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로사리아 맘 집 반찬’ 이야기

서울 노량진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본부. 토요일 아침부터 반찬을 만드는 봉사자들과 수도자들의 손이 바쁘다. 나눔을 위한 반찬 준비가 한 차례 끝나면, 이들을 위한 점심 밥상에 웃음과 수다가 더해진다. 다음을 기약하며 봉사자들이 떠나면 반찬을 가지러 오는 청년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로사리아 맘 집 반찬’.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2020년 7월부터 시작한 청년들을 위한 반찬 나눔이다. 공시생들이 많다는 지역 특수성이 있지만 이 지역에 공시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고향을 떠나 미래를 준비하고 독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있다.

이름도 엄마 마음을 담은 집 반찬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공간 역시 일반 주택을 개조해 어떤 기관이나 단체라는 느낌이 아니라 친한 지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의 취재 결심이 늦어지고 늦어져 작정하고 찾은 날, 들어서는 마당부터 들리는 것은 음식 준비를 마친 봉사자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였다. 이날의 봉사팀은 도곡동 성당 신자들. 반찬 나눔을 시작할 때 노동사목위원장이었던 이주형 신부와 인연이 닿았고, “와서 청년들 응원 좀 해 주세요”라는 말에 나선 지 3년째다.

같은 본당 신자들은 그렇게 모여들었다. 5-6명은 돌아가는 봉사 순번에 따라 자신들의 몫을 채웠다. 규모가 큰 것은 아니라 한 사람 빠져도 큰 무리 없을 것 같은데도, 한 봉사자는 “여기 와야 하는데, 아이를 볼 사람이 없으면 급하게 친정어머니 불러다 놓고 올 때도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너도나도 그간의 사연을 말했지만, 결론은 이 봉사가 즐거웠고, 덕분에 함께할 수 있으니 기쁨이라는 웃음 가득한 고백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 할 생각은 아니었다면서도, 해 보니 정말 즐거웠다는 이들은 봉사 덕분에 오히려 받은 것이 많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다음에 봐요”라는 인사를 남기며 봉사자들이 떠난 자리에 하나둘 청년들이 들어섰다. 미리 신청한 이들이 자신의 이름에 표시하고, 가져온 반찬 통에 반찬을 담는 동안,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별도로 준비한 간식을 수줍게 챙기기도 한다.

이날 봉사자 가운데 생일을 맞은 동료를 위한 조촐한 파티. 이곳은 청년들뿐 아니라 봉사자들에게도 환대와 나눔 공간이기도 했다. ⓒ정현진 기자
이날 봉사자 가운데 생일을 맞은 동료를 위한 조촐한 파티. 이곳은 청년들뿐 아니라 봉사자들에게도 환대와 나눔 공간이기도 했다. ⓒ정현진 기자

당연히 이곳에 오는 청년들이 모두 신자는 아니다. 하지만 서로 오래 얼굴을 보고 지낸 청년들은 동네 마실 온 이들처럼 반가운 얼굴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사실 반찬보다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끌린다는 이들과 시나브로 수다가 시작됐다.

노량진에서 공시 준비를 하고 비교적 빠르게 목적을 달성했지만, 막상 가 보니 자신의 자리가 아니었다는 청년 정미진 씨(가명)와 특수학교 교사로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노량진에 살고 있다는 세실리아 씨.

“공부하면서 먹는 것을 챙기는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부담스럽고 매일 사 먹을 수도 없으니까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그런데 반찬 때문이라기보다는 정말 감사하지만, 타지에서 와 혼자 사니까 나를 알아봐 주고 이렇게 얘기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더 도움이 돼요. 그게 좋아서 오는 것 같아요.”(정미진 씨)

“처음엔 새로운 먹거리의 세계를 발견해서 그 재미를 느꼈다면, 요즘에는 여기 수녀님이랑 관계가 형성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쩌면 저만 아는 유대감이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덜어내고 가는 안정된 공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와요. 그냥 인사만 해도 마음이 괜찮아지는 느낌이에요.”(세실리아 씨)

타지에서 혹은 집을 떠나 홀로 생활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 바쁜 삶에 ‘로사리아 맘 집 반찬’ 그리고 본부 공간은 이들에게 그야말로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 됐다. “환대받는다는 느낌”을 알 것 같다는 이들은 마음을 위로받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것, 단지 이름을 기억하고 알아봐 준다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정미진 씨는 공무원이라는 목적을 이뤘지만 고민 끝에 그만두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많은 이가 도전하고 준비하는 것을 이뤘는데 어떻게 그만둘 수 있느냐는 흔하고 쉬운 질문을 할 수 있지만, 안정된 직장이 자신을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필 코로나19로 지원 업무가 폭증한 시기에 일을 시작했지만, 단순히 일이 많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정미진 씨는 효율이나 합리와 거리가 먼 상황들이 개선되기 어렵고, 승진이나 다른 보직을 맡는 것으로 극복할 수도 없다는 구조적 모순을 겪게 됐다고 말했다. 업무 외의 상황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되고, 모르는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일들은 불행하게도 목숨을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일반 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는 세실리아 씨는 특수교사와 특수학교가 너무 부족해, 생각과 의지만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가르칠 수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특수반 학생 중 공격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일단은 특수교사가 아이를 맡아서 생활 태도를 지도하면서 수업을 듣고 생활하도록 했으면 좋겠는데, 교육 시스템은 그게 아니에요. 수업 6시간 중 4시간은 무조건 (특수학급으로) 올려보내라는 식이에요. 거기에 학부모도 동의하면 특수교사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돼요.”

그는 특수반이나 특수학교로 분리하는 것보다 통합 교육을 하면서 개별로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좋지만, 그러기에는 교사 수가 너무 부족하고, 그런 현실에 대해 학교도, 교육부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로사리아 맘 집 반찬’ 식단과 함께 운영하는 프로그램. ⓒ정현진 기자
‘로사리아 맘 집 반찬’ 식단과 함께 운영하는 프로그램. ⓒ정현진 기자

취재로 시작했지만, 취업과 공부, 일, 가족 이야기가 쉼 없이 이어졌다.

이들은 ‘로사리아 맘 집 반찬’은 ‘반찬’으로 시작한 또 다른 이야기, 공간이 되었다면서, 더 많은 일이 펼쳐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시작한 지 3년을 꼬박 채운 ‘로사리아 맘 집 반찬’은 올해 말까지만 운영한다. 실무 담당자 서선미 씨는 “반찬 나눔은 수요가 많아지고 있지만 더 큰 규모로 운영하기는 어려워 다른 방향을 고민 중”이라면서, 그동안 청년들을 만나면서 경험하고 알게 된 것들을 바탕으로 어떤 식으로든 청년들을 위한 일은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음식이나 물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차 한 잔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좋겠다면서,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수다방을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