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유엔 산하 과학자 단체다. 세계의 기후 관련 과학자 수만 명이 수십만 편 논문과 보고서를 종합 검토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작년 6차 보고서를 채택한 IPCC는 절박하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대비 섭씨 1.5 이하로 억제하려면 탄소중립을 2050년이 아니라 2040년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잘사는 국가와 거대한 기업은 IPCC의 거듭되는 호소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괴담으로 여기는가?

왜 1.5도 이하로 억제해야만 하는지 과학은 막대한 논문으로 명쾌하게 증명한다. 1.5도 이상 오르면 생태계 붕괴에 이어 인류 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최근 1.5도 이상 오르는 징후가 빈번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미래세대의 생명이 걸린 일이니 더욱 시급하게 탄소 배출을 억제해야 한다는 탄식이다. 하지만 권력과 돈벌이에 눈이 먼 기득권은 꿈쩍하지 않는다.

얼마 전, “안전이 검증되면 마실 용의”가 있다는 투로 말해 구설에 휩싸인 우리 총리는 일부 여당 국회의원 배경을 믿는지, 살벌한 ‘괴담론’을 꺼내 들었다. 6월 12일, 대정부 질문에서 “후쿠시마 괴담이 도를 넘으면 사법 당국이 조치할 것”이라며,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시민에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주권자를 협박하는 총리의 태도는 일제 강점기의 총독을 닮았는데, 괴물이 된 검찰 권력에 모종 암시라도 받은 걸까? 괴기스럽다.

정부와 여당이 “과학이 아니라 괴담”이라고 주장하는 분야는 후쿠시마 핵오염수에서 그치지 않는다. 광우병과 천안함도 마찬가지인데, 예나 지금이나, 어디서나,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주권자의 의혹 제기는 당연하다. 책임 있는 부서는 납득할 과학적 자료를 제시하며 그때마다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괴담 운운하며 윽박지르는 행위는 서슬 시퍼렇던 군사독재를 연상케 하기 충분하다.

정부 부처는 다수 연구기관을 가졌다. 대학보다 수준 낮지 않은 과학과 인문사회 연구자가 모인 연구소마다 정부 정책을 연구하며 보좌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주권자가 제시하는 의혹에 여태 친절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괴담이라고 잡아떼는 버릇이라도 생긴 걸까? 사법처리 으름장으로 주권자 통제하려는 정권은 민주주의를 감히 내세울 수 없다. “자유!”를 부르짖을 수 없다. 의혹 제기하는 주권자를 처벌할 정권의 자유인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과학기관이 아니다. 홈페이지에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 협력의 중심이며 원자력 기술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용을 촉진하고자” 하는 기구라고 명백히 소개한다. 핵발전소 보급이 주요 사업인 IAEA는 후쿠시마 핵오염수가 안전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의 오염수 처리 방법에 문제가 없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현재까지 과학자가 연구한 장비를 제대로 사용한다고 말했을 뿐, 후쿠시마 핵오염수가 사람과 생태계에 안전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마셔도 괜찮다고 언급하지 않았다. 과학자 단체가 아닌 까닭이다.

종로를 지나가는 방사능오염수 방류중지 한일시민 도보 행진 일행. ⓒ박병상
종로를 지나가는 방사능오염수 방류중지 한일시민 도보 행진 일행. ⓒ박병상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우럭에서 검출된 방사선량은 일본이 정한 기준치의 180배라는 보도는 괴담이 아니다. 다만 그 우럭이 우리나라 바다까지 찾아올 리 없다고 한 의원이 발언했다. 괴담을 자주 운운하는 의원이다. 그렇다. 우럭은 태어난 지역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로 회유하는 물고기는 아니지만 겨울철 인기가 큰 방어는 다르다. 제주도에서 잡히는 방어 중에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여름을 보낸 뒤 우리나라로 회유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조사하지 않아 모르지만, 상당할 것이다. 과학적으로 조사한 적 없다. 그러므로 괴담일까? 처벌 대상이므로 두려워해야 하나?

일본이 정한 방사능 기준치는 유럽, 적어도 자국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한 독일보다 느슨하다. 일본은 킬로그램당 100베크렐을 기준으로 정했지만 독일은 8베크렐이다. 일본인이 독일인보다 방사능에 그만큼 강하다는 과학적 자료는 없다. 분열이 진행된 핵연료에 수백 가지 방사성 물질이 있다. 2011년 폭발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사용 중이던 핵연료는 고열로 녹아 덩어리진 채 발전소 내부에 남았고, 핵폭발을 막으려 물로 식히는 초기 과정에서 이미 막대한 방사성 물질을 바다로 내보냈다. 일본에서 출간한 많은 책자가 과학적으로 증언했는데, 괴담인가? 그 방사성 물질이 우럭에 포함되었다. 이제 방류하는 오염수가 생태계로 들어오겠지.

일본은 단지 비용을 줄이려고 방사성 물질을 태평양으로 내보내겠다는 건데, 공공연한 범죄 선례가 될 것이다. 일본뿐 아니라 앞으로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모든 국가가 오염수를 방출하려 할 것이다.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핵잠수함과 핵항공 모함도 오염수를 처리할 공공연한 방법을 행사할 게 틀림없다. 과도한 방사능은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몸집 키우는 우럭과 방어에서 그치지 않는다. 태평양과 한반도를 넘을 것이다. 바다만이 아니다.

다핵종제거장치(ALPS)는 모든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지 못한다. 60가지 이상의 방사성 물질은 처리하지 못한다는데, 고장이 잦다. 아무리 수선해도 방사성 수소는 걸러낼 수 없다. 우주에서 가장 작은 물질인 수소는 생물체 몸에 주요 구성 성분이다. 방사성 수소가 먹이사슬로 들어오면 물의 일부가 되어 방사능을 주위 세포에 내뿜는다. 유전자, 세포막, 단백질의 수소에 포함돼 주변 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킬 것이다. 방사능은 거리 세제곱에 반비례한다고 과학자는 주장한다. 독성의 질과 방사능 양이 적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몸을 꿰뚫고 지나가는 방사능도 많으면 위험한데, 몸을 구성하는 동안 쉼 없이 배출하는 방사능은 어떨 것인가?

지금까지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에 보관한 방사성 물질, 그리고 방사성 수소 총량은 얼마나 될까? 밝히지 않아 모르지만, 30년 동안 아무리 희석해서 태평양으로 방류해도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플랑크톤에서 먹이사슬을 타면서 적지 않은 양이 축적되고, 경우에 따라 물고기를 따라 회유할 것이다. 갯벌에 침착되면 희석이 어려울 수 있다. 모든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가 있다. 반감기가 10번 지나가야 안전을 주장할 수 있다는데, 방사성 수소 반감기는 12.3년이다. 수만 년을 넘나드는 방사성 물질도 많다.

몸속 방사능은 분열이 왕성한 세포에 영향을 크게 준다. 핵오염수를 먹겠다는 어른보다 어린이가 훨씬 위험하다는 건데, 먹자마자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병으로 짐작하고 치료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어리거나 젊은데 암이 생기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사람만 아니다. 생태계에 예외는 없다. 플랑크톤부터 사람까지 모든 먹이사슬을 이어 가며 얼마나 축적되고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른다.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무턱대고 “괴담”부터 운운할 일이 아닌 것이다.

2023년 6월 18일, 오전 10시 반에 ‘방사능 오염수 방류 중지 한일 시민 도보 행진’을 위해 우리 참여자가 출범에 앞서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광화문에서 출발해 부산으로 500킬로미터를 걷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시민과 1100킬로미터를 더 걸어 9월 11일 도쿄에 도착할 예정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나 동참해서 걸을 수 있다. 그들을 성원하면서 출발에 앞서 발표한 글을 잇는다.

“왜 굳이 바다에 버리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희석해도 방사능의 절대량은 그대로입니다. 바다 생태계가 파괴됩니다. 방사능은 반감기가 있으므로 보관만 잘해 두면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왜 보관하지 못합니까? 일본 정부는 뭇 생명을 고의로 파괴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인류 자멸의 테러는 중지되어야 합니다. 이젠 지구촌 주인이 나서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걸어서 이를 일깨워 주고 방류를 막고자 합니다. 함께 걸으면 이룰 수 있습니다.”

박병상

60플러스 기후행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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