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사회를 보면, 사회 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고 느낀다. 직접적인 ‘내’ 문제가 아니면, 눈과 귀를 닫는 듯하다. 물론,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살기 힘든 사회’이기 때문이다. 나 살기도 바쁘고 힘드니, 다른 이, 다른 피조물의 신음까지 들을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늘 깨어 있으려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가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향기를 곳곳에 퍼지도록 해야 하며, 세상과 함께 가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이미 와 있는 하느님나라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신앙을 살아가기 위해서, ‘지킬 교리’라고도 불리는 사회교리가 필수다. 나는 늘 한국 교회의 신앙 전반이 믿을 교리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느껴 왔고, 그렇기에 세상 속의 교회, 세상과 함께 가는 교회인지, 그것을 신자들이 충분히 느끼고 개개인의 삶에서 실천하는지 의문을 품어 왔다. 그리고 이 의문을 더욱 크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4호선 지하철 탑승 이동권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삼각지역에서 혜화역으로 가는 시위 여정 동안, 나는 두 개의 묵주반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는 시위에 함께하는 활동가분의 손가락에 끼워 있었고, 다른 한 묵주반지는 시위에 철저하게 무관심한 지하철 승객의 손가락에 끼워 있었다. 욕설보다 무관심이 더 아프게 다가왔던 시위 속에서,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너무나도 다른 태도를 보며 저들에게 신앙과 교회는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신앙과 교회가 저들의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해졌다. 특히 무관심했던 그분을 보며, 교회가 좀 더 삶과 사회와 맞닿아 있었다면, 최소한 호기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상반된 의미로 내가 많은 것을 느꼈던 공동체도 있다. 제주 서귀포시의 강정마을에서 며칠 동안 마을의 평화 활동에 함께했다. 강정에 갔던 첫날,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 관련 다큐를 시청했다. 마을의 오랜 주민으로 자신의 일터이자 삶터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국내외 평화 활동가들의 인터뷰가 담긴 다큐였다. 다큐에서 만났던 강정마을 주민분의 한마디는, 아직도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지만 우리가 깨지지 않는 계란이 되면 되잖아요.” 깨지지 않는 계란이 되면 된다는 말이 나를 뒤흔들었고, 깨지지 않는 계란으로 삶을 살아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는 절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강정마을에 머무는 내내, 그렇다면 어떻게 그 삶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는 마을 거리 천막 미사에서 그 해답을 얻었다.

강정 거리 천막 미사 현장. ⓒ홍예진
강정 거리 천막 미사 현장. ⓒ홍예진

처음 천막에서 드린 미사의 느낌은 아직도 내 뇌리에 깊이 새겨 있다. 해군기지 옛 정문 바로 건너편, 차가 지나다니는 아스팔트 도로와 맑은 물이 흐르는 강정천 사이에 세운 미사 천막. 늘 미사를 드리던 성당 성전과는 모든 게 다른 환경 속에서, 평화가 짓밟히고 피조물들이 짓밟힌 그 현장에서 평화를 위한 미사를 드리는 것은 정말 특별했다. 여전히 흐르고 있는 강정천의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드렸던 미사. 하느님의 함께하심,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의 함께하심을 강정천의 물소리, 새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고, 미사에서 받아 모신 성체에서 그 어느 때보다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덥거나 춥거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함께하는 신부님, 공소 회장님, 주민분들, 평화 활동가들, 휴가차 제주를 찾았다가 미사에 오신 수도자, 휴가자분들을 보며, 한 사람이 깨지지 않는 계란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연대와 환영의 공동체, 그리고 하느님께서 함께하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그런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연대와 환영의 공동체는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가는 교회의 모습이었다. 강정에서 거리 미사의 큰 힘을 느낀 뒤로, 지금도 현장이나 거리에서 하는 미사에 최대한 참여하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느끼고, 세상과 함께하고 연대하는 교회를 느끼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요한 정신과 가르침은 세상 안에서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제시한 것이다. 성경과 교회 전승에 근거하는 사회교리는 교회의 사명과 역할 수행을 위해 필수적이다. 사회교리는 복음을 바탕으로 각 시대가 실현해야 할 가치를 세우고, 인간 존엄과 인권을 옹호하며, 공동선을 실현함으로써 하느님나라를 건설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신학과 가톨릭 사회교리' 수업 시간에 교수님은 “사회교리의 중요 원리 중 하나인 연대성의 정점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과 연대하고자 하는 주님의 사랑으로 드러난다”고 하셨다. 믿을 교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은 지킬 교리인 연대성의 정점이 되어, 결국 믿는다는 것은 지키고 실천하는 것 또한 수반한다. 믿을 교리가 중심인 신앙생활을 하는 현 교회의 많은 이가, 사회교리를 통해 좀 더 각자의 삶의 자리, 사회의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고통받는 모든 피조물을 보살피고, 끌어안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이 모여 조금 더 환영과 연대의 교회 공동체로, 하느님이 말하시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평화의 공동체로 향하기를 바란다.

홍예진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연대'인 사람으로, 모든 소외받고 고통받는 피조물들과 연대하며 살아가려 노력 중이다.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으며, 어쩌다 보니 신학과 신앙에 진심이 된 20대 가톨릭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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