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천주교 사회운동’이란 명칭 사용이 뜸해졌지만, 과거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 당면 과제였던 시절, 천주교 사회운동은 교회가 교회 구성원을 포함해 시민사회에게서 신뢰를 얻는 중요한 상징과도 같았다.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천주교 사회운동이 하던 많은 역할이 시민사회 영역으로 넘어간 오늘, 천주교 사회운동은 참여 규모 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되었고. 본당(성당) 신자의 일상과는 괴리된 게토화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한편, 오늘날 세상 안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JPIC, Justice Peace Integrity of Creation)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 사회운동이 활발했던 시절, ‘정의 평화’, ‘정의 구현’ 등의 단체 이름에 익숙한 신자들은 ‘정의’와 ‘평화’를 한 묶음으로 연결한 개념으로 이해했고, ‘창조 질서 보전’은 왠지 거리가 있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실제로 ‘정의 평화’ 운동 그룹과 ‘창조 질서 보전’ 운동 그룹이 별개 운동 그룹으로 인식되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찬미받으소서' 생태 회칙 발표와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보내면서 교회의 사회 참여 운동에서 ‘창조 질서 보전’은 교회 구성원들의 인식에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전 교회 차원에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운동을 권장하고 있고, 실제로 적극 참여로 이어지는 경우가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이참에 활동가들에게 익숙한 ‘천주교 사회운동’이라는 추상적 표현 대신에 운동이 지향하는 내용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JPIC) 운동으로 천주교 사회운동 명칭도 일원화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 보면 좋겠다. 이 JPIC 운동이 교회 안에 보편화되는 데는 여성 수도자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수도회가 사도직 활동 중심을 JPIC 운동에서 찾았고, 시대 요청에 민감한 예언자 역할에 누구보다도 여성 수도자들이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2022년 여성 수도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기후 SOS"라고 적힌 손팻말을 글자, 단어별로 들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가톨릭기후행동)
2022년 여성 수도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기후 SOS"라고 적힌 손팻말을 글자, 단어별로 들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가톨릭기후행동)

올해 10월 로마에서 열리는 제16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1차 본회의를 앞두고 지난 6월 20일 의안집을 발표했다. 알려진 것처럼 이번 회의는 ‘공동합의성’, ‘함께 걷는 여정’을 의미하는 '시노달리타스'가 중심 주제다. 이번 의안집은 지난 1년 6개월간 전 세계 지역 교회의 경청 모임에서 나온 교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집약한 문서인 셈이다. 이전까지는 금기시한 여러 주제들, 여성 부제 서품과 성소수자 사목에 대한 내용, 사제 결혼 문제와 교회의 성 학대 위기에 대한 고려와 대응 등을 포함하고 있어서, 교회 개혁을 바라는 그룹들과 신학자들에게 환영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 상황을 고려할 때 많은 이는 이번 회의에서 진행하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에 큰 기대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진행한 본당(성당)과 교구의 경청 모임과 주교회의의 종합 단계, 대륙별 단계의 과정이 밀린 숙제하듯 이벤트로 참여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 교회가 시대 흐름을 먼저 읽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시대 흐름에 떠밀려 개혁을 진행한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교회가 그랬고, 최초의 사회교리로 알려진 ‘새로운 사태’(1891)도 당시 유럽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세상을 향해 교회 문을 활짝 열어 젖힌 것으로 평가받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세상과 단절된 교회로는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겉으로는 시대 흐름에 수동적으로 반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교회 개혁 여정에도 성령이 함께하시기에 오늘의 교회가 이렇게라도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에는 의심 여지가 없다.

이런 점에서 근래 들어 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주교 중심, 성직자 중심의 교회로는 더 이상 미래를 논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나아가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천명했는데도 60년이 지나도록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교회로 남는다면,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있는 것이다. 보편 교회 공식 문서라 할 수 있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의안집에 금기시한 주제들이 언급된 것은 실제 교회 안팎 구성원들이 이러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개혁 주제들에 대해, 한국 교회 종합보고서에서는 본당 이외의 경청 모임 그룹에서 올라온 목소리를 일부 담은 것으로 기억한다. 대다수를 이루는 본당의 목소리들은 세상과 연결된 주제보다는 교회 안 문제에 국한된 경우가 많았다는 한계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이런 점에서 JPIC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다양한 교회 내 그룹들은 ‘시노달리타스’를 JPIC 운동 원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는 생각이다.

4월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월요시국기도회에 수천 명이 참석했다. 미사 시작하면서 사제단이 입장하는 모습. ⓒ배선영 기자
4월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월요시국기도회에 수천 명이 참석했다. 미사 시작하면서 사제단이 흰색 제의를 입고 줄지어 입장하는 모습. 참석자들은 '윤석열 퇴진'이라고 적힌 빨간색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배선영 기자

다른 사목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JPIC 운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교회의 존재 이유는 교회 구성원들과 세상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함께 공존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속한 그룹이나 단체 활동이 교회 구성원들의 목소리와 무관하게 독야청청 구호를 외쳐 왔던 JPIC 운동에 포함된다면 ‘시노달리타스’ 원리에 비추어,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고 향후 전개할 운동을 재구조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 비교적 활발했던 평신도 진보 운동이 침체 단계를 지나 소멸 상황에 처한 작금을 ‘시노달리타스’ 원리에 비추어 성찰할 때, 부활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 윤리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베른하르트 헤링 신부는 이미 반세기 앞서서 경청하고 대화하는 것, 즉 ‘소통하는 것’이 교회의 존망을 가르는 본질적 태도임을 직시했다. 그의 표현대로 “교회가 세상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세상 역시 교회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팬데믹 이후를 사는 오늘날 교회에 더욱더 절박한 외침으로 인식되고 있다. JPIC 운동이 ‘시노달리타스’를 운동 원리로 삼아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동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상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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