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 주사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약과 주사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수술 뒤 얼마간의 회복기를 지나 2022년 2월 중순, 4차로 예정된 항암을 시작했다. 

주치의는 환자를 안심시키려고 했는지 앞의 항암 약보다는 약하다며, 다른 환자들도 이 약은 훨씬 부작용을 적게 겪는다고 설명했다. 

바뀐 항암 약은 도세탁셀(탁소텔, 탁소젠, 디탁셀)이다. 

하지만 처방전에 적힌 부작용 설명은 앞의 약과 다르지 않았다. 백혈구, 혈소판, 적혈구 감소, 메스꺼움, 구토, 구내염, 구강 건조, 식욕 감퇴, 입맛 변화, 설사 또는 변비, 탈모, 간기능 검사 수치 증가, 출혈과 방광염, 부정맥 또는 서맥, 손발톱 변색 및 변화, 손발 저림 또는 무감각, 수족증후군, 근육통, 관절통, 두드러기, 월경 불순, 폐경, 혈뇨, 출혈성 방광염, 심장 영향, 피로 무기력, 시력 및 청력 장애 등등....

설명만 봐도 무서웠고, 어느 증상이 어떻게, 얼마나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예상할 수 없는 일은 훨씬 두려운 법이다. 

처음엔 그래도 선항암 때보다는 수월하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이미 앞선 항암과 수술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환자의 몸에는 약 자체가 순하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번엔 항암과 항암 사이 회복기는 전혀 없었고, 엄마는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정신도 멍해졌고 손떨림도 심해졌다.  

약이 바뀌었지만 엄마의 주된 부작용은 여전히 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뭐라도 먹여야 하는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해산물 위주로 메뉴를 짰지만, 항암 중에는 감염 위험 때문에 날것은 먹지 못한다. 유산균도 세균이라 피했다. 정석대로 엄마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입맛에 맞지 않았고, 그나마 먹고 싶은 것이 생겨도 당뇨 때문에 먹을 수 없는 것이 태반이었다. 

당뇨는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하는 병이지만, 나는 중간에 당뇨 식단을 포기했다. 섭식장애 상황이 이어지니 주치의는 식욕촉진제와 영양식(엔커버)을 처방했다.

영양 대체식이 있었고, 병원에서 권한 대로 몇몇 종류를 주문해서 먹어도 봤지만 이상하게도 복통이 왔다. 그나마 같은 종류의 병원 처방인 엔커버를 먹을 때 괜찮아서, 진료 때마다 처방을 부탁했다. (뉴케어를 개인적으로 사는 것보다 처방받는 엔커버가 훨씬 저렴하다.) 식욕촉진제는 조금 맛을 봤는데, 엄마는 단순히 식욕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거의 효과가 없었을 뿐더러, 맛이 너무 이상해서 “이 약 먹을래 밥 먹을래”라고 협박하는 효과인가 싶었다.  

보호자 입장에서 환자가 잘 먹지 못하는 일은 무기력감을 동반한 심적 어려움 그리고 경제적 문제를 가져온다. 아프기 전에는 잘 먹던 것도 싫어지고, 내 입에는 괜찮은 것도 엄마 입에는 썼다. 한 번 잘 먹은 음식도 두 번은 먹지 못했다. 식재료를 유기농으로 바꾸는 것은 물론, 물도 바꿨다. 어느 날은 하루 3번 장을 보고, 배달과 맛집에 기대면서도 10번 중 8번은 실패였다. 항암 전날 또는 항암하고 퇴원하는 날 겨우 입맛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날 먹고 싶다는 것을 조금 먹은 게 3주간 먹는 것의 거의 다였다.

약을 바꾼 뒤 1차 항암, 전체 5차 항암을 마친 뒤, 또 고비가 찾아왔다. 항암과 항암 사이에 중간 진료를 받는데, 엄마가 너무 쇠약해져 내가 먼저 입원을 말했다. 

간신히 고비를 넘기고 진행한 6차 항암은 그야말로 마지막인가 싶었다. 항암 후 열흘 전후로 진료받던 날, 엄마는 제대로 걷지 못했다. 진료실에 들어가면서 내 부축을 받으면서도 간신히 걸음을 떼는 엄마를 보고 주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엄마도 나도 항암을 더 이상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할 상황도 아니었다. 다만 앞으로 2번을 어떻게 지날지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이제 2번만 더 하면 끝이라는 건, 환자 당사자가 아니라 보호자의 입장이었을 뿐이다. 보호자의 한계란 그런 것이다. 

간신히 걸음을 옮겨 진료실로 들어오는 엄마가 앉자, 주치의는 말했다. “박00 님.... 항암 더 하실 수 있겠어요?” 엄마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주치의는 잠시 엄마를 바라봤다. 그리고 엄마도 나도 내릴 수 없었던 결정을 주치의가 했다. “제가 볼 때, 더 이상 항암 하시면 안 될 것 같아요. 항암은 살려고 하는 건데, 항암 때문에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고, 이만큼 고통스러우면 안 해야 하는 거죠.” 

설명을 들은 엄마가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 잠시 중단했다가 나중에 다시 항암 할 수 있나요?” 항암이 힘들면서도 중단은 두려웠던 거다. 

의사는 조금 미룰 수는 있지만 지금은 며칠 미뤄서 될 상태가 아니며, 한 달 이상 연기하면 이전의 항암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그동안의 항암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항암을 중단하자고 판단하고, 말해 준 의사가 너무 고마웠다. 

그래도 방사선 치료가 남아 있었다. 방사선은 어찌되었든 해야 한다고 했다. 아빠가 방사선 이후에 상태가 너무 나빠진 것을 경험한 우리 모녀는 차라리 항암을 더 할지언정 방사선 치료는 안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치료 계획상 방사선은 나머지 두 차례 항암을 다 하더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1월 12일 수술, 그다음 2차례 항암 또 한 차례 전체 검사를 진행한 뒤, 4월 중순, 마지막이어야 할 마지막 항암 과정, 방사선 치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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