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규 칼럼]

대구가 변하고 있다. 더 희망적인 것은 가톨릭 대구대교구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10일 4대강 개발사업이 진행 중인 낙동강 달성보 현장 강변에서 열린 ‘4대강 사업 저지 대구생명평화미사’에 참석하러 낙동강변로를 달려 강둑 위를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 수백 명의 사제들과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이 함께 하고 있는 감동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어찌 예상이나 했을까. 이 대구에서, 그것도 대구대교구에서 이런 시국미사가 봉헌되고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다니. 비록 짓궂은 날씨는 하늘을 잿빛으로 만들었지만 내 마음은 감사드릴 만큼 희망으로 벅차 올랐다.

지난 해 봄 대구대학교로 오면서 고향 대구로 내려왔을 때, 대구는 내게 어느 면으로 낯설기만 했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있는 고향으로 근 40년만에 귀향한 것이었지만, 독특한 대구만의 정서 앞에 한동안 적응하기 힘겨웠다.

하지만 뜻있는 이들을 하나 둘 만나고 좋은 모임에 참석하면서 희망감이 높아져 감을 느꼈다. 특히 주고받는 눈길 속에서 타오르는 아름답고도 은밀한 갈망을 읽게 되면서 곧 기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좋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과연 기적은 일어났다. 첫 기적은 지난 해 가을 마침 내가 있는 대구대학교 총장에 홍덕률 교수가 선출된 사건이었다. 진보적 학자이자 타지역 출신의 해직교수가 학연과 지연을 중시하는 대구지역의 종합대학교 총장으로 선출된 사건을 다들 ‘대구의 기적’이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그렇게 하여 수십 년 죽어있었던 대구의 혼이 깨어나는 것일까.

사실 대구지역은 원래 ‘진보의 메카’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미군정 시기에 이르기까지 대구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좌익운동이 왕성하던 곳이었다. 한국아나키스트학회 창립에 동참하면서 접하게 된 한국아나키스트사를 살펴봐도 아나키스트 1세대는 대부분 대구지역 출신이었고,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도 대구경북지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구는 학문과 문화적 전통에 있어서도 뿌리 깊은 지성의 도시였다. 이상화, 이육사 같은 지사적 민족 시인들을 비롯하여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일찍이 실천한 서상돈(아오스딩) 등과 같은 걸출한 인물은 그런 바탕에서 나왔으며 이것이 일제시대 때부터 문무 양면으로 자존심이 센 저항의 도시로 만들었다.

그런 대구가 이제와 같은 극우지역으로 고착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나는 1946년 10월 1일 대구시청 앞에서 미군정에게 경제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로 시작되어 친일파 척결과 인민자치를 요구하며 경북 전체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던 대구항쟁의 좌절이었다고 본다. 동학혁명과 3·1운동과 더불어 현대사의 3대 민중항쟁이었던 대구항쟁이 미군정의 무자비한 진압과 우익집단에 의한 좌파세력 소탕전으로 그 기세가 꺾이고 지하로 숨어들면서 대구의 기백과 불굴의 혼도 움츠려들어 깊고 오랜 동면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대구 출신 극우 군벌세력들이 3공화국 이후 연이어 정권을 잡게 되면서 대구는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정신마저 혼탁해진다. 한쪽 날개를 완전히 잃어 극도로 편향되어버린 대구는 지극히 배타적인 지역색과 몰가치적인 권력지향적 성격만 드러내면서, MB의 4대강 개발사업마저 지역색에 파묻혀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의식불명의 뇌사상태에 빠져든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번에 대구 사제들이 봉헌한 시국미사가 더욱 반가운 것은 이 때문이다.

얼마 전 대구사회연구소 ‘대사연WAY’ 모임에 참석해 의견을 피력했지만 대구의 정신을 되살리는 길의 핵심은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대구항쟁의 은폐된 실체적 진실을 바르게 밝혀 제 자리에 세우는 것이다. 원죄와 같은 그 상처를 밝은 곳으로 드러내 치유시키지 않고 무작정 덮어놓고서야 대구의 혼이 다시 깨어날 리 만무하다. 내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고향사람들의 눈망울 속에서 발견했던 은밀한 갈망의 그 불씨를 되살려 왜곡된 지역정서와 역사의식을 바로 세워 대구의 정기와 생명력을 회복토록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기적은 아마 그것이 되리라.

이제 6·2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다시 기적을 기대해도 될까. 비록 야권의 지리멸렬로 여야대결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암담한 지역현실이지만, 승패여부를 떠나 대구지역에 미래에 희망을 담보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싶다.

내가 부산에 살 때 “부산이 일어나야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사실로도 부마항쟁과 6월항쟁을 비롯하여 부산은 민주화 여정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던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것은 한 평생 나를 이끄는 원초적 체험이다.

이제 그 말을 ‘대구가 일어나야 대한민국이 바뀐다.’로 바꿔도 무방할까. 지극히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으로 느껴지는 고담(Gotham) 대구가 고결한 기백이 살아 숨 쉬는 고담(枯淡) 대구로 되살아나기를! 희망은 그렇게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정중규 (장애인운동가,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다음카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지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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