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정평위 사폐소위, 2023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례 세미나

엄벌주의와 중형주의에 따른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 괜찮을까?

법무부 입법예고에 따라 사형제 폐지 없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을 위한 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개정법률안은 “현행법상 사형제와 별도로, 형법 제42조 (징역 또는 금고의 기간 등) 제2항에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두고, 조문을 신설해 법관이 무기형 선고 시, 가석방 허용 여부를 함께 선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명분은 “사형 미집행으로 인한 공백과 가석방 가능성에 따른 국민 불안을 막겠다는 것이며, 미국이 이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14일, 이 법률개정안 내용과 발의 과정을 살피고, 형법상 문제는 없는지, 그간의 형법 연구 내용에 따라 과연 실효성이 있는 법안인지 살피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례 세미나’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박용진, 박주민, 이탄희 의원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전주교구장)는 개회사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은 그동안 사형제도 폐지 뒤 대체 제도로 고려됐었지만 큰 우려가 있는 제도로 지적돼 깊은 논의의 필요성 또한 제기됐었다면서, “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해 범죄의 근본 원인을 찾아 줄이는 노력 없이 중형을 부과하는 것으로는 우리가 바라는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증가하는 이상 동기 범죄를 풀 실마리는 강성 형벌이 아닌 이 사회의 공고한 구조적 불평등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입법예고된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발표한 김대근 연구위원(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현재 발의된 법률개정안은 “죄형법정주의와 충돌하며 헌법과 권력분립원칙에 반한다는 점, 가석방 제도의 취지와 충돌한다는 점”을 들어 문제점을 짚었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11월 14일, 사형제도 폐지 없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두고 토론회를 마련했다. ⓒ정현진 기자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11월 14일, 사형제도 폐지 없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두고 토론회를 마련했다. ⓒ정현진 기자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가장 큰 문제, “효과성”이 없다는 것
현재 무기형이나 상대적 종신형, 가석방 의무 아니다

김대근 연구위원은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갖는 문제점 외에 입법 형식 자체에 문제점이 있다면서, “형법의 종류를 규정하는 형법 제41조를 우회하면서, 선고 시 법관이 가석방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방식으로 ‘형벌처럼’ 운용하겠다는 것은 법관에게 판단의 부담을 넘기는 동시에 법 해석이 아닌 ‘입법행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죄형법정주의 이념에 따라 범죄와 형벌은 국회의 고유한 권한이며, 어느 범죄에 어떤 형벌로 처벌할지 미리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현재 사형을 유지하면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제안하는 법률 개정안은 어떤 범죄에 이 형벌을 내릴지 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석방 제도’는 형법상 “징역이나 금고의 집행 중인 사람의 행태가 양호하고 뉘우침이 뚜렷한 때에, 무기형은 20년, 유기형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난 뒤 행정처분으로 가석방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같은 가석방 제도는 수형자의 사회 복귀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수형자가 사회복귀를 위해 자발적이고 적극적 노력을 촉진하는 측면, 그리고 정기형 제도의 결함을 보충해 수용자의 개선 가능성을 고려하고, 형 집행의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목적을 갖는다.

김 연구위원은 “따라서 가석방 판단 대상은 형 중에 있는 기결수에 대한 것이지, 미결수의 판결 단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며, “가석방이 가능하다는 판단은 형 집행 과정에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판결 당시 법관이 미리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사형 대체 형벌로 논의되는 종신형과 무기형(무기징역)과 그 차이, 그리고 문제점 등을 설명했다.

먼저 종신형은 학술용어로 ‘절대적 종신형’과 ‘상대적 종신형’으로 나뉜다. 절대적 종신형은 살아 있는 동안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없으며, 상대적 종신형은 가석방 등을 통해 사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무기형’은 일정 기간 형이 집행된 뒤에 가석방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상대적 종신형과 유사하지만, 무기형이 일정한 기간과 요건에 따라 가석방을 ‘전제’한 것에 비해, 상대적 종신형은 ‘원칙적으로’ 일생을 복역하되, 예외적 가석방이 허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별할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이 세 형벌이 사형제 대안으로서 갖는 각각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우선 ‘절대적 종신형’의 주요 비판 지점은 수형자를 사회적, 심리적으로 황폐화할 수 있고, 사회 공동체로부터 영원히 단절시킴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 형벌의 목적인 범죄자의 재사회화 차원에서도 비판받는다.

‘상대적 종신형’은 최저 복역 기간 20년 이상 복역하면 가석방이 ‘가능성’이 있어, 20년 이상 복역하면 가석방의 대상이 되는 무기형과 절대적 종신형의 중간 지점에 있다. 따라서 사형의 대체형으로 미흡한 무기형, 인간 존엄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형벌 목적에 반하는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현재로서는 사형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김대근 연구위원은 나아가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가장 큰 문제는 “효과성”이 없다는 것이라며, 사형제 역시 그 효과를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 국내외 학계의 통설이라며, 생명을 빼앗거나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영구적 격리 등 중형이 결코 범죄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근거로 든, 미국의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 역시, “엄벌주의와 중형주의로 일관된 형사사법 체계를 운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미국의 강력범죄는 끊이지 않고,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무기형이나 상대적 종신형의 경우, 가석방이 의무가 아니며, 수형자가 교화 불가능하고 재범 위험이 높다면 사회적으로 영구 격리를 할 필요가 있고, 이 경우에는 가석방을 불허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사형제와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대안을 논의하는 데 있어, 두 가지 가능한 입법으로 “현행 우리 법률상의 무기징역형이나 최저 복역 기간을 두고 가석방을 심사하게 하는 무기징역형”을 제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가석방 없는 무기형 비판에 대해 “가해자의 인권보다 피해자와 유족의 인권을 먼저 생각할 때”라고 반박한 것은 “전형적 허수아비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그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폐해와 부작용, 무용성과 불필요함을 지적하는 데 대해 한 장관은 가해자 인권과 피해자 인권의 대립이라는 틀을 씌우고, “가해자 인권만 옹호한다”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공격한다면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사회를 지켜낼 수 없다. 엄벌주의와 중형주의는 수형자를 제물 삼아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2023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례 세미나' 참가자들. ⓒ정현진 기자<br>
'2023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례 세미나' 참가자들. ⓒ정현진 기자

엄형과 중벌로 강력범죄 막는다는 것은 허망한 신기루
입법 과정의 오류와 무기형에 대한 몰이해가 바탕

이어진 발표에서 ‘사형제 폐지 없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검토한 이덕인 교수(부산과학기술대학교)는 “종신형 도입은 사형제 폐지를 동반해야 하며, 종신형의 실제 도입이 인간성을 파괴하거나 오히려 사회복귀를 어렵게 하는 비인간적 처우가 아니라는 인식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그러므로 종신형 창설을 서두르기 전 현행 무기형 제도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심도 있는 논의를 토대로 제기되는 다양한 비판점을 충분히 수렴, 그 결과가 요청하는 바를 먼저 수정, 개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형을 전면 폐지한 유럽평의회 국가들은 대부분 대체 형벌로서의 종신형에 최저 구금 기간을 두고 있고,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가석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유럽 국가들은 흉악범이라도 그들이 필연적으로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자유형 제도를 설계해 실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대조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이덕인 교수는 이어 현행 무기형 제도의 ‘가석방’에 대해 사회적 오해가 있다면서, “무기형 수형자가 일정 기간 복역을 마치면 모두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거나 무기형 수형자가 많이 가석방된다는 정보, 가석방 뒤 재범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등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입법 논의에서 중대한 오류가 있으며, 이는 “형의 종류에 대한 개정 누락, 무기형 제도 전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종신형’은 현행 형벌 제도에 새로운 종류의 형벌이 추가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정부 입법이든 의원 입법이든 형의 종류에 대한 검토를 먼저 하고 개별 조문의 신설을 고려해야 한다며, “그러나 이들 법안은 이에 대한 개정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종신형’을 위한 법무부 개정안은 “피고사건에 대해 무기형을 선고할 때는 가석방이 허용되는지를 함께 선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무기형 선고와 가석방’이라는 표제 아래 신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서용교 의원과 조정훈 의원 개정안은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의 판결을 선고하는 경우 형법 제51조 각 호의 양형 조건을 참작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의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둔다.

이에 대해 이덕인 교수는 “형의 종류로서 징역과 금고는 형기의 유, 무를 막론하고 가석방을 허용하는 자유형을 의미한다”며, “별도로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가석방이 허용되는 무기형과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으로 이원화하는 것은 형벌론에서 존재하는 무기형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오류”라고 지적했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국제적 권고 수준에도 미달한다.

국제연합은 18살 미만의 절대적 종신형을 금지하며, 국제형사법원은 전쟁범죄나 인류에 반하는 범죄, 집단살해를 제외한 범죄에 대해서는 절대적 종신형을 금지한다. 또 2021년 열린 제14차 유엔 범죄방지 형사사법회의는 회원국의 개별 종신형제도에 참고할 12가지 기준을 중요 권고사항으로 제시했다. 내용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폐지, 절대적 종신형 폐지를 권고하고 있으며, 종신형 형기의 하한이 지나치게 장기적인 경우도 안 된다” 등을 담고 있다.

이 교수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인간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국제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다면서, “현재 도입하려는 가석방 불허의 무기형에 대해 국제적 기준의 최소한을 준수하는지 근본적으로 검토하지 않았으며, 관련 내용이 법안에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덕인 교수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영구히 격리해야 할 범죄자가 있고, 연쇄살인을 하고 수감된 상태에서 전혀 반성하지 않는 자들이 10-20년 뒤에 나와 다시 활보하는 법치 국가는 전 세계에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면서, “법률가로서 그의 인식이 그렇다면 이는 분명 왜곡되거나 오도된 형벌관에 근거한 위험한 발상이다. 그가 말하는 방식대로 우리의 형벌 제도가 그렇게 가볍거나 관대하게 흘러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절대적 종신형’, ‘가석방 불허의 종신형’,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 등은 명칭과 상관 없이 기간을 설정하지 않고 수형자가 종신토록 복역할 것을 강제하는 자유형은 “구금된 상태의 사형”이며, 이는 사형을 법정형으로 둔 상태에서 그보다 더 엄혹한 형벌을 창설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종신형이라는 형벌을 도입하기 위해 진행됐던 입법적 논의의 배경이나 무기형 제도의 실황, 현행 제도에 대한 오해의 문제들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상태. 입법 추진 주체의 충분한 논의와 의견 수렴이 생략된 것을 우려하면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섣부른 형벌의 도입으로 미봉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행되고 있는 무기형에 대한 전면적 검토 과정과 보완책 강구”라고 강조했다.

이덕인 교수는 “엄형의 관철과 중벌 부과만으로 강력범죄를 유효하게 사전 예방하거나 사후 차단할 수 있다는 허망한 신기루를 뿌리는 이들은 각성해야 한다”며, “극단의 형벌을 동원해 사화를 통제하고자 했던 근대의 형사법령조차, 종신형 수형자의 가석방을 허용하려 했던 의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현재에도 유효한 질문과 성찰의 과제를 남기고 있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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