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시카고 수녀원으로 옮겨 온 뒤 한 달쯤 되었을 때 저는 매우 생소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시카고 지역 뉴스를 읽다가 제가 다니던 거리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서 열댓 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부상을 입고 실려 갔다는 소식을 보고는 놀라 공동체에 나누었더니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오신 할머니 수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 일은 너무 자주 일어나는데 많이 놀랬지?”라는 아주 평범한 반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영어로 설명을 잘 못했나 싶어 다시 열심히 말씀드렸는데도 “응 네가 많이 놀랬겠다.... 조심하고 다녀”라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다른 수녀님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어서 약간의 문화 충격을 느끼면서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대대적인 뉴스가 되었을 텐데, 여기에는 지역신문에 작게 기사가 나오고 끝이라니.... 내가 어떤 곳에 살고 있는 걸까 갑자기 두려움이 확 밀려왔습니다. 

그 후로 매주 월요일 아침 시카고 지역 신문을 챙겨 보며 지난 주말에는 몇명이나 사망했는지 너무 유난스럽지 않게 보이도록 노력하면서, 하지만 두려움을 감출 수 없는 마음으로 매주 확인하는 것이 제 일과가 되었습니다. 특정 우범 지역도 아닌 시카고 다운타운 한가운데에 매일 오가야 하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벌어진 사건은 경각심을 갖기에 충분했고 조금이라도 위협적인 사람이 근처에 지나가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욕 버팔로 마트에서 일어난 총격 사망사건과 그 일주일 후, 텍사스 지역 학교에서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십대 청소년에 의해 무차별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져 미국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 한 가지는 이곳에서는 십대 청소년도 특별한 검증 없이 인터넷으로 총기 구매가 가능했다는 놀라운 현실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이 모든 것이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무기 산업의 결과이자 이미 너무나도 멀리 와버린 미국 사회의 총기 소지 현실이라고 말씀하시며 몹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다행히도 이 사건 이후로 청소년에게 총기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상정되어 처리 과정에 있고, 앞의 두 사건으로 인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여진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음을 계속되는 사건들로 인해 보게 됩니다. 

지난 5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사상 최대 규모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롭 초등학교 앞. (사진 출처 = BBC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5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사상 최대 규모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롭 초등학교 앞. (사진 출처 = BBC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이러한 어려움은 수녀원도 피해 가지 못해서, 이곳 수녀님들이 모이기로 한 회의 장소에서 총기 박람회가 열리는 당황스러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총기 박람회라는 말 자체가 또다시 생소했지만 이곳에서는 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총기류를 전시하고 관람하는 박람회가 정기적으로 열린다고 합니다. 수녀님들은 특별히 국가적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는 이 시기에 총기 박람회와 동시에 같은 곳에서 평화와 통합에 관한 의제를 나누는 것 자체가 너무도 불편한 일임을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을 바탕으로 한 총기 박람회 측에 시기를 옮기도록 제안한 것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수녀님들은 이러다가 몇몇 쓴소리 하시는 수녀님들과 박람회 측과의 마찰이라도 생기면 'Gun vs Nun'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으로 지역 신문에 실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결국 수녀원 측의 일정 조율과 부분적인 장소 변경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미국 사회의 총기 소지가 사회 곳곳에, 전혀 관련 없을 것 같던 수녀원 마저도 이러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어려움은 한국 사회에서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과 양상으로 드러나지만 그 밑바닥에는 소외된 계층의 박탈감과 공고한 무기 산업을 바탕으로 한 자본의 결합이 있음을 보게 되고, 인간 본질의 약함과 욕망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상황이 사회의 잘못된 정책과 법안과 연결될 때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상기하며 이 현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월요일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지역 뉴스를 확인하다가 “어, 이번 주에는 사망 사건이 없네? 38발이나 쏘았는데 어떻게 두 명만 다쳤지? 잘 피했나 보다....”라고 중얼거리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떠올린 생각이지만 문득 섬뜩해짐을 느끼면서, 내가 더 이상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고, 어느 새 이곳에서 매주 벌어지는 총격 사건에 무감각해지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관해 성찰하면서 총기 사건의 희생자들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는 나 자신과, 주변의 고통에 익숙해지는 나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나는 진심으로 주위의 현실을 의식하며 기도하고 있는지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텍사스에서 벌어진 끔찍한 대규모 사망사건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한 명의 일탈 행동만도 아니고, 정부의 정책과 무기 산업으로 인한 것만도 아닌 바로 이곳에 살고 있는 개개인들의 무감각함, 익숙해짐으로부터 허용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어려웠던 이번 미국 사회의 총기 사건을 계기로, 이곳 지역 사회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많은 움직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중 특히 학생들의 노력과 학교들의 애도가 두드러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지지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익숙해짐과 깨어 있음의 사이에서 나의 책임이 무엇인지 의식하게 되고 이를 주변 수녀님들과, 친구들과 나누며 현재 내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서의 노력을 계속해서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총기 법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 (사진 출처 = Flickr)<br>
총기 법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 (사진 출처 = Flickr)

김지혜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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