 둘러싸고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학생인권 조례 소모전을 끝낼 수 있다. 주민 발의, 폐지, 의원 발의, 대체 조례 발의 식으로 쳇바퀴 돌 듯 경기,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학생, 학부모, 교사, 시민들이 거리와 법정에서 끝이 안 보이는 싸움을 연일 계속하고 있다.

12월 16일 야당 대표가 학생인권 조례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에 잠자고 있는 법안을 통과시켜 불을 꺼야 할 국회의원들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서 싸움 구경만 하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청소년들이 말한다.

우리의 인권을 왜 어른들이 결정하냐고, 인권은 허락받는 게 아니라고, 인권을 어떻게 폐지하냐고.

1) 서울 학생인권 조례에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는다’로 명시된 차별 금지 조항을 ‘성관계를 할 수 있는 권리, 일진회를 구성할 권리, 선생님을 고발할 권리’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윤경

사교육 기업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다 2011년 여성단체 상근 활동가로 취업한 후 마을공동체 살리기, 차별 반대, 교육개혁 운동 등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마케터에서 활동가, 상담가, 조직가로 지나온 시간 속에 언제나 ‘진심’을 다했던 경험들이 자랑이자 자산이다. 공저로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4", "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학교, 회복을 담다", "체벌 거부 선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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