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성령께서

이 글은 <가톨릭평론> 38호(2022년 겨울), '비평-시대의 소리'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새로운 논의와 쇄신의 출발점을 기대하며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한 제16차 세계 주교 시노드가 전 세계적으로 2021년 10월에 개막해 2024년 10월까지 3년의 여정으로 세 단계에 걸쳐 진행 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시노드 과정에서 제기된 사항에 관해 좀 더 충실히 식별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한 번이었던 세계 주교 시노드 정기 총회의 회기를 두 차례로 늘렸고, 이에 따라 시노드의 전체 여정도 2024년까지 1년 더 연장되었다. 현재 세계 주교 시노드는 두 번째 단계의 후반부를 지나고 있는데, 지난 10월 말에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가 발표되었고, 이 문서를 기초로 내년 1월부터 3월까지 7개 대륙별 시노드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한국 교회도 바티칸에서 설정한 시간표에 따라 2021년 10월에 각 교구가 시노드 여정을 시작했고, 주교회의가 올여름에 그 체험과 논의를 종합하고 정리해 10월에 '한국교회 종합의견서'를 발표했다.

이번 종합의견서는 시노드 여정에 관한 간략한 회고에 이어 10가지 핵심 주제별로 한국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현실을 진단한 뒤 결론을 제시했다. 시노드의 전체 맥락을 잘 모르는 평범한 평신도인 내가 이 종합의견서에 관해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의견을 제시할 입장은 전혀 아니고 또 그럴 만한 능력도 없지만, 몇 가지 소감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종합의견서는 10개 주제별로 현실 진단과 처방이라는 틀로 한국 교회의 시노드 여정에서 경청한 의견을 정리하고 있다. 전반적 인상을 말하면, 진단은 비교적 솔직하지만 처방은 대체로 추상적이며 진단과 처방 둘 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 제기되었던 사항으로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오히려 이 문헌을 읽고 있노라니 한국 교회가 총체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생각해 마음이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비록 내용은 그렇다고 해도 이 문헌은 나름 매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동안 교회 안팎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를 주교회의가 공식문서의 형식을 통해 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문헌을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논의와 쇄신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세계주교시노드 홈페이지에서 교구단계 시노드종합문서, 한국교회 종합의견서, 대륙별단계 작업문서를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세계주교시노드 홈페이지 갈무리)
세계주교시노드 홈페이지에서 교구단계 시노드종합문서, 한국교회 종합의견서, 대륙별단계 작업문서를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세계주교시노드 홈페이지 갈무리)

성직자 중심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먼저 이번 종합의견서에 대해 아쉬운 점을 하나 든다면, 교회 공동체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가 충분히 담기지 못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교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의 의견이 많이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종합의견서도 시사하듯, 한국 교회에서 시노달리타스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여전히 공고한 ‘성직자 중심주의’일 것이다. 이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하기도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이 사안을 외면하고서는 시노달리타스가 빈말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 ‘성직자 중심주의’의 해결은 평신도의 역할과 참여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서 절대적인 결정권과 권위를 지닌 성직자 스스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겸허한 자세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쇄신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본당 이외 다양한 분야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이 이번 시노드 과정에 어떻게 참여했으며, 어떻게 시노달리타스를 체험했는지도 궁금하다. 이 종합의견서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문헌은 의미 있는 지적을 하고 있다.

"사제는 교구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지만, 양심적 발언을 꺼리고 있다. 교구 조직이 관료적이고 수직적이어서 자신의 발언이 존중받고 경청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 불이익을 당하고 반대 세력의 저항을 불러일으킬까 두려워 침묵할 때가 많다."

이번 시노드의 소주제는 친교, 참여, 사명이다. 교회의 사명은 다양하지만 그래도 본질적인 사명이라고 한다면, ‘선교’, ‘복음 선포’, 혹은 ‘복음화’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헌장은 “세상 끝까지 구원의 진리를 전파함으로써 인류를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 사명임을 천명한 바 있다.(교회헌장 17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도 '복음의 기쁨'에서 교회를 선교적으로 변모시켜야 하며, 이를 위한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곧 교회의 “모든 구조를 더욱 선교 지향적으로 만들고, 모든 차원의 일반 사목활동을 한층 포괄적이고 개방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복음의 기쁨' 27항) 알다시피 교황은 실제로 2022년 3월에 교황청 조직개편에 관한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를 선포하고, 낡은 기존 교황청 기구들을 전면 개편해 ‘부서dicastery’로 통일하며, ‘복음화 부서’를 새로 설치해 자신이 직접 부서장을 맡아 구조개혁의 모범을 보였다.

이번 종합의견서에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관한 보편교회의 이러한 위기감과 절박감이 충분히 반영되었는지 의문이다. 물론 종합의견서는 다섯 번째 핵심 주제인 ‘사명 안에서의 공동 책임’에서 선교에 관해 논의하고 있으나 “선교 사명을 실천하는 데 교회의 세속화와 사목자의 권위주의, 인간 존중의 결여가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한 줄 언급하는 정도에 그친다. 우리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예비신자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많은 신자가 신앙의 위기를 느끼고, 쉬는 신자도 크게 늘어나는 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나로서는 이번 종합의견서가 이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 않아 매우 아쉽다.

이번 종합의견서는 “시노드 정신이 단순한 신학적 개념으로 그치지 않고 생활방식이자 활동방식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이 시노드의 여정이 하나의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와 체험의 공유를 통해 이해와 양성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사실 한국 교회에서 이번 시노드 과정이 교회 구성원의 큰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소극적 태도와 회의적 시선이 자리했다. 종합의견서도 지적하다시피 “시노드를 해도 변화하지 않는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에는 다를까? 섣불리 예단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 같으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종합의견서의 처방이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결론 또한 방향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결론이 “한국 교회에서 하느님 백성은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기 위해 서로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는 식이다. 소통의 필요성은 누구나 잘 알고 또 절감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다.

제대로 된 후속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이번 종합의견서가 기본적으로는 세계 주교 시노드에 제출할 문서이기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지금 처한 현실을 전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세계 주교 시노드와는 별개로 혹은 병행해 이 문서에 대한 후속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야 ‘시노드를 해도 변화하지 않는 교회’라는 신자들의 불신을 씻을 수 있다. 이 종합의견서를 신자들에게 널리 읽혀 우선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후속작업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단지 이 문서를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말 일이 아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낸 의견이 어떻게 제도화되고, 어떻게 교회 운영에 반영되는지, 또 교회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는지 궁금해 한다. 종합의견서가 우리 교회의 속살을 너무 드러내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덮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신자들도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이 종합의견서를 열심히 읽고 토론해 여기에서 제기된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스로 성찰하고 쇄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끝으로 시노달리타스를 사는 교회가 되려면, 좀 더 장기적이고 대담한 기획과 결단이 필요하다. 한 예로서 종합의견서는 사목평의회의 구성과 운영의 내실화를 중요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사목평의회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본당 체계 안에서 사목평의회 역할과 한계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교회의 문화와 조직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시노드가 ‘시노달리타스,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한 시노드였다고 한다면, 여기에서 도출된 과제를 중심으로 ‘시노달리타스, 우리 이렇게 해 보자!’를 주제로 또 한 번의 시노드를 개최해 볼 필요도 있다. 평신도에게는 ‘신앙감각’도 있지만, ‘쇄신 열망’도 있고, ‘개혁 능력’도 있다. 교계가 결단해 이를 끌어내기만 하면 된다. 길은 성령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한국교회 종합의견서' 바로가기.

강성진

예수고난회 재속3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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