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류이치,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이 글은 <가톨릭평론> 40호(2023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

음악은 언제 이루어질까? 작곡가 머릿속에 악상이 떠오를 때? 그 악상을 악보로 옮길 때? 아니면 연주자가 악보를 소리로 재현할 때? 지난 3월 71살 나이로 타계한 일본의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는 “음악은 청중의 마음에 전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말로 옮기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 사실을 자신은 오십이 넘어 겨우 깨달았다고 했다.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68 학생운동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청춘을 보낸 사카모토 류이치는 출판사 편집장인 부친과 모자 디자이너인 모친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인문학 소양과 자유분방한 기질을 동시에 지녔다. 고등학생 때 이미 반체제운동을 했는데, 대학 입학 뒤에는 수업에 참석하지 않고 현장에서 뮤지션들과 작업하는 데 열중했다.

한번은 그랬던 그에게 지도교수가 졸업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도 한다. 그는 어떠한 틀에도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며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는데, 언더그라운드에서 벗어나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YMO라는 3인조 밴드를 결성한 뒤였다. 입술에는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에는 치렁거리는 은빛 가발을 쓰는 등 기존에 없는 파격적인 스타일과 전위적인 음악을 만들며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Last Emperor)의 음악을 맡아 아카데미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전통과 현대를 망라해 다양한 소리의 음악을 수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예술가와 교류했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음악을 자신의 작품에 접목했다. 세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대학에서 정통 클래식을 공부했지만, 일찌감치 근대 서양음악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는 클래식에 안주하지 않고 전위음악, 뉴에이지, 방송, 영화음악 같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음악 표현과 소재의 경계를 넓혔다.

일본의 한 평론가는 사카모토 류이치를 가리켜 체제에 저항적이면서 사회참여적인 세대의 마지막 예술가라고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편향된 언론이 매체를 장악한 일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느끼는 향수 같은 것일까. 청년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안에는 버블 이전 경제 호황기 때 일본인들이 가졌음직한 자부심 같은 패기가 흐르고 있다. 노년의 사카모토 류이치는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의 자신을 보며 쑥스러워했다. 그리고 강한 자기 신념이 요청되는 창작은 필연으로 근시안적이 될 수밖에 없기에, 거시적 시각과 공존하고 융합할 필요가 있다는 걸 수줍은 미소로 역설했다.

그의 초기 작품이 실험적으로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전위음악이었다면, 중기 이후에는 새로운 시도 속에서도 더욱더 단순하면서 대중 친화적인 선율로 이루어진 뉴에이지풍 음악이 다수를 이룬다. 그중 가 장 유명한 곡은 영국 아카데미상 작곡상을 받은 1983년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 주제곡이다. 동양적 멜로디에 서양 근대 음악 화성을 더해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라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CM송 광고음악, 게임, 텔레비전, 영화음악, 편곡 등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작품 목록을 살펴보면, 살아생전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민감한 정치 이슈에도 예술가로서 목소리를 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전쟁 국가를 만들기 위한 일본의 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한국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사죄를 주장했다. 또한 민족음악을 수집해 곡을 만들며 지뢰 제거 운동에 동참했고, 동일본 대지진 원전 피해자들을 죽기 직전까지 격려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사카모토 류이치.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에는 한 인간으로서 그가 걸었던 길이 스며 있다.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틀에도 머무르지 않고 부단히 새로운 길을 탐색했던 그의 작품은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그의 활동과 작품의 스펙트럼에 비하면, 오늘날 연주되는 작품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아름답고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친숙하고 편안한 몇 곡이 끊임없이 변주될 뿐이다.

"표현이란 결국 타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추상화랄까, 공동화라고 할까,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개인적인 체험이나 아픔, 기쁨은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어떤 절대적인 한계가 있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결손감이 있다. 하지만 그런 한계와 맞바꾸어 전혀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공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종의 통로가 생긴다. 언어도 음악도 문화도 그런 것이 아닐까."(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청미래, 2023, 21쪽)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은 20세기 이후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화성뿐만 아니라 불협화음, 일상의 소리 역시 음악 영역으로 확장되었지만, 청중의 마음에서 음악이 완성된다는 관점은 정통 클래식 안에서는 여전히 낯설다. 청중은 연주회장에서 숨 죽인 채 연주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연주자는 악보 안에서 쉼표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전력 투구를 하는 현실에서, 음악의 최종 완성은 청중도 연주자도 아닌 작품을 만든 작곡가에게서 판가름 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탁월한 예술은 예술가의 천재성으로 만들어지고, 청중은 그저 수동적으로 감상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음악 예술에 대한 전통 입장이라면, 청중 안에서 음악이 완성된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발언은 마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같다.

음악은 해체와 구체 그리고 추상화의 순환에서 이루어진다. 작곡가가 과거 관습을 해체하고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만들어 악보로 구체화하면, 연주자는 그것을 소리로 추상화한다. 그렇게 추상화된 음악은 청중 안에서 개별적으로 해석되고 다시 해체된다. 이러한 순환 과정에서 작곡가와 연주자, 청중은 개별이면서 동시에 개인 차원을 넘어서는 경험을 한다. 음악을 매개로 느끼는 감동 안에서 청중과 연주자, 작곡가는 하나가 된다. 서로 연결되었다는 느낌 속에서 자아는 고독에서 벗어나 이해받는다는 위안을 받는다. 아름답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친숙하고 편안한 곡에서 음악이 완성되는 것이다. 일말의 결핍, 결손감이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신은주

대학에서 피아노와 철학, 종교학을 공부했다. 현재 숨 피아노 스튜디오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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