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한 노동자가 부산시 남구 경동건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오랜 법정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경동건설과 하청업체인 JM건설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만 주었습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경동건설이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의 자필 서명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문에 고의로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한 사실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고 정순규 님의 유가족과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부산운동본부’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은 5월 15일 부산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을 대신해서 직접 관련자들을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의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하였습니다.

5월 15일, 경동건설 고 정순규 님의 사망사고에 대한 사문서위조 등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기에 앞서 부산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장영식<br>
5월 15일, 경동건설 고 정순규 님의 사망사고에 대한 사문서위조 등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기에 앞서 부산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장영식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 정순규 님의 아들인 정석채 씨는 “우리 유가족들과 억울하게 돌아가신 고인들은 결코 운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다른 국민들보다 우리가 먼저 겪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재사망으로 가족을 잃고, 유가족들이 발 벗고 나서 증거를 모으고, 진실을 찾아 나서며, 길 위에서 1인 시위와 단식농성을 하며 ‘중대재해처벌법’도 힘겹게 제정됐지만, 가족이 억울하게 죽었어도, 법적으로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시대를 아직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며, “경동건설처럼 악한 사람들은 저들끼리 똘똘 뭉쳐서 더 강해지는데, 조작되고 은폐된 죽음에 우리 유가족들도 결코 쓰러지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저들이 ‘잘못을 인정하면 절대 안 된다’라는 것이 수십 년 동안의 같잖은 트렌드였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고소로 경동건설 같은 기업들에게 사람 목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려주고,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려 합니다”라고 고소장 접수의 의미를 밝혔습니다.

사단법인김용균재단의 김미숙 대표는 경동건설 측의 자필서면 조작 사건에 대해 “사고 원인을 가장 잘 아는 피해 당사자가 죽으니 사측의 재빠른 사문서 위조나 사고현장 훼손 조작은 다반사고 증거인멸로 모든 책임이 죽은 사람 과실로 둔갑시키기 십상인데다 빠르게 사건을 무마시켜 작업중지 해제로 죽은 자를 덮고 또다시 이윤 챙기기 바쁜 비인간적 행태에 소름이 끼칩니다”라며, “모든 사건은 피해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제대로 된 올바른 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정순규 님의 명예회복은 남겨진 유족들이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최소한의 양심입니다. 헌법 제11조에 명시되어 있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법정이 준수해야 하고, 비로소 올바른 민주주의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재판정이 구식 판례에 머물러 있지 말고, 현시대 발전에 맞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길 바랍니다”라고 사법부에 호소했습니다.

고 정순규 님의 유가족인 정승남 씨가 부산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의 모습. ⓒ장영식<br>
고 정순규 님의 유가족인 정승남 씨가 부산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의 모습. ⓒ장영식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부산운동본부’ 공동대표인 이영훈 신부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기에 앞서 “노동자는 인간이지 기계부품이 아니다.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야말로 돌아가신 분과 가족들에게 진정한 애도와 예우를 보이는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현장의 기업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사문서위조와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하는 일들을 ‘만연한 관행’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을 나간 노동자들이 저녁에 돌아오지 않는 일이 코로나로 숨진 이들보다 더 많은 한국 노동의 현실에 대해 사법부는 ‘법의 정의’를 실현시켜야 합니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말하는 한국 사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책임자가 처벌받는 사회가 실현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산재 사망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가 될 것입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