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니, 불볕더위는 물러갔을까? 장마에 이은 국지성 가을장마로 무더위가 식었고, 태풍 힌남로가 휩쓸고 지나간 뒤라 폭염을 피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다행이라 생각할 수 없다. 태풍 피해를 입은 분이 있고 몰려든 빗물을 피하지 못한 반지하 시민도 있지 않은가. 여름철 뙤약볕이 모자라면 과일이 충분히 영글지 못한다니 불볕더위를 덜 받아 행운이라 말할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체열이 높아 여름이면 냉국수를 찾았다는데, 성년 되면서 냉면 찾는 재미에 빠졌다. 하지만 지금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40년 전 3월에 냉면을 찾아 시장 골목을 헤맨 뒤 메밀 알레르기가 생긴 이후의 일이다. 막국수는 물론이고 메밀 반죽을 썬 도마에 밀가루 반죽을 썰어 끓인 칼국수도 위험했다. 기관지가 부어올라 기침을 쏟아내야 했다.

40년 전 3월 어렵게 냉면을 먹은 청년은 3명이었다. 2명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혼자 퉁퉁 부어오른 몸으로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항히스타민 주사를 맞았다. 남긴 메밀이 상했던 건지 모르는데, 왜 한 사람만 민감했을까? 알 수 없는데, 복숭아 알레르기가 심한 친구는 과일 상가를 멀찍이 피한다. 주변에서 메밀 알레르기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내 메밀 허용 기준치는 얼마나 될까?

예방 백신을 4번이나 접종해서 그럴까? 여태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 고맙게 감염된 식구도 없다. 우리 식구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높을까? 걸렸어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알 수 없다. 한데, 백신 처방 뒤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고 감염 부작용도 제각각이다. 민감 정도가 다른 건지, 허용 기준치가 다른 건지, 역시 알 수 없다.

최근 환경부는 녹조가 심각해 보이는 낙동강 물이 안전하므로 마셔도 된다고 주장했다. 과학적 자료를 제시했는데, 다른 과학적 자료를 제시하는 환경단체와 언론의 반박이 거세다. 어느 자료가 맞을까? 한 언론은 “정량한계”를 억지로 높인 뒤 조사한 환경부가 독소 검출을 부정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음식의 방사능과 수돗물의 불소 함량을 놓고 안전과 위험이 대립하는 사례와 비슷한데, 이번 정권에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게 아닐까?

지난 8월 5일 녹조가 심각한 낙동강 모습. (이미지 출처 = KBS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조사 방법을 바꾸면 검출되지 않았던 물질이 나타나는 경우는 다반사다. 고의든 실수든, 오염이 의심되지 않는다면 검출된 방법에 문제 있다고 고압적으로 고집할 수 없다. 비과학적이다. 모종의 의도가 있지 않다면 자신은 바보라고 고백하는 꼴이다. 방법을 개선하면 검출되지 않은 물질이 나타나는 건 과학의 상식이 아닌가.

환경부는 왜 한사코 불검출을 주장하는 걸까? 현 정부 들어 거세질 거라 짐작한 어떤 압력에 사전에 굴복한 걸까? 그런 의심이 생긴다. 핵발전으로 기후변화에 대비하겠다는 정부의 고압적 태도가 나오자 느닷없이 신바람 난 핵 과학자들의 준동은 무엇을 웅변하는가?

개선된 방법으로 조사하니 검출되어도 허용 기준치 이하이므로 괜찮을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례는 과학자 사회의 갈등 연구에서 차고 넘친다. 누가 기득권과 주도권을 가졌는가에 따라 판이하게 나오는 평가는 신뢰할 수 없다. 나중에 평가 결과가 바뀌는 사례는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과 구소련에서 핵무기 경쟁을 벌일 때를 상기해 보라. 핵실험을 한 사막에서 서부영화 촬영을 감행한 이유는 정부가 안전을 보장했기 때문이었는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예는 수두룩하다.

일일이 거명하기 귀찮으니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히로세 다카시, 푸른미디어, 1991)를 찾아보라. 절판되었다면 2021년 푸른역사에서 펴낸 사학자 케이트 브라운의 "플루토피아"을 읽어 보라. 철저한 임상검사로 허용 기준치를 확정한 의약품을 보라. 50년 지나도 허용 기준치가 유지되는 경우는 5퍼센트를 넘지 못한다는데, 핵은 적나라했다. 수돗물의 불소도 마찬가지인데, 낙동강 녹조에서 검출된 남세균의 독소는 아니 그럴까? 정권 바뀐 뒤 환경부는 죄를 씻을 수 있을까?

미국 댐은 대부분 개인 소유인데, <뉴스타파>는 캘리포니아 아이언케이트 댐을 취재하며 우리 정부의 몰상식에 당혹해 했다. 낙동강보다 녹조 오염이 낮아도 식수는커녕 농업용으로 공급하지 못했고, 결국 철거를 결정했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떤가? 장마와 국지성 호우로 녹조가 흘러든 경작지의 농작물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녹조가 빠져나간 바다에 독성이 나타날 정도라는데, 환경부는 안전을 되뇐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온갖 유기 물질과 휘발성 물질, 중금속, 농약 성분으로 오염된 마당이므로 책임회피 할 수 있다 믿을까?

다대포 해수욕장과 양산에서 채취한 낙동강을 분석한 환경단체는 알츠하이머와 루게릭병 같은 뇌 질환을 염려한다. 민감도가 낮은 방법으로 조사한 환경부와 산하 직원은 낙동강 물을 절대 마시지 않길 바란다. 물론 그들도 피하고 싶을 텐데, 마시자마자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는 직원의 수가 허용기준치보다 적다고 주장할지 모르므로.

박병상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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