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있지만 특히 겨울밤에 읽는 책은 더 달고 고소한 법이다. 이건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 읽어 주는 나에게도 그렇다. 이번 방학에는 이때다 싶어서 "나니아 연대기"를 읽고 있는데, 어린이책이라고는 해도 그리 만만한 분량이 아니다. 7권의 책이 한 권에 묶여 있어 무려 1000쪽이 넘는다. 그런데 그 두꺼운 책을 통틀어 ‘아슬란’이라는 사자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아슬란은 동물이지만 신이고, 신이면서 인간을 느끼게 하는 묘한 존재로, 작가는 아슬란을 통해 ‘예수님’과 같은 구원자의 느낌과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슬란을 만나면서 나는 지난해 가을 다나와 서울대동물원에 갔을 때 느낀 몸의 떨림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때 아쉽게도 사자를 본 것은 아니고 코끼리, 아메리카 들소, 고릴라, 홍학 같은 친구들을 가까이서 보았는데 저마다 가진 기괴한 외모와 낯선 분위기,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느낌 같은 게 있었다. 느릿느릿 움직였고 어떤 동물은 아예 석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음에도 잠재된 엄청난 에너지가 내 살결에 닿는 듯해서 움찔움찔 두려운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실감했다. 동물들이 결코 귀엽고 깜찍한 인형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그들은 살아 움직이고 고요히 숨 쉬는 하나의 우주였다.

나니아에서 노는 사자와 아이들. ⓒ정청라<br>
나니아에서 노는 사자와 아이들. ⓒ정청라

그러하기에 ‘만약 내 앞에 사자 아슬란이 나타난다면’ 하고 상상을 해 보았을 때 책 속에 나오는 (디고리나 폴리, 루시나 수잔 같은) 어린 친구들만큼이나 작아질 것 같다. 눈을 바로 뜨기 힘들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것 같다. 가까이 가는 게 두려우면서도 가까이 가고 싶을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뜨거워지고 동시에 서늘하게 떨려온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어서인지 나는 오늘 사자 아슬란을 만났다. 아니 사실은 사자 아슬란처럼 느껴지는 금똥이를 만났다. 아마 대충은 짐작을 하고 있겠지만 금똥이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집 개다. 연한 금빛 털이 북슬북슬한 털개. (시골에서 털개는 환영받지 못해서 왜 하필 털개를 키우냐는 구박을 자주 받는 형편이다.) 안타깝게도 마당 한구석에 묶인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친구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천진난만하다. 목줄에 붙잡혀 살면서도 비관 또는 원망의 기색 따위는 없다. 다만 아이들이 마당에 뛰어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하면 앞다리를 들고(기도하는 손) 간곡한 눈빛으로 짖어 댄다. 어쩌면 “아담의 아들 이브의 딸들아, 나도 좀 데려가 주렴!” 하고 말하는 것이리라.

어때요, 정말 루시와 아슬란 같지 않나요? ⓒ정청라<br>
어때요, 정말 루시와 아슬란 같지 않나요? ⓒ정청라

오늘도 복수초 꽃 피었나 보려고 산에 가려는데 금똥이가 자기도 데려가라고 성화였다. 너무 날뛰는 통에 진정을 시키려고 해 봤지만 허사였다. 때문에 붙박이 목줄을 빼내고 산책용 목줄로 바꿔 끼우는 과정이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그 힘든 과정에서 나는 감옥에 갇힌 죄수를 어렵사리 구출해 내는 구원자가 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마침내 금똥이가 풀려나는 순간이 되면 사태는 역전이 되어 그때부터는 금똥이가 상황을 주도한다. 금똥이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하는 듯한 환호성을 지르며 번개처럼 내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가끔씩 여기저기 멈추어 서서 신부님이 성수를 뿌리듯이 땅을 축복하는 시간도 갖는다. (금똥이가 오줌을 뿌린 자리에 축복 있으리~!^^;) 냇물을 건너면서 생명력 넘치는 물을 흠뻑 핥아 마시기도 하고, 난데없이 지나가는 고양이를 추격하여 고양이가 혼비백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호방한 자유의 기운 덕에 금똥이 뒤를 졸졸 따르는 나와 아이들마저 신이 나서 들썩이게 된다. 맘껏 뛰놀고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공기마저도 전보다 산소를 더 많이 머금은 것처럼 생생해져서 몸속 깊은 곳까지 숨이 들어온다. 금똥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세상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니, 그러고 보면 정말 금똥이가 구원자 맞다. 우리가 금똥이에게 자유를 선사한 게 아니고 금똥이가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한 것!

정답게 피어날 준비를 하는 복수초 꽃 꽃망울.&nbsp;ⓒ정청라<br>
정답게 피어날 준비를 하는 복수초 꽃 꽃망울. ⓒ정청라

꽃망울이 몰래몰래 고개를 내밀고 있는 복수초 꽃밭에서 아이들과 금똥이와 한참을 놀다 왔다. 금똥이의 금빛 털은 정말 사자의 갈기처럼 보였고, 그 옆에서 웃고 있는 다나는 루시를 빼닮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머무는 이 숲은 나니아?! 정말 우리가 마법과 환상의 나라 나니아에 들어가 있는 듯 묘한 기분마저 들어 가슴이 싱그럽게 뛰었다.

금똥아 고맙다. 너와 함께라면 언제라도 축복의 땅에 다다를 수 있으리!

ⓒ정청라
ⓒ정청라

정청라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무관심, 무 호기심의 삭막한 땅을 
관심과 호기심의 정원으로 바꿔 보려 합니다.
아이들과 동물들의 은덕에 기대어서 말이죠.
무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명랑한 어른으로 자라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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