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사노위, 반빈곤 단체 등,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사회보장을 촉구하는 합동 추모제가 열렸다.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은 17일 경기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100구역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서 추모 의식과 문화제를 진행했다.

이날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제는 2017년부터 매년 이날 열리고 있다. 빈곤 운동 단체 등은 홀로 죽음을 맞고 장례를 치러줄 이마저 없는 무연고 사망을 단지 연고자가 없는 죽음이 아닌 빈곤으로 인한 인권 문제로 본다.

이들은 특히 추모제가 열린 서울시립승화원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이 일반 봉안시설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유골함을 일시 보관하는 창고 역할에 그치고, 상시가 아닌 추모제 날 하루만 개방되는 등 진정한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큰 문제로 지적했다.

추모객들은 이 창고에 갇힌 죽음에 대해 “불평등하게 살다, 죽어서도 존엄은 없다”면서 “이들은 잊진 존재가 아닌 기억돼야 할 존재이며, 누구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용혜인 국회의원(기본소득당)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아 지난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2년 1025명에서 2021년 3488명으로 지난 10년 동안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무연고 사망자는 모두 2만 906명에 달한다.

(오른쪽) 지몽 스님 등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기도법회를 하고 있는 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 ⓒ김수나 기자
(오른쪽) 지몽 스님 등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기도법회를 하고 있는 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 ⓒ김수나 기자

이날 지몽 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은 추모사에서 “살아서 고독하고 가난했던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며 “장사법 일부 개정으로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공영장례의 길이 열렸지만 갈 길이 멀다. 하루빨리 무연고자 장례에 관련된 미비점과 현장 실태를 파악해 존엄을 담보할 수 있는 매뉴얼이 갖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행정실무 담당자는 물론 국민 모두 무연고자 공영장례에 대한 온정주의와 시혜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현재 1인 가구 및 다양한 가족 형태가 늘고 있어, 가난과 관계 단절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무연고 사망자 장례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몽 스님은 “차갑고 창고 같은 건물 속에 있는 유골을 외면하지 말고, 서울시와 서울시장은 유골 보관 창고가 아닌 무연고 사망자를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누구나 애도 받고 애도할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존엄하게 이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로서 공영장례가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백광헌 부위원장(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은 “이 건물을 봐라, 여기가 추모하는 공간인가. 내가 죽어도 (추모의 집에 봉안된)이천 명 중 한 명, 누가 나를 기억할까”라며 “간판이 없어 찾아오기도 어렵고, 여기가 어디인지 몇 번이나 왔지만 놀랐다. 기억도 안 하고 추억도 없는데,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행복하게 조금만 더 신경 써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객들은 "누구든 존엄하게 죽을 권리, 국가가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추모객들은 "누구든 존엄하게 죽을 권리, 국가가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동자동, 양동 쪽방촌 등지에서 온 이웃들이 참배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동자동, 양동 쪽방촌 등지에서 온 이웃들이 참배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지난 6월 22일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개정 법률(약칭: 장사법)에 따르면, 시장 등이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존엄하고 표준화된 장례 절차를 제공하기 위해 장례비용을 국비로 지원하고, 지원 기관으로 장사지원센터를 두도록 했다. 현재 장례 절차 지원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위탁했으나 예산과 인력, 기능과 역할 등과 관련한 구체적 과제들이 남은 상태다.

특히 이 지원센터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단순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충분한 추모와 애도가 이뤄지는 과정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참가자들은 이날 결의문을 내고 “고인들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것에 그칠 수 없다. 빈곤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추모만으로 어떠한 사회적 변화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2021년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36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연고자가 있지만 병원비, 장례비 등으로 시신 인수를 포기해 무연고 사망자가 된 이들은 2500여 명에 달한다. 실제로 연고가 전혀 없는 사망자는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3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이들이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원인을 연고 유무가 아닌 빈곤으로 보는 까닭이다.

스님들과 참배객들이 위패를 모시고 봉안시설 안에서 추모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스님들과 참배객들이 위패를 모시고 봉안시설 안에서 추모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이들은 또 “누군가의 애도를 위한 상징적 장소는 물론, 추모의 집에 봉안된 이들을 상시 추모할 수도 없다”면서 “서울시는 유골 반환이 있을 때를 빼고 추모의 집을 상시 폐쇄하고 있다. 기억과 추모를 금지할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추모의 집 안에 설치된 선반에는 공간 구분도 없이, 빼곡히 유골함이 놓여 있다. 현실적으로 많은 유골을 보관하기에 최적화된 곳일 뿐”이라며 “외부에는 이곳이 추모의 집이라 알 수 있는 안내판이나 현판도 없고 봉안된 고인을 확인할 수도 없다. 서울시는 추모의 집다운 공간으로 시설을 확충, 운영하라”고 촉구했다.

법 제도의 미비점도 지적됐다. 지자체에 공영장례 도입이 늘고 있고, 사망자의 생전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연고자가 아니어도 연고자 지정 및 장례 주관을 할 수 있도록 무연고 사망자 장례 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의료법 등 관련법은 개정되지 않거나 예산 문제 등으로 실행되기 어렵다면서 법,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무연고 사망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어도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의 사망을 포함하지만, 장사법에 따르면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의 무연고 사망자는 추모의 집에 봉안하지 않는다.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 표지판이나 안내문 등이 전혀 없는 창고처럼 생긴 건물로 일반인은 봉안시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김수나 기자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 표지판이나 안내문 등이 전혀 없는 창고처럼 생긴 건물로 일반인은 봉안시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김수나 기자

이날 합동추모제가 열린 서울시립승화원의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는 현재 유골 약 3000위가 봉안돼 있다. 이 유골은 장사법 시행령에 따라 최장 5년 동안 봉안되는데 이 기간 연고자가 나타나면 반환되고 나타나지 않으면 장사시설 내 화장한 유골을 뿌릴 수 있는 시설에 뿌려지거나 자연장한다. 애초 봉안 기간은 10년이었으나 2020년 개정돼 5년으로 줄었다.

‘공영장례’란 법정 공영장례 지원 대상자가 숨질 경우, 법정 장례비 및 지자체 조례가 정하는 내용에 따라 장례 절차가 진행되도록 지원하는 공공장례를 말한다.

이날 합동 추모제는 1017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나눔과나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동자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화우공익재단이 주관했다.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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