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30일부터 12월 13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이하 COP28)가 열렸다. 파리협약 이후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앞에서 이제는 화석연료 퇴출을 분명히 하고 기후위기 당사자국을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 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에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를 발표한 데 이어, COP28에서 연설하기로 하셨다. 이에 맞춰 '찬미받으소서 운동'은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를 주제로 한 웨비나에 이어 COP28 의장단에게 보내는 청원서 서명을 받고, COP28에서도 세션을 준비하였다. 가톨릭기후행동은 ‘찬미받으소서 운동’의 한국 지부로 이 행동에 동참하여, 4회에 걸친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톺아보기와 청원서 서명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참여를 독려하였다. 나는 주변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교회 가장 앞에 서서 가시는 교황님이 혼자 가시지 않도록, 우리가 기도와 행동으로 힘을 모으자고.

COP28이 열리기 직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건강상의 이유로 연설을 취소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교황님의 건강이 매우 걱정되는 한편, 이분이 COP28에서 연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어딘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안도감’이라니! 대체 무엇을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지 당황스러웠다. COP28이 진행되면서 한국 정부의 기승전핵 홍보와 산유국들의 화석연료 퇴출 미루기 로비가 부각되고, 기후위기 당사국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세계의 부유한 기업가들이 개인 전용기를 타고 총회에 참석한다는 것이 허탈했다. 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총회란 말인가. 결국 최종합의문에 ‘화석연료 퇴출’ 대신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이라는 말이 들어갔다. ‘기후 손실과 피해기금’은 공식 출범했지만 극히 일부만 모아졌다. COP28의 결과에 많은 사람이 실망하는 가운데, 나는 나의 ‘안도감’의 정체를 알았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욕당하는 자리에 서는 것을 보지 않게 된 것’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2023년 11월 30일부터 12월 13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사진 출처 = COP28 홈페이지)<br>
2023년 11월 30일부터 12월 13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사진 출처 = COP28 홈페이지)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는 결코 감정적인 글이 아니지만, 교황님의 안타까움과 다급함,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세계 정상들에게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는 호소가 들린다. 그 마음으로 COP28에서 연설한다고 하셨을 것이다. 그가 발신하는 메시지에 모두가 ‘아멘!’ 하고 응답하고 동참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하게 말해서 무심하고 비판적이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권력자와 부유층, 화석연료 산업계의 거물들 앞에 서는 교황이 결코 영광스럽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굳이 그 자리에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바이에 가서 세계 최상위 기득권자들 앞에 서시겠다는 교황님의 모습은 예루살렘에 가서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 앞에 서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예의 바르지만 속으로는 절대 교황님의 호소를 듣지 않을 완고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다. 대사제의 뜰에게 모욕받는 예수님과 COP28의 교황님을 생각하며 나는 왜 베드로가 예수님이 수난과 부활을 처음 예고하셨을 때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저편엔, 비단 예수님과 교황님이 모욕받고 수난받는 것에 대한 염려뿐 아니라 그를 따르는 나 자신이 받을 상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의 영광을, 즉 멋지고 당당한 모습, 진리를 선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 그의 모습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 길을 가는 내가 받는 모욕이자 상처가 되니까. 그만큼 나는 자신이 없고 나약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활습관을 바꾸려고 하고, 주변을 변화시키고, 거리에서 외치고, 동료를 만들려고 용기를 내지만, 그러나 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으로 포장된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테두리’이자 ‘내가 모욕받지 않을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어쩌다 돌아오는 냉대와 반박에 쉽게 움츠러든다.

겟사미나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 뒤에 체포당한 예수. (이미지 출처 = Pixabay)
겟사미나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 뒤에 체포당한 예수. (이미지 출처 = Pixabay)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이불 속에서 혼자 울었다. 예수님한테도 미안하고 교황님한테도 미안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에게도 미안해서 울었다. 아이고, 주님, 제가 입으로만 기도하고 입으로만 움직였네요.

나는 이전에도 수없이 많이 넘어졌지만, 이번에도 또 넘어졌다. 그리고 수없이 많이 넘어진 사람이 잘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지 않고 앞으로 꼭 안고서, 한 발 또 간다. 다시 넘어질 걸 알면서도 일어나서 꾸역꾸역 또 나아간다. 희망을 가지고. 그 희망은 다음과 같다.

COP28은 분명 ‘화석연료 퇴출’ 대신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이라는 애매한 합의를 끌어냈지만, 그럼에도 기후위기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었다. 거의 30년 동안 회의를 거듭한 끝에 말이다. 개인 전용기를 타고 온 사람들만 보이는 것 같아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국제 종교계는 화석연료 산업에 직접 대처하기 위한 ‘화석연료 확산 금지조약(FFNPT)’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개인, 단체 및 기관, 도시, 국가가 이 조약에 서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COP28에서 콜롬비아가 이 조약에 함께하기로 했다. 콜롬비아는 이 조약에 비준한 첫 번째 라틴아메리카 국가이자 화석연료 생산국이다. 우리는 아주 조금씩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때로 더디고, 앞이 캄캄해서 좌절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작은 발자국은 분명 길을 내고 있다. 나는 이 길이 결코 폭신폭신한 꽃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두려울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우리의 예수님이 그 길을 가셨고, 오늘의 교황님이 우리와 함께 이 길을 가자고 편지를 보내신다. 이번 사순시기는 화석 연료 금식을 시작하는 시간으로 한 발 더 나아가자.

Laudato Si!(찬미받으소서!)

오현화

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 마을 활동가, 세 아이 엄마.

매일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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